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에 의한 변종 등장하며 ‘봄의 꽃’으로 등극
지금도 한해 90억송이 이상 재배, 유럽 곳곳에 수출

튤립의 원산지는 유럽이 아니라 파미르고원지대라고 한다. 대항해시대 네덜란드는 튤립에 열광했다. ‘튤립열풍’이 불어 구근 하나의 가격이 대저택의 가격과 맞먹는 경우도 발생했다. 여전히 네덜란드는 튤립의 나라다. 재배지역이 맨해튼의 두배에 달한다고 한다.
튤립의 원산지는 유럽이 아니라 파미르고원지대라고 한다. 대항해시대 네덜란드는 튤립에 열광했다. ‘튤립열풍’이 불어 구근 하나의 가격이 대저택의 가격과 맞먹는 경우도 발생했다. 여전히 네덜란드는 튤립의 나라다. 재배지역이 맨해튼의 두배에 달한다고 한다.

봄철, 잘 가꾸어진 공원에 가면 울긋불긋 봉긋하게 피어오른 튤립을 자주 만나게 된다. 

다른 꽃들과 비교할 때 색깔도 다양하고 줄무늬 등의 변형된 모양도 많다. 이 튤립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네덜란드’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거래 열풍을 빗대 자주 인용하는 ‘튤립 광풍’ 혹은 ‘튤립 거품’ 등도 같이 떠오른다. 

최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장의 급락 등을 보고 있으면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튤립의 원산지는 유럽이 아니라 중앙아시아다. 그것도 파미르고원이라고 한다. 

이 꽃이 유럽에 소개된 것은 처음 이 꽃을 관상용으로 재배한 터키를 통해서다. 꽃의 모양이 이슬람권의 남성들이 머리에 쓰는 터번을 닮았다고 해서 튤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래서 지금도 튤립은 터키의 국화다. 물론 네덜란드도 튤립을 국화로 삼고 있지만, 튤립에 대한 사랑은 터키가 훨씬 빨랐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튤립에 관한 사랑의 크기를 따져본다면 네덜란드가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다. 

이 꽃으로 온 나라 들썩거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매년 90억송이 이상의 튤립을 재배하고, 그 면적이 미국 맨해튼의 두 배에 해당할 만큼 넓은 면적(120㎢)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각종 색깔의 튤립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네덜란드는 튤립의 나라가 된 것일까. 우선 튤립 광풍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흔히 튤립 광풍의 배경을 대항해시대에 벌어들인 네덜란드의 풍부한 부동자금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한 해상무역으로 차곡차곡 국부를 늘려가던 시절이다.

오스만제국을 거쳐 유럽으로 들어와 네덜란드에 소개된 시점도 바로 네덜란드가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때였다. 그리고 1593년경 레이던 대학교의 식물학자 카를로스 클루시우스가 튤립 재배에 성공한다.

생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구근식물인 튤립을 만난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꽃에 매료된다. 

하지만 안타깝게 이 꽃은 씨앗을 심으면 못해도 3년에서 7년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구근을 심으면 꽃은 빨리 피지만, 아예 피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구근은 서늘한 곳에 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의 기후와 잘 어울린다. 

또 튤립은 봄철에는 습한 것을 좋아하고 여름에는 건조한 토양을 선호한다. 즉 네덜란드의 사질토는 물 빠짐이 좋아서 튤립 재배에 안성맞춤이다. 

튤립은 꽃이 크고 색깔도 무척 다채롭다. 바이러스에 의한 변이가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육종과정을 거치면서 종류가 다양해져 지구상에 8000종의 튤립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튤립은 꽃이 크고 색깔도 무척 다채롭다. 바이러스에 의한 변이가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육종과정을 거치면서 종류가 다양해져 지구상에 8000종의 튤립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다만 튤립의 꽃잎이 문제였다. 

큰 꽃으로 개량된 튤립은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꽃을 다시 피울 수 있는 알뿌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튤립은 잎에 영양분을 저장한다. 

그래서 색이 완전히 누렇게 돼 저절로 잎이 떨어지기 전까지 잎을 건드리면 안 된다. 

하지만 누런 꽃잎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튤립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대체로 이를 보기 싫어하는 정원주인들은 누런 꽃잎을 제거하고 만다.

이는 튤립의 구근에 영양분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튤립은 정원에서 여러 해를 살지 못한다. 

당연하게도 튤립을 보고 싶은 사람은 매해 새로운 구근으로 꽃을 피워야 했다. 

이런 특징을 가진 튤립이 단순히 경제적 부가 쌓였다고 네덜란드에서 광풍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건축의 기법 변화가 없었다면 네덜란드의 튤립 사랑은 없었을 것이다. 그 핵심은 판유리 제조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뚱딴지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베네치아의 전성기부터 판유리가 등장하면서 건축물의 유리창 공간이 발생하게 된다. 

숲과 정원을 조성할 수 없었던 베네치아는 화분에 꽃식물을 심어 유리창에 두는 식으로 도시에 색을 입혔다.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로 튤립을 화분에 심어 창문을 장식한다. 집안을 장식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폭발한다. 특이한 구근을 원하는 수요와 합쳐지면서 튤립은 전 국민의 투기대상이 됐다.

심지어 요즘 같으면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국가마저 튤립부자세를 신설해 세금을 거둘 정도였으니 모두가 튤립 광풍에 눈이 먼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튤립의 종류는 약 8000종에 달하게 됐다. 식물 하나가 이렇게 많은 가짓수를 갖는 경우는 튤립이 유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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