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경제와 금융에 바란다'

[편집자주] 대한금융신문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변화와 성장 가능성을 금융권 전문가 및 퇴직금융인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윤 정부가 보완해야 하는 경제, 금융에 관한 이야기와 변화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나병문 칼럼]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됐다. 전 정부의 에너지 주무 부처인 산자부에서 “탈원전을 하게 되면 전기 요금의 대폭(40%가량) 인상이 불가피하다”라고 두 차례나 최상층에 보고했는데 묵살당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정책 담당자들이 공공연히 “2022년까지 전기 요금 인상 요인이 없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기사 내용처럼 전 정부가 그 같은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고의로 은폐했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잘못된 정책이 낳은 폐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담당자들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사실을 감사원이 밝혀냈다는 얘기는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또한 탈원전을 밀어붙이기 위한 꼼수였음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당시 에너지 관련 부서 책임자들은 원전 정책을 수립할 때 도대체 어떤 기준을 적용했을까. 생각할수록 의아해진다. 이쯤 되면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전임 대통령이 <판도라>라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탈원전을 지시했다는 세간의 소문들을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원전 정책을 담당하던 관료들의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당시 한수원 사장이 국정감사장에서 “탈원전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20개국에 달한다”라고 위증한 것도 그렇거니와, 관련 보고서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별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무리하게 탈원전 정책을 강행하면서, 그전까지 흑자를 구가하던 한전은 2017년 4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 폭이 커져서 2022년 1분기에만 7조8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급기야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6조원대의 자구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뒤늦게 임원들의 성과급을 반납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지만, 그런다고 전기 요금 인상 요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더 웃긴 건, 엄청난 적자의 늪에 빠져있으면서도 요금 인상을 계속 미뤄왔다는 사실이다. 적자의 원인은 자신들이 만들었지만, 그 책임은 후임 정권에게 떠넘기겠다는 심보라고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국가 중대사인 에너지 정책을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이유로 뒤틀어버림으로써 국민 부담을 가중시켰다면 직무 유기를 넘어선 범죄행위다. 이제라도 당시의 정책 결정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 각광 받는 원전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친환경 재생에너지 위주의 에너지 정책에 변화 조짐이 보인다. EU는 2021년 12월 마련한 그린 택소노미 초안에서 친환경 에너지 범위에 천연가스와 원전을 포함시킨 데 이어 2022년 2월 천연가스와 원전에 대한 투자를 '그린 택소노미'로 분류하는 규정안을 확정했다. 또한, 친환경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탈원전의 선도국가로 알려진 나라조차도 최근 들어 정책 기조를 바꾸고 있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기존의 정책을 마냥 밀고 나갈 수 없게 됐다. 그들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량을 대폭 감축하자, 온실가스의 주범이라며 폐기하려던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서둘러 탈원전 정책을 펼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에 미국 웨스팅하우스 사장단이 방한하여 한수원을 비롯한 전력 공기업의 책임자들과 회담하고, 양국의 원전 수출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또한, 우리나라가 바카라 원전을 건설해 준 아랍에미리트(UAE)의 알 자베르 산업첨단기술부 장관 겸 아부다비석유공사(ADNOC) 사장이 방한해, 이창양 장관과 양국 간의 산업기술협력 및 에너지 공급망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런 일들만 보더라도 원전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원전 산업 과감하게 지원해야

다행스럽게도, 새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미 에너지기본법 제정 작업에 착수한 데 이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신규 원전 건설 등 후속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윤 대통령이 文 정부 탈원전 정책을 ‘바보 같은 짓’으로 규정하고, 스스로 원전 세일즈를 위해 백방으로 뛰겠다고 밝힌 만큼, 암울했던 원전업계에 오랜만에 단비가 내릴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내친김에, 차세대 원전인 SMR(소형모듈원자로) 등을 경쟁국보다 앞서 개발하는 한편,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 사장된 기술을 되살리고, 현장을 떠나 흩어진 기술자들을 모으고, 원전 관련 학과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나아가 협력업체를 과감히 지원하는 등 원전 산업 전반에 대한 과감하고 신속한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향후 엄청나게 확대될 세계 원전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원전이야말로 반도체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을 몇 안 되는 전략 산업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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