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경제와 금융에 바란다'

[편집자주] 대한금융신문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변화와 성장 가능성을 금융권 전문가 및 퇴직금융인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윤 정부가 보완해야 하는 경제, 금융에 관한 이야기와 변화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부채 공화국’

[권의종 칼럼] 토요일 오후만 되면 줄이 길게 늘어서는 곳이 있다. 로또복권 ‘명당’ 가게 앞이다. 대박을 노리는 행렬이다. 제1018회 추첨에서는 9년 만에 100억원대 당첨금이 나왔다. 2명이 1등에 당첨돼 각각 123억6174만원의 당첨금을 받게 됐다. 세금 뺀 실수령액만도 83억원 정도다. 서민은 평생 가도 만져 볼 수도 없는 돈, 인생역전이 가능한 거액이다. 구태여 이유를 대자면 먹고 살기가 그만큼 팍팍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민 대다수의 의식주가 버겁다. 다락같이 오른 집값과 뛰는 전·월세금 부담에 허리가 휜다. 먹을 거 입을 거 할 것 없이 온갖 생활물가가 한없이 치솟고 있다. 금리마저 연거푸 뛰고 있다. 오르지 않는 것이라곤 급여생활자의 월급과 자영업자의 알량한 수입뿐이다. 1인당 국민소득(GNI) 3만5000달러, 세계 10대 경제 대국, OECD 회원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안 난다. 느는 건 빚뿐이다. 

대한민국은 ‘부채 공화국’이다. 가계 빚이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 36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4.3%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 2분기부터 얻은 '가계 빚 세계 1위'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가계부채가 경제 규모(GDP)를 웃도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기업부채도 높다. 한국의 기업부채 비율이 최근 1년 동안 5.5%포인트 늘었다. 증가 속도 면에서 조사 대상국 중 2위였다. 민간 부채가 위험수위까지 이른 것은 집값과 전셋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대출 수요가 몰린 데다, 저금리에 따른 증시 활황으로 ‘영끌 투자’가 늘어난 탓이 크다. 올 1분기 가계부채 잔액은 1859조원, 2년 전보다 250조원가량 증가했다. 정부 부문 부채의 GDP 대비 비율도 만만찮다. 44.6%로 25위를 기록했다.

금융부실, 소비 위축, 경기 침체 등 위험 커져

국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도 줄지 않고 있다. 금리상승과 부동산거래 부진 등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했다. 그러던 게 4월 들어 1조2000억원 불어나면서 5개월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까지 오르면, 대출부실 등 금융시스템이 위험해진다. 이자 부담이 늘어 소비도 위축된다. 급기야 국내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도 부채위기였다. 금융시스템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부채를 그대로 방치하다 생겨난 참사였다. 지금 상황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부동산과 주식 등 위험자산에 부채가 과도하게 쏠려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못 내는 한계기업의 대출이 58조원이나 된다.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부채상환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걱정은 또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가 오는 9월 말로 끝나게 된다. 그때 가면 대출 부실의 잠재적 위험이 폭증하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속출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해당 대출 잔액이 지난 1월 말 기준 70만4000여건, 133조4000억원에 이른다.

부채증가를 가벼이 봐선 안 된다. 그대로 뒀다간 빚 폭탄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부실 위험이 큰 부채의 총량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급선무는 가계부채 급증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해온 부동산시장 안정을 통해 가계대출 감소를 유도하는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집값 안정 없이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잠재우기 어렵다. 

부채 연착륙시키고, 기업의 매출·수익 늘려야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 했다. 옛말에 불과하다. 지금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 원리금 상환 불능 위험이 큰 금융취약자, 고위험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재정 측면의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특정 시점에 상환부담과 부실위험이 집중되지 않도록 저금리 대환대출, 원리금 장기상환 등 리스크 이연을 위한 연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기준금리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 인상하더라도 지나치게 속도를 내서는 안 된다. 경제 주체들이 금리 인상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가계와 기업의 소비와 투자위축, 금융 건전성 저하, 이에 따른 경기둔화 등의 제반 부작용을 고려해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를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래봤자 임시변통이다. 근본 대책이 긴요하다. 빚은 안정된 소득이 없으면 늘어나게 마련이다. 소득보다 소비가 많으면 부채 발생을 피할 수 없다. 이를 바꿔 말하면 부채 감소는 소비를 줄이거나 소득을 늘릴 때 가능하다. 지금처럼 물가 상승기에는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 소득을 늘려 빚을 갚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기업도 경쟁력 강화로 매출과 수익을 더욱 늘려야 한다.

빚만큼 무서운 게 없다. 깊은 함정과도 같아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1930년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빚은 갚을수록 늘어난다”라며 이런 현상을 아프게 꼬집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 전 재산을 내놓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전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은 부채경영의 괴로운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빚 없는 경영을 하고 싶다”고. 빚 앞에 장사 없다. 재벌도 경제도 국가도 꼼짝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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