강원도 인제 원대리숲, 아름다운 나목 볼 수 있는 최적지
시베리아와 동아시아선 하늘과 연결하는 세계수로 여겨

하늘을 나는 말 그림으로 유명한 천마도는 자작나무껍질로 만들어졌다. 나무껍질 안에는 기름이 있어 기름이 없을 때는 불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됐다. 사진은 강원도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다.
하늘을 나는 말 그림으로 유명한 천마도는 자작나무껍질로 만들어졌다. 나무껍질 안에는 기름이 있어 기름이 없을 때는 불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됐다. 사진은 강원도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다.

멀리서 봐도 빛이 깃들어 하얗게 반짝이는 숲길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이야기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왜 자작나무가 있는 땅을 ‘밝은 땅’이라고 부르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은백색의 나무가 산을 덮고 있으니 밝지 않으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자작나무는 시베리아와 동아시아에 걸쳐 많은 곳에서 우주수(宇宙樹) 또는 세계수로 꼽는다. 

하늘과 맞닿을 수 있는 나무라는 것이다. 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 생각한 것이다. 

시베리아의 샤먼은 정령이 깃들어 있어서 하얗게 빛난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이 나무를 귀히 여겼다. 

이런 문화는 우리에게도 이어진다. 드넓게 펼쳐진 개마고원과 북으로 솟구쳐 오른 백두에서 하늘에 닿는 자작나무는 신령스럽기까지 하단다. 

키 크고 나뭇잎 떨어지는 이 나무의 상징은 흰색의 껍질이다. 

사실은 검은색을 살짝 비추는 은백색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겉은 흰색이지만 그 나무의 껍질 안은 검은색인데, 껍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검은 부분은 기름이라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기름이 없던 시절, 이 나무로 불을 밝혔다고 적고 있다. 

그러니 나무가 젖어있어도 불을 피우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자작나무다. 

한자로는 백화(白樺)다. 중국이나 일본에선 백화로 이 나무를 호칭한다. 

기름이 많아 불을 밝히는 이 나무의 특징은 결혼식으로도 연장된다. 결혼식의 첫 시작은 ‘화촉’을 밝히는 것인데, 자작나무로 불을 밝힌 데서 연유한 의식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자작나무를길조로 여겼는데 그 시원은 로마의 유괴혼에서 출발한다. 

로마 건국 당시 여자가 없어 사비니 지역의 사람들을 불러 축제를 하면서 자작나무로 횃불을 만들어 불을 밝혀 부녀자들을 유괴한 것이다. 

또 다른 설화 하나는 자작나무의 흰 껍질을 벗겨 깨끗하게 연애편지를 쓰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내용이다. 

화촉과 연서, 그리고 유괴혼 모두 남녀의 관계를 연결하는 데 자작나무가 크게 쓰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보 중에서 자작나무를 재료로 만든 유명한 보물이 하나 있다. 국보 제207호인 천마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다. 천마도는 장니, 즉 말안장에서 말의 배를 덮어내려 배를 가리게 해주는 말다래다. 

이와 함께 신라 왕관에 촘촘히 매달린 나뭇가지 모양의 금붙이도 자작나무를 상징하고 있단다. 이 정도면 신라 왕족은 자작나무를 무척 귀히 여긴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작나무는 추운 북쪽에서만 자생한다. 한반도에서는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이 주로 자라는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멀리서도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 숲은 시베리아와 동아시아에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짓는 세계수로 여겼다. 추운 날씨와 잘 어울리는 자작나무는 개마고원과 백두산 등 주변에 많이 자란다. 사진은 강원도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서 바라본 하늘이다.
멀리서도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 숲은 시베리아와 동아시아에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짓는 세계수로 여겼다. 추운 날씨와 잘 어울리는 자작나무는 개마고원과 백두산 등 주변에 많이 자란다. 사진은 강원도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서 바라본 하늘이다.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 등 몇 군데에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 나무들은 모두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이다. 

따라서 신라에는 자작나무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왕권을 상징하는 금관과 왕이 타는 말의 말다래를 자작나무로 만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를 고고학자들은 신라와 기마민족의 무역 가능성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작나무를 묘사한 시 중에 백석의 ‘백화’가 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이 1938년 일제를 피해 함경도의 깊은 두메산골로 들어가 쓴 시다. 자작나무가 지천인 곳이다. 

시는 매행마다 조금씩 길어진다. 대들보과 기둥 문살에 쓰인 자작나무는 여우가 사는 산으로, 그리고 메밀국수를 삶는 나무로, 박우물로, 마지막 행에선 산골이 온통 자작나무라고 쓰고 있다.

시각적으로 자작나무가 가득한 모습을 백석은 자작나무의 쓰임새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김훈도 ‘물드는 산 꿈꾸는 나무’라는 글에서 “아침햇살 속에서 자작나무의 빛은 튕기지만, 저녁햇살 속에서 자작나무의 빛은 스민다”고 자작나무를 평한다. 

그리고 “오리나무 숲의 바람은 거친 저음으로 폭포처럼 흘러가고 자작나무 숲의 바람은 잘 정돈된 고음으로 흘러간다”고 적고 있다. 

바람이 부는 날, 요즘처럼 눈이 온 산을 덮고 있는 때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로 달려가 보자. 

이파리 모두 떨구고 하얗게 빛나는 나목의 아름다움, 그 극치를 자작나무 숲에서 만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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