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경제와 금융에 바란다’

 

[편집자주] 대한금융신문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변화와 성장 가능성을 금융권 전문가 및 퇴직금융인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윤 정부가 보완해야 하는 경제, 금융에 관한 이야기와 변화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 시너지 창출로
산업 발전‧경제 성장의 든든한 토대 쌓아야

[권의종 칼럼]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 야구계의 속설 가운데 하나다. 구원투수는 보통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들기 때문에 타자는 이 공을 놓치지 말고 과감하게 휘두르라는 주문이다. 불펜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위기 상황에서 앞선 투수가 강판을 당한 경우와 이닝 교체 후 시작부터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다. 특히 전자의 경우 초구가 스트라이크일 확률이 높다는 게 야구전문가의 견해다. 

정권 교체 후에 이뤄지는 첫 조각(組閣)도 투수 교체 상황과 비슷하다. 부처의 새 수장이 어떤 비전으로 무슨 정책을 구상하는지 다들 궁금해한다. 지명 후 첫 일성(一聲)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한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된 김주현 후보자는 그런 점에서 파격적인 화두를 던졌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라는 시의성 있는 주제로 금융권을 술렁이게 했다. 정통 금융관료 출신다운 언급이다.

금산분리가 뭔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결합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회사가 제조업 등 비(非)금융회사를 소유 못 하게 하고, 반대로 제조업 등 비금융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영위하는 회사가 은행을 자회사로 못 두게 한다. 산업자본이 소유할 수 있는 은행 지분을 시중은행 4%, 지방은행 15%로 제한한다. 비금융기업이 금융회사를 보유하면 자금조달 측면에서 이점을 갖게 됨을 규제하려는 게 주목적이다. ‘기업의 사금고화' 방지 의도다.

반대로 은행 등 금융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비금융기업을 자회사로 거느리는 것도 금한다.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소유할 수 없다. 다만 보험지주회사나 금융투자지주회사는 비금융 자회사나 손자회사의 보유가 가능하다. 은행은 비금융회사의 지분을 15% 이상 보유할 수 없고, 보험사는 계열사의 지분 중 총자산의 3%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 

윤 정부 첫 금융위 수장이 쏜 금산분리 완화
금융관료 출신다운 시의성 있는 언급

금산분리는 역사가 오래됐다. 1961년 법에 명시, 60년이 넘었다. 철통같은 금산분리 원칙도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20년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이라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지면서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IT기업일 경우 은행의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게 바뀌었다. '역차별' 지적이 나온다. '재벌'이라는 이름 때문에 금융업에 진출하지 못했던 비금융기업과 달리 '테크'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됐다.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빅테크 기업은 금융과 비금융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사업을 펼칠 수 있으나, 금융회사는 비금융사업에 대한 진출이 법에 막혀 있다. 게다가 금융시장 개방으로 외국자본은 국내 은행 산업에 마음대로 진출할 수 있으나, 국내 산업자본은 은행을 소유할 수 없게 돼 있다.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지배만 쉽게 만들었다.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뭐가 달라질까.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진출과 비금융회사의 금융업 진출에 대한 허들이 낮아져 산업간 균형이 잡힐 수 있다. 금융회사는 그들이 보유한 인프라와 융합할 수 있는 비금융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비금융기업도 안정적인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금융산업에 문을 두드릴 수 있다. 

금융회사는 고객의 결제 데이터, 자산 데이터 등을 갖고 있어 이를 비금융업에 활용하면 돈 되는 먹거리를 찾을 수 있다. 고객의 '돈'에 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 고객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분석하면 신사업 개척이 가능하다. 특히 질 좋은 데이터를 가진 은행에는 더없는 호기다. 은행법에 명시된 주 업무와 부수·겸영 업무 외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금융·비금융회사 모두에 좋은 일
분리 철폐보다 단계적 완화 필요

비금융회사들도 금융업에 진출해 새 수익원을 발굴할 수 있다. 든든한 캐시카우(cash cow) 구실을 하는 금융회사를 계열사로 둘 수 있다. 금융회사 지분에서 높은 배당을 받는 거 말고도 누리는 이점이 크다. 금융회사는 고객 등의 자금을 자산으로 하는데 이를 돌려주기 전까지는 모두 금융회사의 자본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룹사 체제의 입장에서는 그룹 전체의 자산포트폴리오가 더 탄탄함을 시장에 표출할 수 있다. 

금산분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금산분리의 완전한 철폐나 급격한 완화는 곤란해 보인다. 규제를 서서히 풀면서 공시의무를 강화하는 형식이 바람직할 수 있다. 금융회사의 비금융산업 진출에 대한 벽을 허물되, 비금융회사의 금융회사 보유 지분 한도 및 의결권 행사 가능 지분 비율을 차츰 완화하는 방향이 고려될 수 있다. 금산분리의 완전한 철폐나 무리한 완화는 기업집단의 문어발식 금융계열사 확장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규제 완화의 과정도 쉽지 않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공정거래법, 은행법, 보험업법 등 다양한 법들이 적용되고 있어 관련 법을 일일이 개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국회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야당은 금산분리를 되레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금융위원장으로서도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마련해 여당과 협의하고 야당을 설득해야 해 조기 시행이 어려울 수 있다.

원칙이 없고 예외가 많아 역차별과 형평성 논란으로 얼룩진 금산분리. 만시지탄이나 그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때가 됐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 시너지 창출로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의 든든한 토대를 쌓아야 한다. 새 정부의 초대 금융사령탑으로 마운드에 오를 지명자가 직구, 커브, 슬라이더 등 어떤 구질로 금산분리 완화의 스트라이크를 잡을지 궁금하다. 어려운 시기에 등판한 만큼 무실점 쾌투로 부디 승리투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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