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향기 채운 수령 650년 된 백매와 홍매 만개
참선 수행하며 ‘한 소식’ 갈구하는 절집의 매화 사랑

선암사 무우전 앞에는 홍매 한 그루가 서 있다. 무우전 앞에 있어서 무우매라고 불리는 이 매화도 수령이 꽤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무우전 담장을 따라 수령 300년 정도된 매화가 줄을 지어 꽃을 피우고 있다.
선암사 무우전 앞에는 홍매 한 그루가 서 있다. 무우전 앞에 있어서 무우매라고 불리는 이 매화도 수령이 꽤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무우전 담장을 따라 수령 300년 정도된 매화가 줄을 지어 꽃을 피우고 있다.

선암매가 절정이다. 

매화 소식이 들리면 어김없이 찾아 나서는 탐매행. 마스크를 쓰고 만나는 매화의 향기는 여리지만, 하얀 백매가 지닌 기풍과 붉은 홍매의 유혹은 떨쳐내기 쉽지 않다. 

매화의 향기를 암향(暗香)이라고 한다. 중국 송나라의 임포가 지은 매화시에서 출발한 단어다.

“성근 그림자 가로 비켜 맑은 물 낮은 곳에 비치고/그윽한 향기 떠돌아다니는데 달빛은 황혼에 어둡네”라는 두 구절에서 비롯된 말이다. 

임포의 시는 이후 동아시아 선비들이 봄이 오면 매화를 찾아 나서는 매화벽(梅花癖)의 근거가 됐다. 이 시에서 그윽한 향기로 번역된 구절이 바로 암향(暗香)이다. 

장미처럼 화려하고 짙지 않으며, 라일락처럼 강하지도 않다. 그저 은은하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 향을 맡으려고 일부러 꽃에 코를 들이대지는 말라고 한다. 옛 선비들은 이런 매화를 문향(聞香)하라고도 말했다. 

마음의 고요함을 먼저 챙긴 뒤 침묵을 깨뜨리면서 고요하게 다가오는 향기를 귀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귀로 듣는 향기’라는 형용모순을 스스럼없이 사용할 정도로 매화의 향기는 선비를 닮았다. 

굳이 비교한다면 향이 짙은 서양의 술과 달리 그윽하게 꽃향을 머금은 우리 술의 향기라고 해두고 싶다. 

그런데 이런 향에 빠져 수많은 시인 문객들이 글을 남겼다. 

사방에 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겨울, 그 끝에서 홀로 꽃을 피우는 매화를 보면서 이들은 생명을 꿈꿨고, 존재를 확인했다.

두보의 시 ‘소지(小至)’에는 “산의 마음이 추워 떨면서 매화를 피울 채비를 한다”고 말했고 조선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신흠은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네”라는 싯구로 유명하다. 

매화의 꽃 피는 모습이 지조와 절개를 으뜸으로 삼는 선비의 삶을 닮았다는 것이 매화시에 빠진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처럼 암향으로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매화가 절집에서도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수령이 오래된 매화는 모두 사찰에 있다고 말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 이야기가 될 정도로 절집에는 매화가 많이 있다.

우선 전국 4매라고 일컬어지는 매화 가운데 3개가 다 사찰에 있다. 선암사에 핀 선암매와 화엄사에 핀 화엄매, 그리고 백양사의 고불매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다일까.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사찰에는 매화가 자란다. 서울 봉은사의 매화도 그윽한 향기 펴며 지금 한창이다. 

그렇다면 왜 절집에 매화가 많은 것일까. 그것은 한 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중국의 승려 중에 매화시로 유명한 황벽 선사라고 있다. 그의 시 중에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를 매화에 비유한 시가 하나 있다. 

“추위가 한 번 뼛속 깊이 사무치지 않으면/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 선불교의 한 소식은 참선 과정에서 얻는다. 

그런데 그 길이 무척 고되다. 그래서 이를 겨울 눈을 뚫고 봄을 알리는 매화에 비유한 것이다.

조계산 선암사에는 수십 그루의 매화나무가 봄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원통전에서 바라본 수령 650년의 선암매(천연기념물 488호) 사진이다. 하얀색 꽃을 피운 백매가 기품이 가득 들어 있는 모습이다.
조계산 선암사에는 수십 그루의 매화나무가 봄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원통전에서 바라본 수령 650년의 선암매(천연기념물 488호) 사진이다. 하얀색 꽃을 피운 백매가 기품이 가득 들어 있는 모습이다.

또 하나의 시가 있는데,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매화에 담은 시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지만 봄은 보지 못하고/짚신 발로 온산을 헤매며 구름만 밟고 다녔네/돌아와 웃으며 매화가지 집어 향기 맡으니/봄은 가지 끝에 한창이더라” 이름을 알 수 없는 비구니의 오도송이다. 

찾고 있는 마음의 봄. 즉 깨달음은 이렇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런 사연을 지니고 있으니, 절집에서 매화를 가꾸는 것이다.

그중에 선암매는 650년 정도 된 수령이 아주 오랜 나무다. 

이 나무 한 그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우전 앞에는 수령이 제법 오래된 홍매가 성긴 가지에 붉은 매화꽃을 피우고 있다. 

게다가 2~300년 된 매화가 수십 그루 무우전 담장을 따라 꽃을 피우고 있다.

그래서 이 계절에 조계산을 찾으면 선암사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선암사에 이르는 초입에서 만나는 승선교와 강선루도 좋지만, 절집을 채우고 있는 매화는 봄이 제대로 익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계산 건너 송광사에도 대웅전 앞마당에 매화 한 그루가 소담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탐매행에 나선다면, 조계산을 빠뜨릴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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