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랏빛 꽃피면 봄은 끝나고, 더운 여름 쉼터 돼줘
덕수궁 석조전 앞 등나무 벤치 청춘남녀에게 유명

등나무는 주로 그늘을 만들기 위해 학교와 공원 등에 주로 식재했다. 사진은 덕수궁 석조전 앞에 있는 등나무와 주목이다. 봄의 끝자락에 꽃을 피운 등나무는 한여름 내내 그늘을 만들어준다
등나무는 주로 그늘을 만들기 위해 학교와 공원 등에 주로 식재했다. 사진은 덕수궁 석조전 앞에 있는 등나무와 주목이다. 봄의 끝자락에 꽃을 피운 등나무는 한여름 내내 그늘을 만들어준다

식물은 기후변화에 관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기온이 올라간다는 것은 절기의 변화가 예전보다 더 빨리 이뤄진다는 뜻이다. 

이른 봄꽃들부터 시작해서 여름에 개화하는 늦깎이 꽃에 이르기까지 1주일에서 열흘쯤 일찍 반응한다. 

그 덕분에 식물도감에 적혀 있는 각각의 식물들의 개화 일정은 하나도 맞지 않는 상황이 됐다. 

그런 꽃 중에 등나무꽃이 있다. 보통 5월에 피는 꽃이다. 

그래서 시인 박준의 〈오월산문〉이라는 글은 “오월이 되면 덕수궁에 등꽃을 보러 가야지, 그 등꽃 아래에서 한참 앉아 있다가 돌아와야지 하는 저만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렇게 하지 못한 채 지난 5월이 지났으니 다시 새로 오월이 오려면 시간은 가장 추운 길을 지나야 할 것입니다. 이 슬픈 일도 함께 슬퍼해주셨으면 합니다”라 맺고 있다. 

그런데 덕수궁의 등나무꽃은 이미 지고 있다. 5월이 서둘러 가지 않았는데도 그늘을 만들어줄 이파리만 가득 채운 채 연보랏빛 꽃은 낙화에 여념이 없다. 

등나무의 꽃송이는 거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나무에 열린다. 

한여름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 목적으로 심은 등나무는 꽃 피는 시절이 되면 향기를 맡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찾아 든다. 

등나무의 꽃은 땅을 향하지만, 줄기는 그렇지 않다. 한자의 뜻에도 이러한 등나무의 성향은 반영돼 있다. 

등나무의 등(藤)에는 무엇인가를 감고 올라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칡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칡은 한자로 갈(葛) 자이다. 익숙한 단어 하나가 덩굴식물의 조합에서 나온다. 바로 ‘갈등’이다. 

등나무와 칡이 같이 얽혀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자주 쓰는 이 단어를 우리는 소설과 희곡에서 이야기 전개를 위해 사용한다. 

나무는 타고 올라가는 ‘갈등’의 성질을 십분 활용해 그늘을 만들고, 작품은 감정을 상승시켜주는 ‘갈등’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보고 읽는 재미를 준다. 그런데, 인간사에서의 갈등은 그런 재미보다는 피하고 싶은 이벤트일 뿐이다. 

복잡하게 꼬여 있는 일을 푸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등나무 자생 군락지는 부산 금정산의 범어사 인근에 있다. 이에 못지 않게 서울성곽길 북악산의 북서쪽 사면에도 등나무 군락지가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 등을 타고 올라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5월이면 찾을만한 공간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등나무 자생 군락지는 부산 금정산의 범어사 인근에 있다. 이에 못지 않게 서울성곽길 북악산의 북서쪽 사면에도 등나무 군락지가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 등을 타고 올라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5월이면 찾을만한 공간이다.

등나무는 콩과의 식물이다. 꽃이 지고 난 뒤 10월쯤이면 이 나무에 열매가 열린다. 열매의 모양은 콩깍지와 똑같다. 등나무가 콩과에 해당하는 이유다. 

등나무는 덕수궁의 등나무도 유명하지만 부산 범어사에 있는 등나무 군락도 알아주는 등나무다.

1966년 천연기념물에 지정돼 있을 정도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는 해발 801m의 금정산에 자리한다. 비교적 평평한 산허리지역의 범어사 인근에 소나무와 팽나무 등 큰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등나무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등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고 한다. 

서울에도 청와대를 안고 있는 북악산에 등나무 군락지가 있다. 그동안 군사적인 이유로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었던 한양도성길 북서쪽 사면으로 등나무가 꽤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제는 북악산의 여러 코스가 개방돼 있으니 5월이면 일부러라도 등나무 군락지를 보기 위해 찾아갈 만한 곳이다. 

등나무의 쓰임새는 주로 등공예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종이를 만드는 재료로도 이용됐다.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종이는 모두 닥나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때로 등의 섬유로도 만든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밖에도 “등으로 각종 그릇을 만든다”는 내용으로 봐서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등나무를 이용한 그릇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등으로 만든 베개 하나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신라시대 경주의 오류리 마을에 착한 자매가 살았는데, 둘이 좋아하는 이웃집 청년이 전쟁에 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연못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 뒤 연못가에는 등나무 두 그루가 자라나 청년의 환생인 팽나무를 감고 자랐다고 한다. 

이 전설 덕분에 등나무 잎을 베개 속으로 넣거나, 우려서 차로 마시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경주에 있는 등나무에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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