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없던 시절, 연등은 조선시대 최고 볼거리로 자리
제철 ‘미나리강회·콩볶음’, ‘느티떡’ 먹으며 즐긴 명절

요즘 초파일은 불교 행사로 받아들이지만, 조선시대 초파일은 전국에 들썩일만큼 큰 사회적 행사이자 축제였다. 인공의 불빛이 없었던 시절이니 각종 모양의 연등 그 자체가 화려한 볼거리였다. 사진은 초파일은 앞둔 서울 조계사의 연등이다.
요즘 초파일은 불교 행사로 받아들이지만, 조선시대 초파일은 전국에 들썩일만큼 큰 사회적 행사이자 축제였다. 인공의 불빛이 없었던 시절이니 각종 모양의 연등 그 자체가 화려한 볼거리였다. 사진은 초파일은 앞둔 서울 조계사의 연등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음식은 계절과 맞물려 간다. 

술도 음식이어서 계절을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재료부터 빚는 방식까지 계절의 특징은 술에 그대로 반영된다. 술에 들어가는 다양한 곡물과 부재료가 계절에 따라 다른 옷을 입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봄은 가을만큼 풍요롭다. 논농사만 문제 없었다면 술은 상상력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 지금에야 관개시설이 좋아져서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지만, 20여년 전까지 우리는 춘곤기라는 단어를 불편하게 느끼며 살아야 했다.
 
봄은 지나가고 이제 여름이다. 장마까지 왔으니 제대로 여름이 왔다고 말해야 한다. 겨울에 빚었던 술들이 끝나고 봄에 빚은 술을 마셔야 하는 계절이다. 

한번 고두밥을 지어 빚는 단양주야 보름쯤이면 되지만 덧술을 하는 술은 두어 달의 시간이 필요해 이제야 마실 수 있는 술이 된다.
 
그래서 예전의 조상들은 절기에 맞춰 술을 빚어 마셨다. 

초록색 신록이 봄을 채울 때도 그런 절기가 하나 있다. 5월에 지난 초파일을 말한다. 지금이야 불교의 행사 정도로 알고 있지만, 유교를 국시로 내걸었던 조선에서마저도 초파일은 전국이 들썩일 정도로 큰 볼거리와 먹거리를 즐겼던 세시였다. 그러니 불교국가였던 고려 때는 어떠했겠는가.
 
양력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오늘의 달력에 초파일은 5월에 들어있지만, 음력의 세계관에선 4월에 담겨 있다. 따라서 ‘사월 초파일’이라고 해야 정확한 명칭이 된다. 

언론 등을 통해 ‘부처님 오신 날’ 정도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날 민간에서도 축제처럼 절기음식을 만들어 먹고 손님을 맞이하며 축하했다는 것은 다소 생소할 내용일 듯하다.
 
초파일 치르는 다양한 행사 중에서 가장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관등’이다. 

연등이라고도 불리는 관등은 사찰을 중심으로 걸리는 것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일반 여염집에서도 등대를 높이 세워 가족의 숫자만큼 걸거나 형편이 어려운 집에선 빨랫줄처럼 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등을 걸었다. 

등은 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 석탄일에 불을 밝히는 까닭도 마음의 불을 밝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행위이다. 그런 이유에서 부처에게 등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세인의 관심이 관등에 모인 까닭은 ‘등’에 들어있는 ‘불’ 덕분이다.

이렇게 불을 걸고 불을 바라보는 날이니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불을 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게 된다. 심지어 통행금지도 이날만큼은 풀린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펴낸 책 《구당집》에는 “초파일 관등 때 부잣집에서는 채붕(나무로 엮은 가설무대)을 설치하고 잡희를 펼쳤으며, 노래와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거리를 메우고 술이 넘쳐났으며, 색주가도 대목을 맞아 사람들로 들끓었다”라는 기록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런 세시풍속이 잘 그려진 드라마가 지난해 연말 방영됐다. KBS2에서 방영된 〈꽃 피면 달 생각하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 드라마의 4회차의 무대는 초파일이다. 국법으로 금주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주인공 밀주꾼 강로서(이혜리 분)는 초파일 대목 장사를 하기 위해 술을 빚었고, 술을 이동 수레에 몰래 담아 짭짤한 수익을 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초파일 날 관등을 하며 마셨던 술이나 안주 또는 음식은 무엇이 있을까. 

각종 《세시기》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초파일 절기음식은 ‘미나리강회’와 ‘콩 볶음’ 그리고 ‘느티떡’ 등이다. 

그런데 술을 특정해서 기록한 자료는 없는 듯하다. 다만 그 시기에 주로 마셨을 술은 분명 존재한다. 삼월삼짇날 진달래꽃을 따다 덧술을 한 두견주가 충분히 익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초파일 술상에 오른 술은 삼해주일듯하다. 음력 정월부터 빚기 시작한 삼해주는 이맘때쯤이면 잘 익은 데다 숙성까지 돼 있었을 듯싶다. 

매월 해(돼지) 일에 세 번 빚는 술이니 음력 4월, 즉 버들가지(柳絮)가 나기 시작하는 시절이면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삼해주의 또 다른 별칭은 ‘유서주’다. 지금이야 초파일에 이런 술을 찾아 마시지는 않지만, 그 시절에는 제철의 음식과 술을 같이 했을 것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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