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과 같아 시인들도 자주 인용하는 봄꽃나무
가을이면 모과 유사한 열매, 약용 및 술 제조에 사용

명자나무꽃은 벚꽃이 지면 피기 시작한다. 붉은색 꽃이 일반적이지만 하얀색 꽃도 핀다. 가시가 있고 성장이 빨라 경계목으로 많이 심고 있다. 최근에는 관상용으로도 인기가 많아 고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은 덕수궁에 핀 명자나무꽃이다.
명자나무꽃은 벚꽃이 지면 피기 시작한다. 붉은색 꽃이 일반적이지만 하얀색 꽃도 핀다. 가시가 있고 성장이 빨라 경계목으로 많이 심고 있다. 최근에는 관상용으로도 인기가 많아 고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은 덕수궁에 핀 명자나무꽃이다.

붉은색의 명자나무꽃이 피면 봄이 무르익었음을 알 수 있다.

봄꽃의 대명사인 벚꽃이 지기 시작하면 명자꽃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 자라면 어른 키 정도 높이까지 자라는 나무다. 꽃은 언뜻 보면 장미꽃이나 동백꽃처럼 보이기도 하고 붉은색을 띤 매화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장미라고 하기엔 꽃의 크기가 작고, 매화라고 하기엔 색이 너무 붉다. 주로 붉은색의 꽃을 피우지만 간혹 흰색의 꽃도 핀다.

꽃잎이 다섯 장이다. 그래서 장미과에 속한 나무다. 이름은 촌스럽다. 예전에 많이 사용하던 여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명자꽃을 다룬 시에서도 그런 사연이 자주 담긴다.

안도현 시인의 〈명자꽃〉에도 “그해 봄 우리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라고 적고 있고 이영혜 시인은 〈꽃잎의 기억〉이라는 시에서 “내 남편의 첫사랑은/명자, 명자나무”라고 쓰고 있다. 사람의 이름과 같아, 명자꽃이 좋았던 문인들은 앞다퉈 꽃을 의인화했다. 

명자라는 이름의 기원은 한자 ‘명사榠摣’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동의보감》과 《훈몽자회》 등의 책에 기록된 이름이다.

그런데 당시 이 한자의 발음이 ‘명쟈’여서 명자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 중부가 원산지이며 오래전부터 가꾸어 온 나무여서 《시경》에도 등장한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중부 이남에서 주로 자라고 무리를 짓는 특징이 있다. 

명자꽃은 봄꽃답다. 색이며 향이 그렇다. 붉은색과 흰색으로 피는 이 꽃은 너무 예뻐서 집안에 심지 않았다고 한다. 여인네의 마음을 뒤흔들어 바람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명자나무는 장미나무과이다. 그래서 꽃잎은 다섯장이며 가을에 모과과 비슷하게 생긴 열매를 맺는다. 꽃나무의 크기에 비해 커 이색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른 이름으로 산당화라고도 불린다. 북한에서는 산당화와 명자나무를 분리하지만, 우리는 같은 나무로 본다.
명자나무는 장미나무과이다. 그래서 꽃잎은 다섯장이며 가을에 모과과 비슷하게 생긴 열매를 맺는다. 꽃나무의 크기에 비해 커 이색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른 이름으로 산당화라고도 불린다. 북한에서는 산당화와 명자나무를 분리하지만, 우리는 같은 나무로 본다.

이 꽃의 다른 이름은 산당화다. 북한에서는 산당화와 명자나무를 달리 구분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같은 나무로 분류하고 있다.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아가씨꽃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나무는 전정가위로 가지를 쳐도 곧 새가지가 나온다. 이런 특성이 있어 사철나무와 쥐똥나무 등과 함께 울타리 나무로 많이 심는다. 특히 명자나무는 가지가 변한 가시까지 가지고 있어 화단의 경계나 출입구 좌우에 심기도 한다. 

봄꽃이 지면 열매가 열리는데, 한여름 뙤약볕을 받으며 달걀 크기만 한 모과처럼 생긴 열매가 익어간다. 큰 경우에는 어른 주먹만 하다. 초록색의 열매는 마치 모과처럼 다 익으면 노란색을 띤다. 모과와 사촌이어서인지 생김새도 모과 열매와 비슷하다.

작은 키의 나무가 큰 열매를 매달고 있는 풍경은 꽃의 아름다움만큼 이색적이다. 

이 열매를 《동의보감》은 “효능은 모과와 거의 비슷한데 토사곽란으로 쥐가 나는 것을 치료하며 술독을 풀어주고 메스꺼우며 생목이 괴는 것 등을 낫게 한다. 냄새가 맵고 향기로워 옷장에 넣어두면 벌레와 좀이 죽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약성이 뚜렷해 약으로도 쓰고 향기가 좋아 술로 담가 마시기도 했다. 

명자나무에는 ‘사돈’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 단어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순우리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고려 예종 때 여진 정벌에 나섰던 윤관 장군은 부원수였던 오연총과 서로의 자녀를 혼인 맺기로 했는데, 하루는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어 윤관이 술을 들고 오연총을 만나러 나왔는데 집앞 개울이 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연총도 같은 생각으로 술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둘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앉아 각자의 술을 상대방이 건네는 술로 생각하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앉은 곳이 사(査)였고 여기서 머리를 조아리면서(돈, 頓)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사돈’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사’는 풀명자나무를 뜻하기도 하지만, 풀명자나무는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나무여서 고려 때의 ‘사’는 ‘나뭇등걸’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맞아 보인다.

그루터기에 걸터앉아야 술을 제대로 마실 수 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명자나무꽃이 피었을 때 그 나무를 바라보며 술 한잔을 마시는 것도 꽤 그림이 좋아 보인다.

지금 덕수궁에 가면 붉은색과 흰색의 명자꽃은 볼 수 없지만, 커가는 열매를 만날 수 있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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