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대표하는 증류소주, 이름서 맛 느껴져
이기숙 명인, 부친 이어 파주에서 명주 생산

감홍로는 평양의 대표적인 술이다. 별주부전과 춘향전, 서도 민요 등에 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몇 안되는 술이 감홍로다. 현재는 이경찬 명의 딸인 이기숙 명인이 파주에서 감홍로를 빚고 있다. 사진은 이기숙 명인의 모습
감홍로는 평양의 대표적인 술이다. 별주부전과 춘향전, 서도 민요 등에 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몇 안되는 술이 감홍로다. 현재는 이경찬 명의 딸인 이기숙 명인이 파주에서 감홍로를 빚고 있다. 사진은 이기숙 명인의 모습

“술이라 하니 이백의 기경포도주며 뚝 떨어졌다 낙화주며 산림처사 송엽주로다. 도연명의 국화주며 마고선녀 천일주며 맛 좋은 감홍로 빛 좋은 홍소주 청소주로 온갖 술은 다 그만두고 청명한 약주 술로 노자작 앵무배에 찻잔 부어 산제하고(…)”

민요 중에 앉아서 하는 노래는 ‘좌창’이라 한다. 경기지역과 황해도 등의 지역에서 불리는 민요를 서도 민요라고 하는데 그중에 북망산에 묻힌 임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면서 인생무상을 읊는 노래가 하나 있다. 제목은 〈제전〉이다. 앞의 인용문이 명창 오복녀가 정리한 〈제전〉의 일부다.

감홍로와 홍소주는 물론 이백이 즐긴 포도주며 송엽주 국화주 등 조선의 명주들이 다 등장한다. 정작 먼저 가신님에게 올린 술은 약주인데, 유명한 술의 이름을 다 올라와 있다. 오늘은 이중 감홍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판소리 《별주부전》과 《춘향전》에도 감홍로는 등장한다. 용궁으로 토끼를 꾀어가기 위해 거북이가 건넨 말이 용궁에는 감홍로가 있다는 것이었고, 한양으로 떠나는 이몽룡과의 이별주를 나누기 위해 춘향이 향단에게 내오라고 한 술이 감홍로다. 그것도 마지막에 꺼내오라고 한 술이다. 그만큼 일반 백성들에게 감홍로는 맛있는 술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졌다.

감홍로는 평양의 명주로 이름을 날리던 술이다. 우리나라는 남쪽은 막걸리와 청주가 강세고, 북쪽은 높은 도수의 소주가 술 문화의 중심이다. 고려 때 몽골을 통해 증류주 내리는 방법이 전달된 이후 평안도와 함경도 등 북쪽 지방은 거의 막걸리를 즐기기보다 소주를 내려 마셨다고 한다.

게다가 홍소주는 궁궐에서 양조해서 중국의 사신들에게 들려 보내거나 조선의 사신들이 싸 들고 가서 중국에 조공으로 전달하던 술이기도 하다.

평양은 사행단이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다. 자연스럽게 홍소주와 감홍로 등의 술이 발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일찍이 조성돼 있었다.

이처럼 명성 자자한 감홍로라지만, 이를 즐길 수 있는 계층은 제한적이었다. 증류주라 가격이 비쌌을 테니 당연히 일반 백성들은 꿈도 꾸지 않았을 듯싶다.

어찌 됐든 지역의 명주로 이름을 날리던 술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다.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 소개되고, 유득공의 저서인 《경도잡지》에 조선의 3대 명주 중 하나로 기록된 뒤 최남선이 다시 1946년에 쓴 《조선상식문답》에서 감홍로와 이강주, 그리고 죽력고를 명주로 소개한다.

평양의 명주 감홍로에 대한 흔적은 유득공이 쓴 애련정(愛蓮亭)이라는 시에도 그윽하게 채워져 있다.

애련정은 평양의 대동문에서 종로로 통하는 길 한복판에 있던 연못 ‘애련담’에 있던 누각이다. 애련정 앞에서 연못에 있는 연잎에 후드득거리며 떨어지는 빗소리를 ‘연당청우(蓮塘聽雨)라고 하는데, 이를 평양 8경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한다.

유득공은 애련정에서 ”곳곳마다 감홍로니, 이 마을이 곧 취한 마을일세’라고 노래를 한 것이다.

연못 앞에 서 있는 정자에서 평양 시내의 붉은 주등을 깃대에 매단 집마다 감홍로를 빚어 파는 모습을 보며 ‘마을이 취한 마을’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니, 가히 평양 술이라 불러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원래의 애련정은 일제가 뜯어가 일본에서 화재로 소실됐고, 지금 있는 애련정은 모란봉 기슭에 새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파주 감홍로에 가면 1980년경에 고 이경찬 명인이 빚은 감홍로를 만날 수 있다. 감홍로는 소주를 내린 뒤 용안육과 계피, 진피, 생강, 감초 등의 약초를 넣어 침출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한다. 이 술은 2014년 생물다양성재단이 선정한 슬로우푸드 ‘맛의 방주’에 등재돼 있다.
파주 감홍로에 가면 1980년경에 고 이경찬 명인이 빚은 감홍로를 만날 수 있다. 감홍로는 소주를 내린 뒤 용안육과 계피, 진피, 생강, 감초 등의 약초를 넣어 침출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한다. 이 술은 2014년 생물다양성재단이 선정한 슬로우푸드 ‘맛의 방주’에 등재돼 있다.

평양의 대표 술이었던 감홍로가 지금은 파주에서 나오고 있다. 평양에서 평천양조장을 하던 이경찬(1993년 작고) 씨의 딸 이기숙 명인(전통식품명인 제43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 조선 3대 명주의 명맥을 잇고 있다.

감홍로는 생산 중인 전통주 가운데 가장 긴 슬로우푸드 주기를 가진 술이다. 물누룩을 내려 멥쌀과 메조(7대3)를 섞어 고두밥을 지어 세 번 술을 빚어 발효시킨다. 이 과정은 대략 15일 정도면 끝난다.

멥쌀과 메조를 사용해 신맛 도는 원주를 만들고 이를 소주로 증류시키는데 이 과정이 복잡하다. 1차 소주를 내려 숙성을 시키는 데 몇 개월이 걸린다. 안정화된 술을 다시 증류해서 용안육과 계피, 진피, 생강, 감초 등의 약초를 넣어 2개월 정도 침출시킨다.

그리고 또 1년 6개월을 숙성시켜 병입한 것이 시판되고 있는 ‘감홍로’다. 그 덕분에 이 술은 2014년 이탈리아에 있는 ‘생물다양성재단’이 선정하고 있는 슬로우푸드 ‘맛의 방주’에 등재돼 있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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