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 푸른 덩굴식물, 서남부 해안과 섬에 많아
천연기념물 367호 선운사 송악이 국내 가장 커

전북 고창 선운사에는 3가지 천연기념물이 있다. 동백나무숲과 도솔암 장사송, 그리고 선운사 입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돼 있는 송악이다. 송악은 서남해안과 섬지역에서 주로 자라며 내륙에서는 고창이 북한계선이다.
전북 고창 선운사에는 3가지 천연기념물이 있다. 동백나무숲과 도솔암 장사송, 그리고 선운사 입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돼 있는 송악이다. 송악은 서남해안과 섬지역에서 주로 자라며 내륙에서는 고창이 북한계선이다.

빛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식물은 높이를 최우선의 덕목으로 여기며 성장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게 최고의 권력은 빛이자 높이였다. 숲에서 키 싸움을 벌이는 나무들은 물론이고 관목이나 초본류 식물들도 모두 햇빛이 움직임의 근거였다.

그런데 나무만큼 성장할 수 없는 관목과 초본류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숲의 주변부를 택하게 된다. 높이에서 장애물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다.

또 다른 방법은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다른 구조물을 찾아내 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즉 높은 나무를 선택해 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칡이나 등나무, 담쟁이덩굴 등이 그런 식물들이다. 또한 가장 에너지 효율적으로 높이를 장악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담쟁이덩굴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인위적으로 담과 벽 주변에 많이 식재했다. 조경을 위한 목적으로 심은 것이다. 흔히 아이비라고 불리는 식물이 그렇다.

우리나라에도 토종 아이비가 있다. 따뜻한 남쪽에서 주로 자란다. 추위에 약해 중부 이북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서남해안 지역과 섬에서 주로 자라는 ‘송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송악이라는 이름이 낯설다. 개성의 옛 이름 송악과 같아서 나무 이름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와 관련 《우리나무 이름사전》의 박상진 교수는 “제주 방언으로 본래 ‘소왁낭’이라고 했는데, 그 이름이 ‘소왁나무’를 거쳐 송악이 됐다”고 적고 있다.

어찌 됐든 송악은 서양의 아이비와 달리 사철 푸른 두릅나무과다. 잎이 담쟁이보다는 작고 마삭줄보다는 훨씬 큰 타원형이며 나무의 형태도 뚜렷하다.

아이비는 조경을 목적으로 건물의 외벽이나 담장에 많이 심고 있지만, 송악은 그렇지 않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다만 남도를 여행하다 보면 느티나무나 팽나무처럼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진한 녹색의 식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송악이다.

칡이나 등나무의 덩굴은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 수관을 덮어 버리고 줄기를 조여서 나무를 죽게 만들지만, 송악은 나무와 공생을 선택했다.

선운사 삼인리 송악은 규모면에서도 제일 크다고 알려져 있다. 높이는 15m며 줄기의 둘레는 0.8m다. 수명은 정확히 측정이 안 되나 수백 년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은 2015년에 문화재청에서 찍은 송악의 줄기 부분이다.
선운사 삼인리 송악은 규모면에서도 제일 크다고 알려져 있다. 높이는 15m며 줄기의 둘레는 0.8m다. 수명은 정확히 측정이 안 되나 수백 년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은 2015년에 문화재청에서 찍은 송악의 줄기 부분이다.

이런 송악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 인근이다. 선운사 주차장 옆의 선운천 건너편으로 천연기념물 367호로 지정된 송악 한 그루가 양지바른 절벽에 붙어 자라고 있다.

이 송악은 나무의 크기와 길이, 그리고 줄기의 굵기와 역사 등에서 우리나라 최고로 알려져 있다. 삼인리 송악의 표지판을 보면 높이는 15m며 줄기의 둘레는 0.8m, 그리고 수령은 수백 년으로 표기돼 있다. 정확한 나이를 측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나무는 송악의 내륙쪽 북방한계선에 있는 나무다. 그런데도 규모가 가장 커서 현재 송악 중에서 유일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송악은 다른 식물들과 달리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계절이 정반대다. 꽃은 10~11월에 황록색으로 핀다. 10월이면 중부 지방의 경우 서리가 내린다. 따라서 늦가을에 곤충을 불러 모아야 하는 송악은 중부지역에선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열매는 다른 식물들이 한창 꽃 피우는 5월에 맺는다. 까만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이 봄철이라는 뜻은 진화론적으로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꽃피우는 시기도 그렇지만, 사실 나무의 작은 열매는 새들의 먹이다. 다른 나무들은 가을에서 초겨울에 먹이를 주는데, 송악은 정반대의 시간표로 움직인다. 즉 다른 경쟁식물들과 특별히 경합을 벌이지 않아도 수분 활동을 돕는 곤충을 불러 모을 수 있고, 또 씨앗을 넓게 퍼뜨려주는 새들도 봄철에 한가로이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송악의 영어 이름은 ‘에버그린 아이비’다. 나무의 특성을 살린 이름이다. 중국에서의 이름도 같다. ‘상춘등(常春藤)’이다. 상록을 강조한 이름이다. 북한에서의 이름은 또 다르다. 큰잎담장나무다. 각자 보고 싶은 부분에 맞춰서 지어진 이름들이다.

선운사는 볼거리가 많은 사찰이다. 천연기념물만도 3개가 있다. 앞서 소개한 송악과 도솔암의 장사송, 그리고 동백숲이다. 가을 단풍도 좋지만, 여름에 피는 꽃무릇도 사람의 발길을 이끄는 곳이다. 절기에 맞춰 선운사를 보고 먼발치에서 송악을 보는 재미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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