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효석 책임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효석 책임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효석 책임연구원

최근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우리나라 운전면허 소지자 수는 3319만명으로 지난 5년간 6.4% 증가한 반면,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수는 동기간 47.7% 증가한 368만명으로 나타났다. 도로 위 고령운전자가 해가 갈수록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고령운전자가 발생한 사고건수 역시 지난 2016년 2만4429건 대비 2020년 3만1072건으로 27.2% 증가해 동기간 전체 사고건수 5.1% 감소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2016년 전체 4292명에서 2020년에는 3081명으로 28.2% 감소했으나,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동기간 759명에서 720명으로 5.1% 감소에 그쳐 전체 사망자 감소폭의 4분의 1수준을 보였다.

정부는 지금까지 5년 마다 국가 '교통안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핵심 KPI를 교통사고 사망자 수 감소로 선정, 지속적인 교통안전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를 통해 최근 5년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약 1200여 명 줄였으며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2000명 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성과들은 마땅히 칭찬해 줄 만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유례없이 빠른 인구 고령화에 비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의 교통안전 대책은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증가는 인구 고령화와 이에 따른 고령운전자 수 증가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는 이미 교통안전 선진국들의 글로벌적인 관심사항이자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미래가 아닌 당면한 사회적 이슈로서 점점 더 적극적인 교통안전 대책이 필요해지고 있다.

미국,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 교통 선진국에서는 신체 장애는 물론이고, 안전운전 능력이 저하된 운전자에 면허 취소 대신 이동권 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이 담보되는 조건 내 운전을 허용하는 조건부면허가 발급되고 있다. 운전 조건은 크게 시간, 공간, 속도, 도로 등으로 나뉘어 발급하는데, 예를 들어 야간 시력이 부족한 운전자에겐 주간 운전(일출부터 일몰까지)만 허용, 장거리 운전이 어려운 운전자에겐 자택에서 반경 OOkm 내만 허용, 고속 운전이 어려운 운전자에겐 고속도로 주행 금지 또는 80km/h 이상 고속주행 금지 등이 있다.

조건부 면허 발급 과정도 운전자 담당의사가 운전 능력을 진단하여 경찰당국에 제안하거나, 면허당국에서 도로주행시험, 운전적성검사 등의 결과를 기반으로 운전범위를 개별 운전자와 협의를 통해 정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면허당국 내 약 40명으로 구성된 의사 위원회에서 운전자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진단하고 운전범위를 당사자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료진과 경찰당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운전자의 운전상태를 진단하고 개별적 협의를 통해 개인 맞춤형 조건부면허가 발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개인의 이동권 확보와 교통안전이라는 공공의 안녕을 위해 좀 더 구체적이고 합리적 합의점을 찾아 고령운전자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신체 능력 또는 인지 능력이 저하된 고령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평가하여 안전한 운전이 담보될 수 있는 조건 내에서는 운전을 허용하는 조건부 면허제도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서 의료진과 경찰당국이 힘을 합쳐 운전능력 평가 방법, 진단, 운전 조건 결정 등의 검사-진단-합의-발급의 총괄적 발급 프로세스 개발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고령운전자의 이동권 보장과 우리나라가 교통사고로부터 좀 더 안전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며 조건부 면허제도의 조속한 시행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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