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수로 난 잎은 밤이면 부부처럼 한 몸으로 모여
나무껍질과 꽃은 우울증 완화 및 진정 효과 가져

자귀나무의 꽃은 수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분홍빛 홍조를 띤 꽃은 공작새의 화려한 꽁지를 닮았다. 이파리는 밤이면 접혀서 합환수라 부리기도 한다.
자귀나무의 꽃은 수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분홍빛 홍조를 띤 꽃은 공작새의 화려한 꽁지를 닮았다. 이파리는 밤이면 접혀서 합환수라 부리기도 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은 하얀 꽃이 대세인데 이맘때가 되면 분홍빛이 선명하게 공작새처럼 꽁지를 활짝 펼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꽃이 하나 있다. 

자귀나무다. 이름은 익숙하지 않지만, 산이며 정원이며 인위적으로 조경을 한 곳이라면 더 자주 볼 수 있는 나무다. 

그런데 꽃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꽃잎은 찾을 수 없고 꽃술만 보이니 말이다. 수컷 공작새의 날개처럼 펼쳐진 부분이 수술에 해당한다. 그래서 명주실처럼 고운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피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름도 그렇다. 나무들의 이름은 나무의 특징을 담기 마련이다. 노린재나무와 검은재나무는 나뭇가지가 타고 나면 노란색 재와 검은색 재가 남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지를 물에 꽂으면 푸른색이 돼서 물푸레나무, 나뭇가지에 화살의 깃털이 있다고 해서 화살나무, 가지가 댕강댕강 잘 부러져 댕강나무 등의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자귀나무는 이름에서 쉽게 이름의 기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설은 대체로 두 가지로 모인다. 하나는 낮에는 펼쳐져 가지런하게 대칭으로 나 있는 이파리가 밤이 되면 합체가 되듯이 모아진 모습이 귀신같다고 해서 자귀나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고고학적인 해석인데, 도끼의 옛말이 자귀라는 설이다. 도낏자루로 쓰이는 나무여서 자귀나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에 대한 해석만 분분한 것이 아니다. 나무의 이름도 다양하다. 나무가 가진 특성 덕분이다.

자귀나무는 콩과 식물이다. 초여름 꽃이 핀 뒤 가을쯤 익게 되는 열매는 마치 콩깍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자귀나무는 콩과 식물이다. 초여름 꽃이 핀 뒤 가을쯤 익게 되는 열매는 마치 콩깍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자귀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잎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앞에서 팔았던 미모사 잎을 떠올리면 된다. 미모사는 잎에 무언가가 와 닿으면 바로 대칭으로 난 잎이 접힌다. 

자귀나무도 잎이 접힌다. 잎의 숫자가 짝수여서 양쪽이 하나도 빠짐없이 붙게 된다. 하지만 미모사처럼 외부의 접촉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온에 반응한다. 

자귀나무의 잎은 밤이 오면 원래 하나였다는 듯이 합체가 된다. 이러한 현상을 식물의 수면 활동이라고 말한다. 낮에는 광합성을 위해 최대한 잎의 표면적을 늘렸다가 밤이면 수분과 에너지 발산을 최대한 막으려고 붙이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합혼수(合昏樹), 합환수(合歡樹),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등으로 불린다. 마치 혼인한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근심을 잊게 해 준다고 해서 망우(忘憂)라고도 부른다. 

이처럼 잎의 변화를 두고 사람들은 여러 이름을 붙였는데, 잎의 모양을 두고도 이름 하나가 만들어져 있다. 

푸른 잎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푸른 치마를 닮았다고 해서 청상(靑裳)이라고 부르는 것. 게다가 이파리를 조심스레 만지면 보드랍기까지 하다. 비단결처럼 말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자귀나무의 영어 표기는 ‘비단나무(silk tree)’다. 

자귀나무의 모습이 다정한 부부와 같아서인지는 몰라도 자귀나무의 탄생 설화도 끈끈하기 그지없다. 

중국의 성군 중 한 사람인 순임금의 이야기다. 그가 창오라는 곳에서 죽자 아황과 여영 두 아내도 호남성의 상강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두 사람의 영혼이 자귀나무가 됐다는 것. 잎의 특성을 스토리텔링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은 문학작품에도 빠짐없이 반영됐다.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자귀나무가 집안에 정원수로 대우를 받은 까닭도 모두 나무의 특징과 스토리에서 출발한다. 게다가 꽃술과 나무껍질이 지닌 능력도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일이다. 두양이라는 선비의 부인 조 씨는 해마다 단오 때 이 나무의 꽃잎을 따서 말려 베갯속으로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이 꽃을 조금씩 꺼내어 술에 넣어 남편에게 권했다고 한다. 

그 술을 마시면 남편은 신기하게도 기분이 풀어졌다고 하는데, 기분 탓이 아니라 이 나무가 지닌 약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무껍을 합환피(合歡皮)라고 부르는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근심을 없애서 만사를 즐겁게 한다”고 한다.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다.

꽃은 아름다워서 게다가 우울증을 완화하고 근심을 덜어주기까지 한다. 그러니 지금도 정원수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나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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