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경제와 금융에 바란다'

[편집자주] 대한금융신문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변화와 성장 가능성을 금융권 전문가 및 퇴직금융인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윤 정부가 보완해야 하는 경제, 금융에 관한 이야기와 변화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권의종 칼럼] 금융산업은 덩치가 크다. 은행, 보험, 증권 등 분야별로 거대 산업군을 이룬다. 세력도 막강하다. 금융산업은 자금 융통, 지급 결제, 신용 평가 및 정보 축적 등 다양한 역할과 특별한 기능을 수행한다. 금융산업은 공공성이 강조되며 철저한 사전 감독과 사후 검사를 통해 건전성이 유지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빅테크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금융산업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SNS, 포털, 유통 중심의 고객 접점 플랫폼을 토대로 혁신적인 서비스가 속속 출현하고 있다. 

금융회사, 취준생 선망의 대상…실상은?

금융산업은 취업시장에서도 큰 손이다. 해마다 많은 대학 졸업자들을 채용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최고 수준의 연봉에다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워라밸(Work-Life-Balance)도 좋다. 수익성과 안정성, 성장성을 고루 갖춘 ‘철밥통’ 3종 세트다. 현재는 65세 정년 연장까지 거론되고 있다. 돌아가는 분위기로 볼 때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神)의’ 직장, ‘꿈의 ’ 직장 등 온갖 수식어로도 칭송이 부족할 정도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알고 보면 실상은 딴판이다. 금융산업의 인력 운용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앞에서는 신입 직원을 대거 뽑으면서 뒤에서는 기존 직원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금융인들의 퇴직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점포 축소, 인력 구조조정, 비대면, 디지털화 등의 이유로 정년도 다 못 채우고 몸 바쳐 일한 직장을 황망히 떠난다. 명예퇴직이 봇물 터지듯 이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20개 은행의 해고·명예퇴직에 쓴 돈이 자그마치 2조3540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새 2000명 넘는 은행원이 자리를 떠났다. 증권업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59개 증권사의 지난해 말 명예퇴직금은 571억8292만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증권사의 당기순이익이 9조283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한 것과도 대비된다. 그나마도 이는 ‘호황 형’ 퇴직이다.

금융 퇴직 인력 활용은 ‘일거양득’

금융인력의 퇴직은 개인적 실직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이다. 장구한 기간에 걸쳐 축적된 경험과 지식, 체화된 노하우 등이 일거에 사장되고 만다. 인력 수급의 미스매치로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벌어진다. 중소기업에서 전문인력을 구하는 건 언감생심. 고급 인력 확보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렵다. 기업경영에서 가장 필요한 게 돈인데, 자금 조달과 재무 관리에 능한 인력은 태부족 상태다. 

중소기업이 겪는 돈 가뭄은 제도적 뒷받침이 충분치 못한데도 원인이 있다. 하지만, 있는 제도도 몰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집안에는 산해진미가 잔뜩 차려 있는데, 밖에서는 쫄쫄 굶고 있는 것과 같다. 금융기관은 대출할 곳을 찾지 못해 실적을 걱정하고, 기업은 제도를 알지 못해 돈 가뭄에 시달리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곤 한다. 이럴 때 금융전문가가 살짝 귀띔만 해줘도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게 안 되고 있다.

차제에 퇴직인력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퇴직인력에 관한 인적 정보를 관리하고, 구인·구직을 연결하는 ‘인력 뱅크’ 설립이 절실하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실업난, 구인난 해소와 함께 인력 재활용의 ‘일거삼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구태여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퇴직자협회 등 민간단체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사업 수행이 가능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2019년 고령자 통계를 보면 정년퇴직자는 전체 퇴직자의 7.1%에 불과하다. 10명 중 1명꼴도 안 된다. 아울러 취업포털 잡코리아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스스로가 체감하는 퇴직 나이를 중소기업 51.7세, 대기업 49.8세로 답했다. 실직자 보호 사회안전망도 취약하다. 통계청 ‘산업별 기업생존율'에 따르면 창업 후 2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47%에 그친다. 재취업 시장도 빙하기다. 그나마 가끔 나오는 거라곤 경비, 청소, 주차관리 등 단기 저임금 일자리가 고작이다. 

힘들여 길러진 고급 인력 가성비 만점

퇴직인력 활용은 일본이 발 빠르다. 퇴직자에 대한 호칭부터 다르다. ‘신(新) 현역’이라 높여 부른다. △퇴직 전문인력 기술지도사업 △매니지먼트 멘토 등록제도 △신 현역 매칭 지원사업 등을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기술지도는 지난 1991년 발족한 ATAC라는 기업의 전직 임원으로 구성된 기술 컨설턴트 그룹이 주도하는 민간 지원사업이다. 대기업 출신 숙련기술기능자를 지방 중소기업들에 파견해 기능과 노하우를 전수한다. 

멘토 등록제도는 퇴직 전문인력을 일본 경제산업성에 등록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업에서 경영 애로점을 문의해 오면 정부와 중소기업 지원기관이 협력해 해결해 주는 지원 시스템이다. 신 현역 매칭 지원은 대기업 은퇴 전문인력의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에 연결해 기술개발, 생산제조뿐 아니라 경영전략·기획, 판매·마케팅 분야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일본이 하는 것을 우리라고 못 할까. 여건이 갖춰진 금융산업에서부터 추진하는 게 순서일 수 있다. 금융산업은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상당수 확보된 상태다. 전국퇴직금융인협회가 양성하는 금융해설사만도 천 명에 육박한다. 경영지도사, 금융교육 전문강사, 재무 컨설턴트 등 인력풀이 탄탄하다. 이들을 잘만 활용하면 기업에 든든한 조력자가 되게 할 수 있다. 또 퇴직자에게는 ‘인생 2막’ 설계의 호기가 된다. 

윤석열 정부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겉에 드러나는 일자리 수나 취업률에 일비일희해선 안 된다. 쓰레기 줍기, 빈 강의실 전등 끄기, 교문 지킴이 등 싸구려 단기 일자리로 국민 눈을 속이려 들면 곤란하다. 신규 취업자 늘리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존 유휴인력의 운용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힘들여 길러진 고급 인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만큼 유용한 일자리 대책이 없다.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 가성비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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