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훼손돼 수령 오래된 나무 거의 없어
수령 120년 강릉 무궁화, 유일한 천연기념물 지정

무궁화의 평균 수명은 40~50년이다. 그래서 노거수가 없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무궁화는 수난을 겪었다. 우리가 보는 무궁화가 모두 작은 나무인 까닭이다. 사진은 무궁화로는 국내 유일의 천연기념물인 강릉 방동리 무궁화 나무다.(사진: 문화재청)
무궁화의 평균 수명은 40~50년이다. 그래서 노거수가 없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무궁화는 수난을 겪었다. 우리가 보는 무궁화가 모두 작은 나무인 까닭이다. 사진은 무궁화로는 국내 유일의 천연기념물인 강릉 방동리 무궁화 나무다.(사진: 문화재청)

아침이면 피고 저녁이면 지는 꽃. 이 모습을 보고 조개모락화(朝開暮洛花)라고도 부르지만, 실은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시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눈에 꽃이 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계속 새로운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초여름부터 꽃을 피우면 가을까지 계속된다. 이런 모습을 보고 문일평 씨는 ‘자강불식’한 군자의 이상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동양의 문헌에 무궁화는 자주 등장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산해경》에는 “군자의 나라, 의관을 바르게 하고 칼을 차며, 그곳에는 무궁화가 있어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라고 적고 있으며 《지봉유설》에서 인용하고 있는 중국의 문헌인 《고금기(古今記)》에는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 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핀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군자의 나라는 우리나라를 말한다. 중국 측 문헌에 우리를 ‘근역’이나 ‘근화향’ 등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무궁화는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지만, 이 땅에 많이 자라고 있는 나무이고 꽃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궁화라는 한자명이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 처음이다.

꽃의 이름을 두고 한 사람은 꽃이 끝없이 피고 지는 모습이어서 ‘무궁(無窮)’이라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옛날 어느 임금이 이 꽃을 사랑하여 온 궁중이 무색해졌다는 뜻에서 ‘무궁(無宮)’이라고 주장했는데, 각자 자기 의견만 고집해서 결론을 이르지 못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는 글의 요지다.

이렇게 이 땅에서 묵묵히 자라던 무궁화가 우리에게 나라꽃으로 거론됐던 시기는 일제강점기다.

1925년 10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조선의 국화’ 무궁화의 내력〉이라는 기사에 “윤치호 씨 등의 발의로 ‘우리 대한에도 국가가 있어야 된다’며 한편으로 양악대도 세우고 한편으로 국가도 창작할 때(?) 태어난…애국가의 후렴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끼일 때 비로소 근화, 즉 무궁화(無窮花)라고 쓰기 시작한 듯”하다고 적고 있다.

무궁화를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기사가 일제강점기에도 이뤄졌다. 사진은 1925년 10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로, 무궁화가 국화가 된 사연과 국가의 필요성 등이 담겨있다.(사진: 네이버뉴스라이브 캡처)

이처럼 일제강점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국화와 국가라는 단어가 신문 기사로 실린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문화통치 시기여서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무궁화가 정식으로 국화가 된 시기는 1948년 정부가 수립된 뒤다.

그런데 읽기 좋은 기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35년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김례동과 김은교가 송림야학에서 무궁화 노래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경산경찰서에 피검됐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무궁화의 탄압 및 훼손 사례 중 일부이다. 이와 함께 무궁화동산이라는 단어와 함께 무궁화 씨나 묘목을 나누려는 기사도 자주 보인다. 일제가 우리의 정신이 깃들었다고 해서 보이는 대로 무궁화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무궁화는 큰 나무가 별로 없다. 일제강점기 때 눈에 보이는 족족 파헤쳐졌기 때문이다. 물론 나무의 수명도 40~50년이라 노거수로 자란 나무도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는 원래 두 그루의 무궁화 천연기념물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는 백령도에 있는 무궁화였는데, 지난 2012년 태풍 볼라벤에 의해 뿌리가 훼손되고 2018년에도 태풍 솔릭으로 가지가 부러지는 등 고난을 겪다 고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강릉 방동리에 있는 무궁화가 유일한 천연기념물이다.

수령은 12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릉 박씨 종중 재실에 있는 이 나무는 국내 무궁화 중 가장 줄기가 굵고, 토종의 원형을 간직한 최고령 나무라고 한다.

조지훈 시인은 〈무궁화〉라는 산문을 통해 무궁화는 몹시 예쁘거나 향기 짙은 꽃이 아니지만 아담하고 은은한 향기를 지닌 순결한 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희디흰 바탕은 우리 민족의 깨끗한 마음씨를 닮았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면면히 붉게 물들어 마침내 그 한복판에서 자줏빛으로 불타는 무궁화는 이 나라 사람이 그리워하는 삶이라고 쓰고 있다. 무궁화 예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글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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