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경제와 금융에 바란다'

[편집자주] 대한금융신문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변화와 성장 가능성을 금융권 전문가 및 퇴직금융인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윤 정부가 보완해야 하는 경제, 금융에 관한 이야기와 변화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신뢰는 한국 금융의 미래를 위해 지켜야 할 소중한 덕목

[권의종 칼럼] 프랑스 혁명이 한창이던 1792년 8월 10일. 파리의 퇼르리 궁전으로 성난 민중이 몰려왔다. 궁에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물고 있었다. 엄청난 군중에 겁먹은 왕의 근위병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직 한 부대만이 필사적으로 군중과 맞서 싸웠다. 사상자가 속출하자 프랑스 시민군이 회유에 나섰다. “퇴로를 열어줄 테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하지만 이들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왕과 왕비는 궁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이 부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모두 786명. 스위스 용병들이었다. 이들은 분명 살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런 무모한 싸움을 한 걸까. 프랑스 왕에 대한 충성심? 아니었다. 조국이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죽은 병사에게서 유서 하나가 발견됐다. 거기에는 “우리가 왕과 맺은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친다면 이후 우리의 후손들은 아무도 용병으로 일하지 못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 산이 전 국토의 70%, 호수까지 합치면 75%에 달한다. 경작지는 25%뿐이다. 그마저 냉기가 심해 농사를 짓기 어려웠다. 스위스가 오랫동안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살아야 했던 이유다. 대다수는 먹고 살길을 찾아 해외로 떠나야 했다. 용병 사업이 시작된 배경이다. 스위스인의 용맹성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살아 폐활량이 크고 체력도 강했다.

국경을 맞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과 싸우느라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 스위스 용병의 몸값은 비쌌다. 그런데도 왕가들이 급할 때면 이들을 찾곤 했다. 100년 전쟁, 부르고뉴 전쟁, 스페인·폴란드·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나폴레옹 전쟁 등 유럽의 굵직한 전쟁 뒤에는 늘 이들이 있었다. 로마 교황의 바티칸조차 수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경비는 오로지 스위스 용병에게 맡기고 있다. 왜 그럴까. 절대로 고용주를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위스 금융산업의 성공 키워드…‘신뢰’

용병 얘기를 말머리 삼아 긴 사설을 늘어놓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스위스가 금융업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 중요 키워드가 이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신뢰’다. 스위스의 금융업은 프랑스의 칼뱅파 신교도인 위그노들이 이주해오며 시작됐다. 17세기 후반 루이 14세가 신교의 자유를 허용한 낭트칙령을 철회하면서 제2차 위그노 탈출이 벌어졌다. 스위스로 온 위그노 중에서는 신흥 재력가들이 많았다. 이들은 주로 제네바에서 고리대금업을 영위했다.

공교롭게도 사치를 일삼던 루이 16세가 이들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 그러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자신이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절대 비밀에 부쳐 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내쫓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손을 내민다는 게 창피했을 것이다. 스위스 은행은 예금주와 돈의 출처를 묻지도 않는 비밀주의로 유명하다. 이게 바로 루이 16세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스위스 금융업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처면서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스위스가 중립국의 지위에 있다는 점과 스위스라면 자신들의 돈을 끝까지 지켜 둘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쟁이 나자 부자들은 돈을 맡길 안전한 나라를 찾았다. 유럽에는 그런 나라가 스위스밖에 없었다. 스위스 은행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몰려들었다.

독일과 영국, 어느 쪽도 믿을 수 없었다. 전쟁에 지는 순간 돈이 휴지 조각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쟁 수행에 필요한 석유를 공급하는 아랍국가들도 대금결제 수단으로 스위스 프랑을 요구했다. 허구한 날 침략이나 당하던, 용병 외에는 달리 먹고 살길이 없었던 가난한 나라의 돈이 일약 기축 통화의 반열에 올랐다. 금융업이 스위스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금융 범죄와 사기 성행하고, 비위와 부조리 판치는 한국 금융

스위스 금융의 성공 신화는 한국 금융으로 시각을 돌리게 한다. 한국 금융의 신뢰 지수(Trust Quotient)는 얼마일까? 선뜻 자신 있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금융에 대한 신뢰가 시원찮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에 테라·루나 가상화폐 사고까지. 금융 범죄가 끓이지 않는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도 판을 친다. 금융회사 임직원의 비위와 부조리가 난무한다. 청탁, 횡령, 부당 거래, 부정 채용 등의 일탈이 공공연하다.

한국일보의 ‘2020년 금융 관련 인식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기가 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국내 금융소비자의 금융에 대한 신뢰도 변화와 미래 금융에 대한 전망을 조사한 결과가 실망스럽다. 응답자의 54.3%가 "금융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라고 답했다. 실망한 이유가 가관이다. △금융사의 사고 후 책임지지 않는 모습, 82.3% △투자상품에 대한 불충분한 정보 제공, 66.9% △계속되는 환매 중단 사태, 54.1%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가 실시한 ‘2021년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금융회사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응답자의 33.4%는 금융서비스나 상품 이용 시 불만족스러웠거나 불합리한 처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70.3%는 금융회사의 윤리 의식이 충분치 않다고 답했다. 금융상품에 대한 불신도 크다. 65.8%가 금융 앱에서의 금융상품 추천을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응답했다.

금융은 신뢰를 먹고 사는 비즈니스다. 대한민국 금융의 후진성은 신뢰 부족에 있다. 신뢰는 금융업이 생존과 발전을 이어가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소중한 덕목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보듯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존립할 기반이 없다. 한국 금융에 교훈이 되고 경계가 되는 잠언(箴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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