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필운대·성북동 북둔전·동대문 밖 한양 상춘 명소
살구나무가 지천이었던 서울, 지금은 고궁에 흔적만 남아

4월 청명때가 되면 살구나무는 꽃을 피운다. 그래서 이 시절에 내리는 비를 행화우라고도 부른다. 봄가뭄을 가시게 하는 비라 농부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비를 기다린다. 사진은 창덕궁 희우루 앞에 있는 살구나무다.
4월 청명때가 되면 살구나무는 꽃을 피운다. 그래서 이 시절에 내리는 비를 행화우라고도 부른다. 봄가뭄을 가시게 하는 비라 농부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비를 기다린다. 사진은 창덕궁 희우루 앞에 있는 살구나무다.

성급하게 옷장에 넣은 두툼한 옷을 챙길 정도의 꽃샘추위가 한두 번 봄의 발목을 잡아줘야 꽃들도 순서를 지키며 필 텐데, 올해는 봄이 ‘훅’ 다가온 느낌이다. 

꽃들은 순서를 가리지 않고 사정되는 대로 거의 동시에 피더니,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왕벚나무가 산벚나무라도 된 것처럼 꽃비를 흩뿌리기 전에 이파리를 내는 익숙하지 않은 봄이다.
 
그러나 순서를 지키지 않았다고 뭐라고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언제 또 이렇게 원래부터 한 가족인 것처럼 한꺼번에 핀 봄꽃을 맞이하겠는가. 

물론 꽃샘추위의 매서움이 약해진 것이 기후변화의 결과라면 앞으로도 또 목격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지난주 한 차례 내린 봄비는 벚꽃엔딩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전국의 벚꽃 명소에 상춘객을 불러 모으느라 ‘열일’했으니 이제는 다른 꽃에게 바통을 넘겨도 되지 않겠는가. 해마다 튀밥 같은 꽃구름을 선사했으니 봄에 맡겨진 벚꽃의 역할은 다한듯하다.

그런데 벚꽃이 언제부터 우리네 상춘의 대상이 된 것일까. 꽃구경하면 벚꽃을 떠올리고 벚꽃 터널을 지나야만 봄을 만진 것처럼 느끼게 된 것일까. 

답은 우리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을 듯하다. 

한때는 왜색 논란 때문에 부정적인 벚꽃 상춘 기사도 많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제주도에서 자생종 왕벚나무를 발견한 이후 더 이상 벚꽃 상춘에 관한 비판 기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땅에서 원래 자랐던 나무여서 왜색에 대한 원죄를 씻을 수 있었던 탓일 것이다. 그리고 굳이 토를 단다면, 행위의 주체는 식목을 한 사람이다. 

봄이 되어 꽃을 피우는 벚나무에겐 사실 자유의지가 전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모두들 불편한 마음 없이 벚꽃놀이를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 계절에 한 번 정도는 생각하고 봄을 맞는 것이 어떨까 싶어 다음의 이야기를 보태고자 한다. 

《동국세기시》 등의 ‘세시기’는 각 절기에 맞춰 어떤 세시풍속을 우리 민족이 챙겨왔는지를 정리한 책이다. 

정월부터 12월 그믐까지 우리는 다양한 세시풍속을 즐겨왔다. 그중에서 3~4월(음력)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궁에 있는 살구나무 중 가장 인기 있는 나무를 고루라고 하면 덕수궁 석어당 앞에 있는 살구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400년이 넘은 이 나무는 덕수궁에 있는 나무 중 가장 오랜 된 나무이기도 하다. 지난주 비바람에 꽃은 다 떨어진 상태이다.
고궁에 있는 살구나무 중 가장 인기 있는 나무를 고루라고 하면 덕수궁 석어당 앞에 있는 살구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400년이 넘은 이 나무는 덕수궁에 있는 나무 중 가장 오랜 된 나무이기도 하다. 지난주 비바람에 꽃은 다 떨어진 상태이다.

4월(음력 3월)이 되면 사실상 봄을 알리던 매화는 매화우와 함께 그의 시기를 마무리한다. 

삼월삼짇날은 진달래가 주인공이다. 화전을 부치고, 두견주 덧술을 하면서 여인네는 화전놀이를 남자들은 답청에 나선다. 

청명과 한식 때가 되면 본격적인 농사철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된다. 이때쯤 되면 살구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때 내리는 비를 행화우(杏花雨)라고도 부른다.

어린 시절 불러서 기억하고 있는 노래 중에 ‘고향의 봄’이라는 동요를 알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에 등장하는 꽃들을 살펴보자.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순서대로 나온다. 이런 식의 표현은 그 이전에도 등장한다. 윤선도의 시구절 하나를 소개한다. 

“복사꽃은 갓 피고 살구꽃은 날리고/버들은 푸르디 푸르고” 1631년경 쓴 시다. 복사꽃은 복숭아꽃이다. ‘고향의 봄’과 같은 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노래의 2절에 ‘물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이것이 100여 년 전 조선의 봄 모습이다. 그래서 《동국세시기》에서 홍석모는 봄날 한양의 상춘 절경지로 4곳을 추천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인왕상 필운대 살구꽃이고, 두 번째가 성북동 북둔전의 복사꽃이다. 세 번째는 흥인문 밖 수양버들이고 네 번째가 탕춘대의 수석이라고 적고 있다. 

이 밖에도 당시 한양 도성내 집의 절반 정도는 거의 살구나무가 있어서 이 계절 벚꽃보다 진한 살구꽃이 한양을 뒤덮고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에서 살구꽃 보기가 참 힘들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을 가야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 

창덕궁 희우루 앞 살구나무는 전각을 훌쩍 넘는 키로 수형이 웅장하게 성장해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는 나무다. 

덕수궁 석어당 한편에 서 있는 살구나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난 비에 만개했던 살구꽃들은 비가 되어 떨어졌다. 

그래도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100여 년 전의 봄을 상상하며 고궁을 찾는 것은 어떨까 싶다. 또다른 봄꽃들이 길손을 반겨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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