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신포도’ 이야기 속 르상티망, 막걸리 마케팅에 활용
해창주조장 ‘해창18도’ 출시 후, 서울양조장 ‘서울골드’ 출시

한병에 10만 원이 넘는 막걸리들이 등장했다. 해남 해창주조장의 ‘해창18도’는 양조장출고가격이 11만원이며, 서울양조장의 ‘서울골드’의 소비자가격은 19만원이다. 해창은 4양주로 빚어진 술이며, 서울골드는 설화곡을 사용한 막걸리다. 발효가 다 이뤄진 뒤 술을 거를 때 전혀 물을 넣지 않아 발효과정에서 만들어진 술을 온전히 담아낸 술이다. 두 술 모두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술들이다.
한병에 10만 원이 넘는 막걸리들이 등장했다. 해남 해창주조장의 ‘해창18도’는 양조장출고가격이 11만원이며, 서울양조장의 ‘서울골드’의 소비자가격은 19만원이다. 해창은 4양주로 빚어진 술이며, 서울골드는 설화곡을 사용한 막걸리다. 발효가 다 이뤄진 뒤 술을 거를 때 전혀 물을 넣지 않아 발효과정에서 만들어진 술을 온전히 담아낸 술이다. 두 술 모두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술들이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솝 우화의 하나로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 하고 따먹으려 하지만, 너무 높이 달려 있어서 발이 닿지 않아 먹을 수 없게 되자 “이 포도는 너무 시어서 분명히 맛이 없을거야”라고 말하며 자리를 뜨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맛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덤볐는데 따먹을 수 없게 되자 여우는 바로 생각을 바꿔버렸다. 포도가 발에 닿지 않아 따지 못하게 되면서 생긴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실 거야”라는 생각으로 치환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해소한 셈이다.

니체는 이러한 태도를 르상티망(ressentiment)의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의 책 《도덕의 계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은 원한(ressentiment) 자체가 창조적이 되고 가치를 낳게 될 때 시작된다. 이 원한은 실제적인 반응, 즉 행위에 의한 반응을 포기하고 오로지 상상의 복수를 통해서만 스스로 해가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복수다.”

니체의 정의는 철학적 정의이다 보니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현대인의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있는 ‘막연한 분노’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세상이 불안하고 불공정해서 얻지 못하고 매번 잃는다는 패배주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 특히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품고 있는 분노와 증오 또는 원한과 열등감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감정의 상태가 바로 이것이다.

니체는 ‘원한’이라는 감정을 가장 혐오했다. 이유는 원한에 사로잡힌 자들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졌을 때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 혹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이 악한 인간이고 자신은 선한 인간이라서 패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르상티망을 노예 도덕의 핵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탈출구는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복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인이 된 가치 판단을 뒤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감정을 마케터들은 교묘히 이용한다.

명품마케팅이 대표적이다. 어떤 사람은 명품 양복이나 구두가 자신이 절실히 원하는 물건이 아니므로 자기 삶의 스타일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같은 수준의 명품을 구매해서 자신이 품고 있는 르상티망을 해소하려는 성향의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고급 승용차 회사나 와이너리 등에서 펼치는 명품마케팅이 여기에 해당한다.

수억 원에서 수천만 원 하는 페라리와 로마네 꽁티 등의 제품의 수요는 제한적이지만 꾸준하게 존재한다. 르상티망의 감정이 한번 해소됐다고 해서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르상티망에 복종하는 경우, 분노가 풀어져도 새로운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된다.

명품 백이나 자동차로 르상티망을 해소한 사람은 명품의상이나 시계로 관심을 바꿔 가며 감정을 풀어낸다.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들이 매번 새 시즌을 맞아서 신상품을 소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르상티망에 의한 명품 시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확대될 수밖에 없다.

우리 술을 이야기하면서 니체의 철학 개념과 명품마케팅 이야기까지 꺼내는 것에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술에도 이런 마케팅 기법이 적용된 술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21년 시중에서 유통되는 막걸리 중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술을 하나 고르라 하면 단연 ‘해창 막걸리 18도’일 것이다. 막걸리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물론 위상까지 한껏 드높인 점에서 ‘해창 18도’를 따를 술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해창 18도’가 많이 거론된 까닭은 믿기지 않는 가격 때문이다. 한병의 양조장 출고가가 11만 원이다. 당연히 소매가격은 이보다 비싸다.

백화점에서는 15만 원 이상에 거래된다고 하니 시중에서 팔리는 막걸리 중 가장 비싼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이 술이 출시되면서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가격을 두고 설왕설래하기 시작했다. 가격 자체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수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은 모 재벌 회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였다. 자신의 ‘인생 막걸리’라고 사랑 고백을 하면서 이 술에 관한 관심은 한층 증폭됐다. 모두가 한 번쯤은 시음해보고 싶은 로망의 막걸리가 됐다.

이와 함께 서울양조장에서는 설화곡을 넣어 빚은 막걸리 ‘서울 골드(알코올 도수 15도)’를 출시했다. 소비자 가격은 ‘해창 18도’보다 더 비싼 19만 원이다.

이들은 모두 르상티망 마케팅을 펼치는 술들이다. 물론 모든 르상티망 마케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고가의 모든 제품이 명품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가능성을 열고 있는 첫술이다. 게다가 이 술들은 우리 막걸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줬다. 비싼 술을 아무나 마시지 않듯이 비싼 막걸리를 모두가 마셔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술의 타겟은 따로 정해져 있다. 오히려 싸구려 이미지를 벗고 막걸리도 고급주와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수받을 이유가 많은 술이 우리 술 시장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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