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리서 연구하는 이상훈 우리술학교 교장과의 만남
전통주, 문맥 모르고 텍스트 보면 오류만 낳는다 지적

고창 우리술학교의 이상훈 교장은 고조리서 연구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매 등을 통해 관련 책이 나올때마다 책을 사모으며 후학들과 함께 연구하고 지식을 같이 나누는 전통주 분야의 고수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우리 소주의 향미 분석을 위해 직접 증류해서 숙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고창 우리술학교의 이상훈 교장은 고조리서 연구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매 등을 통해 관련 책이 나올때마다 책을 사모으며 후학들과 함께 연구하고 지식을 같이 나누는 전통주 분야의 고수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우리 소주의 향미 분석을 위해 직접 증류해서 숙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전통’을 박물관의 문화전시물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문화재로 취급받는 순간 전통은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전통은 어느 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고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전통’음식도 마찬가지다. 레시피가 성문화되면 사람들은 신앙처럼 그것을 떠받들고 싶어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의 상상력은 레시피에 갇히고 만다.

그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봉쇄당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성문화된 레시피를 최선의 것이라고 여기며 존중한다. 레시피에 이미 신화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전북에 있는 고창 우리술학교의 이상훈 교장을 만났다. 이 교장은 고조리서 연구는 물론 동아시아의 누룩발전사 등 다양한 주제에 천착하고 있는 대표적인 우리 술 연구자다.

오늘의 시각에서 전통주를 해석하고 바라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온 사람인 만큼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 교장의 전통에 관한 생각은 교육과정에서 자주 말하는 “진화의 벽을 넘지 못하는 전통은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에 잘 녹아 있다.

전통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교장은 자신이 최근 쓴 논문을 예로 들었다. 논문의 주제는 누룩이다. 조선시대의 누룩과 지금의 누룩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만드는 방식이 달라 당화력과 발효력이 다르다고 한다.

조선 중기까지 이 땅에서 만들어졌던 누룩은 중국과 같은 대국이었다고 한다. 누룩 하나의 부피가 3~6ℓ라니 지금의 누룩보다 2.5~5배쯤 크다. 이런 누룩이 조선 숙종 연간을 거치면서 작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유는 상업의 발달로 술 소비량이 급증해 발효력이 좋은 누룩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조 연간을 지나면서 혹독한 금주령까지 경험한 백성들은 누룩을 더 이상 처마 밑에 내걸고 띄울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온돌방의 시렁으로 들어간 누룩은 크기가 작아졌고, 물 함유량도 크게 적어지게 됐다.

그런데 소개한 두 개의 누룩을 같은 주방문의 술에 적용하면 완전히 다른 술맛을 보이게 된다. 누룩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국은 당화력은 높지만, 발효력이 적어 알코올 도수는 낮으면서 단맛의 술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반면 조선 중후기부터 작아지기 시작한 누룩은 발효력이 강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 나오게 된다.

누룩의 차이를 설명한 이 교장은 그래서 주방문을 단순한 텍스트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전통에 담긴 지식을 발견하지 못하면 레시피에 갇혀 재료가 지닌 특성을 보지 못하고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고조리서에 담긴 각종 술과 음식을 텍스트 그대로 이해하기보다 그 문장 속에 담긴 문맥과 정보를 읽어내 당대의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전통이 진화의 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포도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포도주가 들어왔을 때는 중국 문헌에 포도만으로 와인 빚는 방법이 소개되지만, 길이 막혀 포도주가 들어오지 못하면 어김없이 포도와 쌀, 그리고 누룩으로 빚는 술로 기록된다.

이런 기록이 국내에 들어와 일부 조리서에 포도주는 쌀과 누룩으로 빚는 술로 정리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적 흐름을 간과하고 텍스트를 살핀다면, 전통주로서의 포도주는 포도와 쌀과 누룩으로 빚는 술이라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확인된 역사에서 이렇게 만든 술은 포도주의 일부일 뿐이다.

이상훈 교장은 그래서 전통을 바라볼 때 조상들이 그 전통에 어떤 정보를 담아뒀는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그래야만 많은 상상력을 펼치면서 텍스트를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레시피로 접근하기 보단 전통에 담긴 지식을 찾는 식으로 접근하고 양조가 아니라 양조학으로 접근할 때 전통이 오늘과 호흡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가수 박재범 씨가 만든 ‘원소주’가 전통주 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전통주를 어떻게 정의하고 구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법률은 제·개정 당시의 시선으로 정리된 제도다. 2022년의 시선에서 원소주는 지역특산주가 돼서 통신판매를 할 수 있지만, 법을 만들 당시에는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젠 오늘의 시선에서 법과 제도, 그리고 우리의 생각까지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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