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혹적일 만큼 짙은 색 매화꽃, 존재 확실하게 드러내
시대에 따라 변하는 상춘 감상법, 요즘은 벚꽃이 대세

올해도 화엄사 각황전 옆 흑매는 고혹적인 색으로 탐매객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다. 각황전과 대웅전 전각 사이에 우뚝 서있는 흑매는 전각들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화엄 공간을 채우고 있다.
올해도 화엄사 각황전 옆 흑매는 고혹적인 색으로 탐매객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다. 각황전과 대웅전 전각 사이에 우뚝 서있는 흑매는 전각들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화엄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남쪽의 벚꽃은 지금이 절정이다. 서울의 벚꽃은 이번 주 후반이 돼야 만개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보다 열흘쯤 늦었다는 것이 기상청의 발표다.

이렇게 절기가 변하고 있다.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지져 먹는다는 삼월삼짇날도 지났다. 

여인들은 진달래꽃을 따서 두견주를 담고 화전을 부치며 봄을 맞는 시기이며, 남정네들은 새롭게 돋은 파릇한 풀밭을 밟는다는 뜻의 답청(踏靑)을 나서는 계절이다. 

답청은 술과 음식을 싸 들고 나서는 봄 소풍과 같은 것이다. 바야흐로 상춘(賞春)의 계절이다.

그런데 상춘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시대에 따라 바뀌는 듯하다. 

조선시대의 상춘과 지금의 봄놀이는 색과 규모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좋아하는 꽃도 그렇고 즐기는 방법도 그렇다.  

매화를 예로 들어보자.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화를 볼 때 네 가지 귀한 점(四貴)을 완상의 기준으로 삼았다. 

첫째는 꽃이 번성하지 않고 드물게 피어난 것(稀, 희), 둘째는 어리지 않고 늙은 모습(老, 노), 셋째는 가지가 말라 파리하게 보이고(瘦, 수), 넷째는 꽃이 만개하기보다는 꽃봉오리가 진 것(蕾, 뢰)을 아름답다고 봤다. 

이런 관상의 태도는 조선 후기의 다산 정약용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는 매화는 화판이 여러 겹으로 포개진 것보다 외겹인 것이 좋고, 붉은 것은 흰 것에 못 미친다고 말한다. 

즉 겹매화보다 홑매화가 그리고 홍매보다 백매가 한 수 위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 꽃잎이 크고 근대가 거꾸로 된 것을 골라 심으라고 다산은 추천한다. 

책벌레 이덕무가 추천하는 풍경 하나를 더 예로 들어보자. 

그가 세상에서 가장 운치 있는 풍경으로 여기는 것은 “오른편에는 일제히 꽃봉오리를 터뜨린 매화가 보이고 왼편에는 솔바람과 회화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보글보글 차 끓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차 한잔 마시면서 매화를 감상하는 이덕무가 보일 만큼 풍경이 눈에 잡힌다.

그런데 이덕무는 찻물 끓이는 소리를 4월에 앙상한 가지만 보이는 회화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라고 비유하고 있다. 

매화의 꽃과 소리로 들리는 앙상한 회화나무 가지의 절묘한 조화를 이덕무는 그리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화엄매는 화엄사에서 산으로 조금 오르면 나타나는 길상암 앞에 있다. 화엄들매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자생하는 백매다. 주변의 나무들과 경쟁하며 자라 윗쪽에 주로 매화를 피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화엄매는 화엄사에서 산으로 조금 오르면 나타나는 길상암 앞에 있다. 화엄들매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자생하는 백매다. 주변의 나무들과 경쟁하며 자라 윗쪽에 주로 매화를 피운다.

이처럼 성긴 가지에 듬성듬성한 매화를 상찬하는 것은 매화가 봄의 초입에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는 본격 상춘의 시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므로 차분한 시선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떠들썩한 분위기나 화려함보다 약간은 고적한 분위기를 관상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아직 다른 꽃들이 기지개를 켜지 않았으므로, 온전히 매화만을 즐길 수 있으니 그럴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매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선말에 와서 확실하게 변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화가 조희룡이다. 

19세기 문인 화가이자 서화가로서 중인 문화의 중심인물이다. 

매화를 지나치게 좋아해 수십 그루의 매화를 심고, 자신이 그린 매화 병풍을 둘러치고, 매화를 읊은 시가 새겨진 벼루와 먹을 사용했고, 목이 마르면 매화차를 마셨다고 한다. 

또한 ‘매화를 좋아하는 늙은이’라는 뜻의 ‘매수(梅叟)’를 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홍백매 8곡병’ 그림은 그의 매화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선 가지가 무성하고 꽃은 만발한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연지를 사용해서 홍매를 대담하게 그렸다. 그전까지 매화는 백매가 최고였는데 그의 손에서 홍매가 화려하게 장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시선의 변화를 오늘날에도 확인할 수 있다. 전국 4매 중 하나인 화엄매는 화엄사 각황전 옆에 서 있는 흑매가 아니다. 

화엄사에서 산속으로 조금 오르면 만나는 길상암에 있는 야생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엄매이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사람 중에 화엄매를 알아보고 반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길가에서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며 컸기 때문에, 그래서 나무 상층부에만 꽃을 피우고 있어서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게다가 백매여서 눈에 덜 띄는 까닭도 있다. 이에 반해 흑매는 각황전 옆에 자리에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고 색마저 매혹적이어서 사람들은 이곳에 머물며 상춘을 한다. 

그러다 보니 조선시대의 상춘 대상이었던 살구꽃과 복숭아꽃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4월은 벚꽃이 대세가 돼 봄을 장식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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