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의 낙화 유감, 많은 시인·묵객의 문학적 소재
서산 천리포수목원엔 아직도 피어있는 목련 있어

우리나라 자생종의 목련은 제주도에서 주로 자라고 우리가 보는 하얀 목련은 중국에서 들어온 ‘백목련’이라고 한다. 사진은 전남 순천의 선암사에 있는 백목련 사진이다. 올 3월의 모습으로 완전히 피지 않았다.
우리나라 자생종의 목련은 제주도에서 주로 자라고 우리가 보는 하얀 목련은 중국에서 들어온 ‘백목련’이라고 한다. 사진은 전남 순천의 선암사에 있는 백목련 사진이다. 올 3월의 모습으로 완전히 피지 않았다.

목련에 대한 기억은 ‘사월의 노래’에서 시작될 것이다. 

박목월의 시에 노래가 붙여져 만들어진 가곡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이 노래는 목련을 봄이 되면 으레 생각나야 했던 하얀 꽃으로 기억 깊숙이 새겨 주었다.

음악 수업 시간에 배운 노래는 형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큰 감동을 받진 못했다. 

그래도 노래의 힘은 기억을 장악한 탓에 주먹만 한 하얀 꽃을 볼 때마다 ‘목련꽃 그늘’과 ‘베르테르의 편지’를 떠올리게 해줬다. 물론 의문부호를 지닌 기억으로 말이다. 

학교에 있는 목련 중에 꽃그늘이 생길 만큼 오래된 나무는 없었고, 그렇다 보니 그 그늘에서 편지는커녕 햇빛도 가릴 수 없었던 것이 그때의 기억이다. 

게다가 베르테르가 괴테의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편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그 편지를 목련꽃 그늘에서 읽는 이유도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대충 봤던 꽃이 어느 순간엔 반갑기도 했지만, 그 꽃을 길게 보며 완상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러다 삶의 한구석을 채우듯 다가온 것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이가 들면서 나무를 가득 채워가며 피는 목련의 아름다움보다 봄비와 함께 불어오는 조금은 거센 바람에 힘없이 꽃잎 하나씩을 떨구는 모습을 보며 왜 이 꽃의 마지막은 이렇게 추레하냐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떨어져 누렇게 색이 변한 하얀 꽃잎. 

게다가 사람의 발길이라도 닿은 꽃잎에는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그 와중에도 아직 자존심을 한껏 세우고 피어있는 꽃송이들이 나무에 가득한 모습을 보면 극명한 대조가 슬퍼지기까지 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다른 꽃과 달리 목련은 그 꽃의 죽음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꽃이 됐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독 목련꽃은 낙화 유감이 많다. 소설가 김훈은 목련이 등불처럼 커지듯이 피어나지만, 낙화하는 모습은 말기 암 환자와 같다고 《자전거 여행》에서 기록하고 있다.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 목련꽃을 우리는 오랫동안 봐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목련 수종이 자라고 있는 곳은 충남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이다. 세계목련학회가 열릴 정도로 수백종의 품종이 자라고 있다. 사진은 4월초에 찍은 천리포수목원의 자목련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목련 수종이 자라고 있는 곳은 충남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이다. 세계목련학회가 열릴 정도로 수백종의 품종이 자라고 있다. 사진은 4월초에 찍은 천리포수목원의 자목련이다.

그런데 그 꽃의 느리고 무거운 죽음을 보고도 우리는 그 꽃의 아름다웠던 청춘 시절만을 생각하려 했다. 

무거운 소리를 내며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보여주는 목련의 죽음을 굳이 청춘하고 비교하기만 했다. 

그래서 목련꽃 지는 소리를 듣는 그 참담함을 아는 시인들은 추레하게 보이는 목련의 낙화를 더는 탓하지 말자고 한다. 

시인 나태주는 “너 내게서 떠나는 날/나 울지 않았으면 좋겠네/잘 갔다 오라고 다녀오라고/하루치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가볍게 손 흔들 듯 그렇게/떠나보냈으면 좋겠네”라고 노래한다. 낙화의 모습을 잘 알고 있지 않냐는 투다.

그리고 시인은 “새하얀 목련꽃 흐득 흐득/울음 삼키듯 땅바닥으로/떨어져 내려앉겠지”라고 마감한다. 

누구라도 그 모습에 미어지지 않겠느냐는 말을 건네면서 말이다. 

시인 신석정이 남긴 ‘가슴에 지는 낙화 소리’라는 시가 있다. 투병 중에 쓴 그의 절명시이다.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그는 해석하기도 힘든 상형문자처럼 시를 써 내려갔다. 

꽃이 필 때면 친구들과 잔을 기울이던 시절인데 그 친구가 문병을 와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시인의 가슴에는 “무더기로 떨어지는/백목련 낙화 소리”만 남았다고 쓰고 있다. 목련의 낙화처럼 자신도 그리되어간다는 사실을 시인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복효근 시인의 ‘목련후기’도 빼놓을 수 없는 낙화 유감을 담은 시다. 시인은 꽃이 사랑의 절정이라면 낙화는 그 끝인데 어떻게 사랑의 끝을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라며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따지고 든다.

그러면서 한순간에 지는 동백에 빗대어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라고 되묻는다. 시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사랑의 끝은 이별인데, 목련의 낙화 속에서 이별의 아픔을 이 정도는 느껴야 하지 않겠느냐며 열흘만이라도 목련을 추념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제 서울에 목련은 지고 없다. 굳이 찾는다면 산에 피는 산목련이 남아 있긴 하다. 

그리고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에도 아직도 아직 지지 않는 목련이 있다. 목련 종류만 400여 종 있는 수목원이다. 

이곳에서 목련의 낙화를 완상하면 어떨까 싶다.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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