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하는 곤충 적지만 피는 꽃 적어 수월하게 수분
인간의 욕망, 낮에도 볼 수 있는 ‘낮달맞이꽃’ 육종

노란색 달맞이꽃은 요즘이 제철이다. 논두렁이든 어디든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토종이 아니라 해방즈음에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노란색 달맞이꽃은 요즘이 제철이다. 논두렁이든 어디든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토종이 아니라 해방즈음에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색깔과 향기를 내는 꽃을 무척 좋아한다. 관상용으로 재배돼 도시의 공원과 고궁 혹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꽃들을 일상이라 생각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은 마치 꽃이 자신을 위해 피어나고 가꿔지는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꽃은 철저히 식물 자신을 위해 피고 진다. 초본 식물이든 목본 식물이든 모두 다음 세대로 식물의 유전자를 이어가기 위해 프로그래밍이 된 진화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그 핵심이 식물의 생식기인 꽃이다. 따라서 꽃은 식물의 생존전략에 따라 피우는 시기와 기간을 정한다. 생존확률이 가장 높은 방법으로 말이다.

그래서 꽃은 거의 낮에 핀다. 곤충과 조류 등 꽃가루받이(수분)를 도와줄 동물들이 낮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른 봄부터 활동하는 등에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봄꽃들은 등에가 좋아하는 노란색을 띠고 피어난다. 복수초나 개나리, 산수유, 생강나무 등이 그렇다.

이어서 활동하는 벌 등의 곤충은 빨간색이 아닌 다른 색의 꽃과 나무를 찾아다닌다. 이들 곤충은 붉은색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붉은색으로 피는 동백 등은 어떻게 수분 활동을 할까. 이들 꽃은 조류나 포유류의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식물의 꽃은 수분을 위해 꽃의 색깔은 물론 개화 시기 등을 결정한다. 그런데 개화 여부를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결정하는 꽃이 하나 있다.

다들 잘 알고 있는 ‘달맞이꽃’이다. 2년생 초본 식물인 달맞이꽃은 낮 동안은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가 해가 지면 펼친다. 이유는 앞서 설명한 꽃가루받이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낮에는 수분을 돕는 곤충들을 유혹하는 식물 간의 경쟁이 치열해 차라리 경쟁이 적은 밤에 집중한 것이다. 물론 밤에 활동하는 곤충의 개체 수도 적지만, 밤에 피는 꽃은 더욱 적기 때문에 경쟁이 수월한 것이다.

5월쯤이면 논두렁과 밭두렁에 흐드러지기 시작해 본격 장마와 함께 노란색 꽃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달맞이꽃. 요즘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특히 하얀색 개망초꽃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이 꽃이 원래부터 이 땅에서 자라던 꽃이 아닌 귀화식물인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로 시작하는 가수 장사익의 노래를 통해 널리 알려져서일까.

아니면 문인들의 시와 소설 속에서 너무도 자주 등장해서일까, 우리는 이 꽃을 토착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달맞이꽃은 남아메리카 칠레가 원산지인 꽃으로 일제강점기가 끝나가는 해방 연간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해방초’다. 달맞이꽃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갑자기 정치적인 이름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초라는 이름보다 달맞이꽃에 더 익숙하다. 꽃이 가진 감수성 때문일 것이다.

낮에도 달맞이꽃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낮달맞이꽃이다. 분홍색과 노란색 꽃이 있다. 도심의 화단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낮에도 달맞이꽃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낮달맞이꽃이다. 분홍색과 노란색 꽃이 있다. 도심의 화단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원산지인 아메리카대륙에서 이 꽃은 약초에 해당한다. 뿌리와 씨앗 등에서 피부염 및 종기 치료제 혹은 인후염과 기관지염 등을 다스리는 약제로 쓰였다. 지금도 이 초본 식물의 각 부위에서 필요한 성분을 추출해서 약으로 만들 만큼 귀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 눈에는 여름밤 지천으로 보이고 있지만 말이다.

두해살이풀인 달맞이꽃은 첫해에는 줄기 없이 잎이 방석처럼 무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겨울을 지내고 난 이듬해 줄기를 만들며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여름에 꽃이 피고 10월에는 꽃씨가 맺힌다.

이 꽃의 영어명은 이브닝 프림로즈다. 저녁에 피는 앵초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뉘앙스의 이름으로 불린다. ‘석양의 벚꽃’이다. 한자로는 ‘월견초(月見草), ’야래향(夜來香)‘ 등으로 적고 있다. 각국이 모두 이 꽃에 대해 갖는 감성이 비슷한 듯하다.

꽃은 식물을 위해 핀다고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식물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달맞이꽃을 낮에도 보고 싶어 관상용으로 개량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도심 곳곳에서 화분에 심어진 ‘낮달맞이꽃’을 만날 수 있다. 색깔도 노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홍색도 있다. 원예종으로 육종되면서 더 많은 눈요깃거리를 꽃이 주는 시대를 사는 것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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