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의 계절, 매화에 이어 남도엔 산수유 꽃대궐
경복궁 등 궁궐에도 파스텔 색조 노란색 활짝 펴

산수유가 한참이다. 파스텔톤 노란색이 나무가지를 뒤덮으면 곧 벚꽃과 진달래 등이 피게 된다. 사진은 3월 중순 경복궁의 산수유 나무다. 지난해의 결실인 붉은 색 열매와 올해 새로 핀 꽃이 같이 가지끝을 장식하고 있다. 봄과 가을을 함께 담은 모습이다.
산수유가 한참이다. 파스텔톤 노란색이 나무가지를 뒤덮으면 곧 벚꽃과 진달래 등이 피게 된다. 사진은 3월 중순 경복궁의 산수유 나무다. 지난해의 결실인 붉은 색 열매와 올해 새로 핀 꽃이 같이 가지끝을 장식하고 있다. 봄과 가을을 함께 담은 모습이다.

계절의 변화는 흑백필름에 색깔을 입히듯 산과 들에 피는 꽃에서 찾아온다. 

남녘에 매화 소식이 들려올 때쯤이면 파스텔 색조의 노란색이 점을 찍듯 산을 채워가기 시작한다. 

땅에선 복수초가 고개를 내밀고, 산에선 풍년화와 산수유, 그리고 생강나무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벚꽃이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개나리도 노란색 꽃대열에 합류하면서 봄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오늘은 노란색의 산수유 이야기다. 

산에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궁궐에도 나무에 꽃망울이 맺힌다.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은 매화다. 

그리고 산수유가 피고 뒤이어 벚나무와 귀롱나무 살구나무 등이 물 차오르듯 채워진 봄을 꽃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3월 중순의 경복궁도 역시 산수유가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작은 꽃들이 20~30개씩 모여서 가지 끝에 다닥다닥 붙어서 피는 산수유는 그래서 멀리서 보면 꽃의 존재감은 뚜렷하지 않다. 

대신 산수유는 나뭇가지가 잘 안 보일 정도로 색으로 나무를 가득 메운다. 

그런 나무가 수십 그루씩 모여서 군락을 이루면 비로소 꽃의 존재감은 완성된다. 이런 산수유의 모습을 작가 김훈은 다음처럼 묘사한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작가의 말처럼 산수유는 중량감은 없지만, 봄의 배경처럼 공간을 채워준다. 

남도의 산수유는 존재감이 분명하다. 배경처럼 핀다고 산수유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도 끝에서 불고 있는 산수유는 자존감이 강하다. 사진은 24일 전남 순천 송광사의 산수유 나무다. 활짝 핀 산수유가 절집 담장을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다.
남도의 산수유는 존재감이 분명하다. 배경처럼 핀다고 산수유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도 끝에서 불고 있는 산수유는 자존감이 강하다. 사진은 24일 전남 순천 송광사의 산수유 나무다. 활짝 핀 산수유가 절집 담장을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다.

전각에 입혀진 단청 등으로 바깥보다 화려한 궁궐이지만, 겨울은 삭막하기 마련이다. 이런 계절의 마지막을 산수유가 알려주고 살구와 복사꽃이 채워주며 궁궐의 봄도 채워진다. 

산수유의 매력은 봄의 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꽃이 지면 한동안 시야에서 사라졌던 산수유는 파란 하늘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붉은 빛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가을의 산수유는 또 다른 눈요깃거리가 되어준다. 한 그루에 가득 채워진 갸름한 열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산수유 열매는 약재로 유명하다. 산수유는 물론 식수유, 오수유 등 수유가 들어간 이름은 모두 그렇다. 산수유(山茱萸)의 한자를 풀면 ‘산에 사는 쉬나무’라는 뜻이다. 

여기서 수(茱)는 열매가 붉게 익어서 만들어진 쉬나무 수자이다. 그리고 열매를 생으로 먹을 수 있다는 뜻에서 유(萸)자가 쓰인 것이다. 

이런 뜻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니 당연하게 한약재로 활용한다. 

산수유 열매를 약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씨를 발라서 솥에 찐 뒤 햇볕에 말려야 한다. 

이 열매는 간과 신장을 튼튼히 하는데 좋고 혈압을 내리고 염증을 가라앉힌다고 한다. 《동의보감》에선 “맛이 시고 떫으며 무독하여 음기를 왕성하게 하고 콩팥 장기를 보강할 뿐 아니라 자양강장에도 좋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고 강하게 한다”고 적혀 있다.
 
이와 함께 두통과 해열 이뇨증 식은땀 등에도 민간요법으로 쓰인 열매이기도 하다. 그러니 궁궐에서도 산수유는 당연히 한약재로서의 쓰임새를 톡톡히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산길을 걷다 보면 착각하기 쉬운 꽃나무가 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가 그렇다. 

둘 다 작디작은 노란색 꽃송이를 다발처럼 가지 끝에 피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시기도 비슷하고 잎이 나기 전에 꽃을 피운다는 점도 같아서 헷갈리기 쉽다.

하지만 꽃의 모양으로 구별할 수 있다. 산수유는 꽃차례가 길고 생강나무는 짧아 가지에 바짝 붙어 핀다. 

더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반법은 산수유는 껍질이 거칠지만, 생강나무는 매끈한 편이다. 또한 산수유는 꽃이 핀 가지가 갈색인데 생강나무의 가지 끝은 연한 녹색을 띤다.

지금쯤 전남 구례의 상위마을과 경북 의성의 사곡마을, 그리고 경기도 이천 백사마을은 산수유 꽃대궐이 펼쳐져 있다. 

이곳을 찾아 산수유를 본다면 상춘의 절정을 맛볼 수 있겠지만,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에 휩싸여야 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매화에 빠진 인파와 벚꽃길에서 추억을 담으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궁궐을 찾아가자. 

산수유뿐만 아니라 매화도 즐길 수 있다. 그것도 단청 옷 곱게 차려입은 전각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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