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대표 귀촌 후 농사지으며 국화막걸리 빚어
내년 증류주 3총사 쌀·메밀·국화소주 출시 예정

경기도 양평으로 귀촌해서 직접 메밀과 국화 농사를 지으며 막걸리를 빚고 있는 박수진 대표가 발효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으로 귀촌해서 직접 메밀과 국화 농사를 지으며 막걸리를 빚고 있는 박수진 대표가 발효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화는 추울수록 향기가 더하다고 한다.

서리가 내리는 늦은 가을, 다른 꽃들은 다 봄을 기다리며 자취를 감추지만, 국화만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사군자의 하나가 돼 조선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꽃이다.

그렇게 사랑받은 꽃이니 당연히 술에 자주 이용하는 부재료가 됐다. 이름하여 ‘국화주’다. 술에서 일어나는 그윽한 국화의 향기가 좋았기 때문에 종가에서의 국화 사랑은 더했다고 한다.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는 매화(납매)의 향기와 유사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고 한다. 경주 회재종택의 국화주, 안동 정재종택의 송화주, 공주 묵재종택의 계룡백일주 등이 국화가 들어간 대표적인 종가의 술들이다.

꼭 종택에서만 국화주를 즐긴 것은 아니다.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하다고 하는 중양절(음력 9월9일)이면 누구나 국화주를 마셨다고 하는데, 이유는 삿된 기운을 막아내기 위함이었다.

쉬나무 열매를 붉은 주머니에 담아서 팔뚝에 차고 국화주를 마시면 재앙을 면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수운잡방》 등 다양한 고조리서에서 국화 빚는 법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은 술의 부재료였는데도 불구하고 상업양조에서 국화를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작 계룡백일주 정도가 있었지만, 이 술에는 국화 이외에도 진달래꽃, 오미자 열매, 솔잎 등의 부재료가 같이 들어가니 국화의 향을 만끽할 수 있는 술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국화 향기를 제대로 담아낸 술이 출시됐다. 그것도 향기가 가장 좋다는 겨울 국화를 담았다.

술 이름은 ‘동국이’다. 경기도 양평에 문을 연 양평맑은술도가(대표 박수진)의 첫 작품이다. 지난해 양조장을 내고, 그해 10월 첫 제품을 출시하고 서서히 전통주점과 우리술 전문 판매점 등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술이다.

국화를 차로 내려서 막걸리에 국화 향을 넣은 양평맑은술도가의 막걸리 ‘동국이’ 알코올 도수는 8도와 13도 두 종류로 생산된다.
국화를 차로 내려서 막걸리에 국화 향을 넣은 양평맑은술도가의 막걸리 ‘동국이’ 알코올 도수는 8도와 13도 두 종류로 생산된다.

박수진 대표가 술에 천착한 까닭은 ‘한류’하고 관계가 있다. 민속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박 대표는 한류가 지속될 것으로 생각했단다. 그 관심은 ‘한국술’로 확장되리라 판단하고 직접 양조장을 차리기로 한다.

양조장을 머리에 담은 순간 떠오른 사람은 제주도에서 술을 만들고 있는 시트러스의 이용희 공장장이었다. 그를 만나 양조사업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공장장은 박 대표에게 자신이 진로에 있을 때 번역해둔 일본 양조론 책들을 내밀더니 공부부터 하라고 했단다. 책의 내용을 훑어보면서 아연했다고 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술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생각에 박 대표는 바로 막걸리학교와 가양주연구소 등의 술교육기관의 과정을 밟는다. 2019년과 2020년, 이태 동안의 일이다. 여기에 보태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양조학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양조에 진심인 삶을 선택한 것이다.

술을 만들 장소로 처음 생각한 곳은 제주도였다. 여행지에서 찾을 수 있는 술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산 주변에 지인이 있어 몇 번 찾았다가 양평으로 귀촌을 결정한다. 양평의 풍광도 좋았기 때문이다.

직접 내려와 메밀과 고구마, 국화까지 자신이 술을 담을 부재료들을 직접 키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초보 농부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한다. 고구마는 멧돼지 습격사건으로 혼쭐이 나 더는 농사를 짓지는 않고 있다.

박 대표가 만들고 있는 동국이는 두 번의 덧술을 하는 3양주다. 국화는 차를 내서 마지막 덧술을 할 때 넣는다. 현재 판매하고 있는 동국이는 알코올 도수 8도와 13도의 술이다. 향부터 다가오는 술맛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 밖에도 내년부터는 소주도 출시할 계획이다. 모두 세 번 술을 빚어 발효주를 만들어 증류를 할 계획이다. 순곡주로 빚은 전통소주와 향이 좋아 선택했다는 메밀소주, 그리고 동국이를 증류한 국화소주 등이다. 특히 국화소주는 2년을 숙성시켜 시그니처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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