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초록과 구별되기 위해 흰색 꽃 피우고 매개 곤충 유인
하얀색은 에너지 절약형 꽃 색깔, 대신 향과 꿀로 보상해줘

5월이면 하얀색 꽃을 개화하는 나무들이 부쩍 늘어난다. 5~6월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많은 가운데 그중 절반은 하얀색이니 더욱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주말 서울 북악산의 팥배나무다.
5월이면 하얀색 꽃을 개화하는 나무들이 부쩍 늘어난다. 5~6월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많은 가운데 그중 절반은 하얀색이니 더욱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주말 서울 북악산의 팥배나무다.

봄은 노란색으로 찾아와 하얀색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5월은 하얀색의 계절이다. 

거리의 가로수로 많이 식재돼 한창 꽃무리를 보여주고 있는 이팝나무와 근처 야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아카시나무가 당장 가장 많이 보이는 흰색 봄꽃들이다. 

그런데 산으로 눈길을 주면 더 많은 흰 꽃을 만날 수 있다. 

산딸기와 산딸나무, 산사나무, 쥐똥나무, 백당나무, 불두화, 층층나무, 때죽나무, 찔레꽃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5월엔 흰색의 꽃들이 많이 핀다. 

이렇게 흰색의 꽃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 산림청에서 연전에 그 까닭을 밝힌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이 계절에 피는 꽃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중에 흰색이 과반을 넘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수목 중 꽃의 색이 의미가 있는 수목은 약 464종. 

이들 중 5월과 6월에 꽃이 피는 나무가 444종이라고 한다. 즉 95.7%가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절에 꽃을 피운다. 

더 세분하자면 5월에 개화하는 나무는 230종(49.6%), 그리고 6월에 꽃이 피는 나무는  214종(46.1%)라고 한다. 

그러니 꽃의 개체가 가장 많은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흰 꽃을 피우는 나무가 절반을 넘어선다면 산과 들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갈 것이다. 흰 꽃이 압도적으로 많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절에 피는 꽃들은 하얀색을 선택한 것일까. 

바람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던 시절의 식물은 사실 녹색 이외의 색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식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광합성이다. 

그래서 초기의 식물들은 생식기관인 꽃도 녹색이었다. 그러다 곤충 또는 동물들에 의존해서 타가수분하는 식물들이 등장하면서 차츰 꽃도 색깔을 가지기 시작한다. 매개체가 자신을 찾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개체를 자처하는 곤충이나 동물들은 볼 수 있는 색깔이 서로 달랐다. 그리고 좋아하는 색깔도 달라서 꽃의 색깔에 따라 매개체도 따로 정해졌다.

하얀색은 식물의 입장에선 다른 색에 비해 경제적인 색이다. 여기서 남은 에너지를 꿀이나 향에 투자해 더 많은 매개곤충을 유인하는데 사용한다. 사진은 지난해 5월 파주 율곡수목원에서 촬영한 꼬리조팝나무다.
하얀색은 식물의 입장에선 다른 색에 비해 경제적인 색이다. 여기서 남은 에너지를 꿀이나 향에 투자해 더 많은 매개곤충을 유인하는데 사용한다. 사진은 지난해 5월 파주 율곡수목원에서 촬영한 꼬리조팝나무다.

대표적인 꽃가루받이 곤충인 벌의 경우를 보면 우리 눈에 빨간색으로 보이는 꽃에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우거진 숲속에 핀 보라색 꽃이나 노란색 꽃에는 벌들이 많이 모여든다. 이유는 벌의 눈의 광수용체가 우리 인간과 다르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시광선 모두를 볼 수 있지만 벌은 청색과 녹색, 그리고 자외선 수용체로 이뤄져 있어서 노란색과 녹색, 청색, 자외선 등은 볼 수 있지만, 적외선에 가까운 색은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벌은 노란색과 파란색, 보라색 등의 꽃을, 나방과 나비, 박쥐는 흰색의 꽃을, 그리고 곤충이 보지 못하는 빨간색 꽃은 새나 다람쥐 등이 주로 수분 활동을 돕는다. 

물론 나비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물론 자외선까지 볼 수 있어서 거의 모든 꽃의 수분 활동을 도울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들이 좋아하는 색깔이 다른 것과 5월에 흰색 꽃이 많은 것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선 흰색은 다른 색에 비해 식물의 입장에서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필 수 있는 꽃이다. 

즉 생식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 중 매개체를 불러 모으는 색깔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면서 다른 쪽으로 에너지를 사용해 더 많은 매개체를 불러 모은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초록이 짙어지는 시기에 가장 잘 보이는 색이 하얀색이라는 점이다. 

특히 수분을 돕는 매개체 동물들은 녹색이 짙어지면 녹색과 빨간색 등을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빛 반사를 통해 흰색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흰색의 꽃은 뭉쳐서 큰 덩어리로 피기 때문에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카시나 백당나무 불두화 등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셋째는 흰색 꽃이 에너지를 덜 썼기 때문에 향과 꿀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어 매개체를 더욱 유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쟁하는 꽃이 많다면 보상프로그램이 강한 식물이 선택받을 확률이 크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앞서 설명했듯 5~6월에 개화하는 식물이 많다는 것은 한정된 수분 매개체를 두고 식물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상당수의 식물은 흰색을 선택했고,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뭉쳐서 꽃차례를 형성했으며 강한 향기와 꿀로 매개동물을 유인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5월부터 흰색의 꽃세상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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