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지난달부터 ‘메소포타미아 기획전’
美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유물 66점, 24년까지 전시

5000년 전 캐심이라는 맥주양조업자가 수령한 보릿가루와 맥아가 기록돼 있는 점토판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66점의 유물이 7월 2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5000년 전 캐심이라는 맥주양조업자가 수령한 보릿가루와 맥아가 기록돼 있는 점토판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66점의 유물이 7월 2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점토판에 적혀 있는 쐐기문자를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옆에 설명해 놓은 문장을 읽으며 오랫동안 서 있었다.

5000년이 넘은 것으로 보이는 점토판에는 쿠심이라는 양조업자가 맥주를 빚기 위해 수령한 보릿가루와 맥아의 수량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일종의 장부인 셈이다.

출토된 지역은 세계사 시간에 들어봄 직한 우룩.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이다.

그런데 이 박물관의 유물 66점이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메소포타미아’를 주제로 한 기획전이 지난달 22일 시작됐다.

점토판에는 곡식을 담았을 법한 항아리 모양의 토기 그릇이 그려져 있고 날카로운 막대로 찍은 듯한 쐐기문자가 적혀 있다. 이 쐐기문자를 해석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실체에 우리는 접근하게 됐다.

술의 양조는 물론 다양한 상거래의 흔적과 공문서까지 점토판은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5000년을 뛰어넘는 시공간의 연결을 이 유물들을 통해 이뤄내고 있다.

학자들은 1만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맥주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별도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야생 곡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지역이어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불리던 곳. 고대의 양조사는 그 땅에서 자라는 귀리를 가지고 처음 맥주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토기에서 토기로 곡물을 옮기면서 실수든 우연이든 토기의 갈라지거나 금간 곳에 살던 효모가 곡물에 작용하여 맥주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맥아를 만들지 못해 발아되지 않은 곡물로 술을 빚어 알코올 도수 1~2도 정도로 아주 약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5000년 전의 메소포타미아에선 제법 그럴듯한 맥주가 만들어졌으며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한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만큼 메소포타미아 유물을 가진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모뉴먼트 블루’라는 수메르인들의 점토판이 있다. 이 점토판에는 수확한 보리를 방아로 찧은 뒤 맥주를 만들어 풍요의 여신인 닌카시에게 바치는 풍습이 기록돼 있다.

일명 ‘닌카시 찬가’다. 고대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처럼 닌카시는 풍요와 농업의 신이다. 찬가에는 닌카시가 맥아를 만들고 맥즙을 만들어서 맥주를 만드는 과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닌카시여, 커다란 삽으로 반죽을 치대고, 구덩이에서 바피로(두 번 구운 빵)에 달콤한 꿀을 섞는 여신이여”라는 식으로 맥주 만드는 법을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레시피에 따르면 수메르인들은 빵을 만들어 이를 보리와 함께 넣어 발효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맥주라는 단어가 수메르의 종교와 의학 신화 등 다양한 부분에서 등장한다고 한다. 수메르인들에게 맥주는 문명의 상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두고 주변의 여러 종족들이 경쟁을 벌였는데 그들 모두가 맥주를 중심에 두고 사고했는지도 모른다. 수메르인들이 일군 문명을 멸망시킨 바빌로니아는 모든 것을 파괴했지만, 수메르의 맥주만은 계승하고 발전시켰다고 한다.

바빌로니아인들은 20여 종의 맥주를 만들어 마셨고 맥주양조사를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과 동일한 대우를 해줄 만큼 우대했다고 한다. 병역의 의무도 면제해줬다고 하니 맥주 만드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획전 동선의 마지막에는 두점의 페널이 기다리고 있다. 수메르인들이 일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정교한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사자벽돌 페널이다. 사자는 아쉬타르 여신을 상징한다.

이번 메소포타미아 기획전에는 이 밖에도 곱셈표와 채무변제 증서 등의 토판과 결투 장면이나 날씨를 관장하는 신과 정령, 그리고 아쉬타르 신상에 기도하는 장면을 담은 원통형 인장, 그리고 금귀걸이, 및 구슬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특히 전시실의 마지막에 양쪽으로 배치한 사자벽돌 페널은 수메르인들의 정교한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사자는 아쉬타르 여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표면은 유약이 발라져 있다. 이런 사자상이 120구가 양쪽으로 연이어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기록으로 남겨 있는 메소포타미아가 다가오는 듯하다. 지금은 메마른 땅에 모래바람 가득 부는 곳이 됐지만, 그 시절은 세계 최고의 문명을 일궈낸 곳이라는 것을 이 유물 등을 통해서 느껴봄 직하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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