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 15년째 산머루로 양조
신한은행·아이돌 그룹 대량 주문할 정도로 인정받아

경북 김천의 ‘찾아가는 양조장’ 수도산와이너리의 백승현 대표가 자신의 양조장 숙성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20여 년간 산머루에 투자해서 지금은 와인 전문가들로부터 품질을 인정받는 레드와인을 생산해내고 있다.
경북 김천의 ‘찾아가는 양조장’ 수도산와이너리의 백승현 대표가 자신의 양조장 숙성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20여 년간 산머루에 투자해서 지금은 와인 전문가들로부터 품질을 인정받는 레드와인을 생산해내고 있다.

와인을 빚는 농가형 와이너리들의 고민은 타닌감을 가진 묵직한 레드와인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식용 포도인 캠벨이나 MBA로는 입에 가득 담겨오는 질감의 와인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와이너리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자신만의 해법을 찾으려 했다. 

흔히 말하는 ‘바디감’이라는 느낌의 맛을 국산 포도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식용 포도는 그 자체로 양조에 한계를 드러냈다. 부족한 탄닌을 채울 수 없었고 산미마저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단맛의 단조로운 와인으로 만족해야했다. 

국산 와인의 이런 맛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준 것은 ‘산머루’였다. 기존 포도보다 수확량이 적었으나 신맛과 바디감, 그리고 타닌감까지 묵은 숙제를 풀어준 고마운 존재였다. 

지난 2020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경북 김천의 수도산와이너리도 산머루에 천착에 각종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품질 좋은 레드와인을 빚고 있는 곳이다.

백승현(52) 대표가 고향 김천을 다시 찾은 것은 지난 1999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도시에서의 일(보안업체 경호원)을 정리하고 고향 땅으로 내려와 과수 농사를 시작한다. 이미 귀향을 결정하기 전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양조인의 꿈이 담겨 있었다.

고향 땅에서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산머루와 참다래 등을 술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산머루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와인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받지 못한 상태였다.
  
귀촌하고 바로 산머루를 심고 이듬해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와인을 빚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 6~7년의 수업료는 값비쌌다. 와인동호회에 가입해 양조이론을 찾아 배워가며 독학으로 양조를 익혔지만, 와인은 1년에 한 번밖에 양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냉정한 재료였다. 

재료의 특성은 양조의 이력이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초창기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결국 백 대표는 2007년 산머루만을 가지고 포도주를 빚기로 결정한다. 캠벨과 MBA 품종과의 블렌딩, 그리고 포도 수확시기 조정 등 다양한 실험을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산머루의 수확시기를 늦가을 서리가 내린 뒤로 미룬 것.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원하는 당도의 산머루를 수확했으니 말이다. 24브릭스의 당도는 설탕을 추가하지 않고도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다. 

게다가 안정적인 발효가 가능해지면 소르빈산 등 화학약품을 넣지 않고도 발효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백 대표의 와인이 유기농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도 이런 산머루를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9년 자신의 와인을 두고 ‘주스와인’ 같다는 평가를 듣게 된다.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탓이다. 

바로 백 대표는 미국에서 새 오크통을 들여와 레드와인의 숙성에 들어간다. 양조량도 늘리기 위해 주변에서 산머루를 수매해서 자신이 농사지은 것과 함께 양조를 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산머루를 와인으로 만들고 있는 수도산와이너리의 제품들이다. 현재 이 곳에서는 산머루를 이용한 레드와인(드라이, 스위트, 세미 스위트)과 청수 품종의 화이트 와인, 자두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산머루 돌연변이 품종으로 빚은 로제 와인 등 6종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우선 수매한 산머루는 자신의 것과 달리 유기농이 아니었다. 발효통에서는 화학약품의 냄새가 났던 것이다. 

그리고 오크 사용법을 몰라 첫 번째 오크 숙성을 시킨 2009년 와인은 모두 버려야 했다고 한다. 

백 대표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에어링을 몰랐던 거예요. 오크통에서도 공기와 접촉을 시켜줘야 했는데 그걸 하지 않아 결국 모두 폐기했다”며 “또 한 번의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이듬해부터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와인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값비싼 수업료를 내서일까. 결국 그의 와인은 지난해 한 언론사가 주최한 품평회에서 주류대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인지도까지 형성돼 대규모 구매주문이 연이어 들어오는 상황이다. 

신한은행의 창립 40주년을 맞아 VIP 선물용으로 구매를 타진해왔고,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에서도 대규모 주문을 희망해왔다. 

하지만 유기농에 ‘크래프트’ 원칙을 지키면서 만들고 있는 와인이라서 생산량이 많지 않아 현재의 수요를 순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백 대표에게 남겨진 큰 숙제다.
 
한편 수도산와이너리에선 산머루 100%로 빚은 레드와인 3종(드라이, 세미 드라이, 스위트) 외에도 청수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김천의 특산품인 자두로 스파클링 자두와인을, 그리고 산머루 농사 과정에서 발생한 돌연변이 품종으로 빚은 로제와인 등 총 6종의 술을 빚고 있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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