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첫 개인전, 술과 물아일체 된 삶 그려
고 김택상 명인에게 배운 삼해주 즐기며 작품활동

화가이자 주점 사장인 ‘권도경’ 작가가 자신의 첫번째 개인전 전시회장 한편에 술자리를 만들어 자신이 빚은 술을 권하고 있다. 술은 10여 년 전 고 김택상 명인으로부터 배운 삼해소주와 삼해주 등이다.
화가이자 주점 사장인 ‘권도경’ 작가가 자신의 첫번째 개인전 전시회장 한편에 술자리를 만들어 자신이 빚은 술을 권하고 있다. 술은 10여 년 전 고 김택상 명인으로부터 배운 삼해소주와 삼해주 등이다.

추사의 ‘세한도’ 속 남루한 집 한 채에는 여지없이 사람이 있었다. 점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술을 나누거나 차담을 하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에 나오는 녹아내리는 큰 시계가 초당 옆 나무에 걸려 있기도 하고, 큰 그늘을 안겨주는 나무가 그림을 가득 메우고 있기도 하다. 

권도경 작가(57)의 첫 전시회(‘첫봄’)에 선보인 그림들에 담긴 내용이다. 

동인끼리의 전시회는 여러 차례 가졌지만, 단독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목동 구구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를 찾았다. 

권 작가는 글과 그림이 같이 담겨 있는 자신의 그림을 ‘시서화’라고 정의한다. 

10여 년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캘리아트’라는 단어를 썼지만, 글씨를 예쁘게 쓰는 캘리그라피의 범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 바로 잡았다고 말한다. 

그가 작품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느냐는 질문이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나온다. 그림 선생이 특별히 없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긴 했지만, 스스로 ‘무학’임을 강조한다. 

다만 그림을 그리면서 영향을 받은 존재들은 있다고 한다. 그림은 추사 김정희이고, 글에 대한 사색은 신영복 선생이란다. 그렇게 받은 영향은 그의 작품에 오마주 형태로 등장한다. 추사의 ‘세한도’와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가 바로 그런 소재들이다. 

그의 직업은 광고회사 대표이다. 카피라이팅을 하고 디자인을 하던 유명 광고장이였다고 한다.

지금도 회사는 남아 있으나, 광고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일감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선택한 것이 작가의 길이다. 

그는 지금 작가라는 전생의 명함을 내밀고 있고, 현생은 술빚는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전생의 명함을 내밀면서 현생의 일을 같이 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현생의 명함은 서울 종로 낙원동에 있는 ‘낙원’이라는 이름의 전통주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살아온 인생경로가 다양하듯이 그의 작업 공간인 ‘낙원’의 이력도 다채롭다. 

예전에는 광고회사의 사무실이었는데, 지금은 작가의 작업실이자 주방장 특선 요리를 제공하는 전통주점이다. 

이러한 설명 자체가 낯설 것이다. 하나로 잘 모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들을 하나의 길로 모아서 걷는 중이다. 

권 작가에게 그림은 일이고, 사람이고, 술이다. 술은 관계를 잇는 매개체였으며, 그의 일은 관계를 맺는 광고에서 시작해 관계를 보여주는 예술로 넘어왔을 뿐이다. 

개인전 ‘첫봄’에 전시된 작품 중 하나다. 봄을 유독 좋아한다는 권 작가는 목련꽃을 풍등으로 표현해 세상을 밝히고 있는 봄을 말하고자 한다. 나무 아래 조그마한 집에선 두 사람이 술 한잔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개인전 ‘첫봄’에 전시된 작품 중 하나다. 봄을 유독 좋아한다는 권 작가는 목련꽃을 풍등으로 표현해 세상을 밝히고 있는 봄을 말하고자 한다. 나무 아래 조그마한 집에선 두 사람이 술 한잔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번 첫 전시회 ‘첫봄’에 담겨 있는 그림들이 그런 그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그의 아우라는 ‘술’에서 잘 표현된다. 

작업실과 주점이 물아일체처럼 ‘하나’가 되어 있으면서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닌 것처럼 작가와 양조인의 길도 마찬가지다. 

그림 안에 담겨 있는 점 하나의 사람이든 큰 나무 같은 사람이든 그의 그림 속 주인공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권 작가가 즐기는(또는 양조하는) 술은 무엇일까. 그의 술은 서울을 대표하는 술 중 하나인 삼해소주에서 출발한다. 

서울 북촌에 있던 무형문화재 전시관에서 고 김택상 명인을 만난 이후 술의 세계관이 바뀌었다고 한다. 

술맛을 보고 놀란 권 작가는 이후 10여 년 동안 삼해소주와 삼해약주 등을 직접 빚으며 우리 술을 즐겨왔다. 

광고회사 사무실은 자연스레 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놀이터가 됐다. 그를 찾는 사람들과 즐겨 술을 마시던 장소를 그는 아예 주점으로 전환하기에 이른다. 

그날그날 상황에 맞춰 안주를 내는 ‘낙원’은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술집이다. 스스로 ‘반승반속’임을 강조하는 권도경 작가에게 술은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난 여러 작품에서 이런 작가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마음’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흔들리면 고이지 않고 고요함이 없으면 맑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흔들림의 대상은 마음일 수도 있지만, 그림에선 술잔에 담겨 있는 막걸리다. 

또한 ‘천년명주’라는 그림에선 “천년을 이긴 명주, 한번 열면 맛과 향 달아나고, 백 년 수도 공덕은 말 한마디로 사라진다”라고 적고 있다. 그의 사유의 결과물들은 아름다운 글귀와 함께 그림에 담겨 있다. 

그가 배운 향기로운 삼해소주와 함께 말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