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육형제, 나무마다 타닌 양·단맛 등 제각각
76년 역사 옥천 ‘구읍할매묵집’ 도토리묵밥 별미

도토리는 참나무 여섯형제가 만드는 열매다. 나무마다 맺히는 도토리의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탄닌과 단맛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참나무는 갈참나무다. 사진은 전남 장성의 백양사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갈참나무들이다.
도토리는 참나무 여섯형제가 만드는 열매다. 나무마다 맺히는 도토리의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탄닌과 단맛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참나무는 갈참나무다. 사진은 전남 장성의 백양사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갈참나무들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참나무 여섯 형제의 열매인 도토리가 발길에 차일 만큼 산길을 뒤덮는다. 산에 사는 동물들의 먹이여서 이제는 함부로 채집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도토리는 우리의 별식으로 연중 즐기는 음식 재료가 됐다.

특히 도토리묵은 잔치나 명절 음식으로 빠짐없이 챙기는 음식이 됐다. 그런데 쓰임새가 어디 잔치에 그치겠는가. 등산을 마치고 하산길에 곁들이는 막걸리 한잔에 도토리묵만큼 잘 어울리는 안주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일상적인 별미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 도토리묵이다.

여기에 최근 다이어트식으로 주목받으면서 도토리묵밥을 찾는 사람도 많아진데다 도토리 가루를 넣어 전을 부쳐 먹는 경우도 많아 도토리는 더는 별미 음식의 그룹에 포함할 수 없을 듯하다.

지금은 이렇게 별미타령을 하며 도토리를 말하지만, 불과 100년 전으로 되돌아가면 도토리는 귀한 식량처럼 대접받았다.

구황작물이라는 단어를 요즘 MZ세대에게 낯설 것이다. 보릿고개라는 단어도 그렇다. 1970년대에는 일상적으로, 80년대 넘어와서는 지역적으로 이런 단어는 남아 있었다. 먹을 식량이 없어서 힘들게 버텨야 하는 시기였다.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면 그해 농사는 망치게 된다.

그럴 때 주곡을 대신해서 심는 작물이 감자나 옥수수 메밀 같은 구황작물이다. 도토리는 심어서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시기를 넘기게 해주는 귀한 식량의 역할을 해왔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다.

도토리와 밤, 너도밤나무의 열매, 그리고 개암나무의 열매 등은 신석기혁명 이전부터 인류의 식량이 되어준 열매다.

물론 다람쥐와 청설모, 그리고 멧돼지의 식량이기도 했지만, 인류는 본격적인 농경시대 이전부터 도토리를 저장해서 추운 겨울을 이겨낼 식량으로 이용했으며, 농경을 시작한 뒤에도 가뭄 등의 이유로 충분한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면 도토리를 구황식품으로 활용했다.

이러한 문화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다. 고대 로마에서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고려의 충렬왕은 가뭄 등으로 흉년이 들면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도토리로 만든 음식을 일부러 먹었다고 한다.

임금이 백성들과 고난을 함께 나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강원도 산골의 마을에서 겨울에 도토리를 수십 가마 저장해뒀다는 내용도 나오고, 다른 지역에서도 반드시 창고에 저장해둬야 하는 식물로 여겼다.

그런데 참나무 여섯 형제의 도토리가 맛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는 갈참, 졸참, 굴참, 신갈, 떡갈, 상수리 등 여섯 나무를 모두 참나무라고 부른다.

신갈나무와 떡갈나무는 산꼭대기 등 높은 곳에 주로 자라 쉽게 볼 수 없지만, 갈참나무는 낮은 구릉지에도 많이 보인다. 창덕궁에 있는 참나무가 4000그루 정도 되는데 이중 1/3이 갈참나무라고 하니, 아마도 전국적으로 비슷한 분포도를 보일 것이다.

흔히 말할 때 졸참나무의 도토리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속껍질을 까고 그냥 먹어도 될 만큼 달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상수리나무는 탄닌이 많아 구수한 맛보다 쓰고 떫은 맛도 강하다고 한다. 그러니 동네 뒷산의 나무가 어떻게 분포해 있냐에 따라 도토리묵의 맛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충북 옥천의 ‘구읍할매묵집’의 도토리묵밥과 도토리묵전이다. 1946년부터 묵을 쒀 온 노포이다. 겨울이면 메밀묵도 만든다. 직접 쒀 만드는 묵은 그 자체가 담백하다. 시인 정지용의 생가에서 얼마 안떨어진 곳에 있다.
충북 옥천의 ‘구읍할매묵집’의 도토리묵밥과 도토리묵전이다. 1946년부터 묵을 쒀 온 노포이다. 겨울이면 메밀묵도 만든다. 직접 쒀 만드는 묵은 그 자체가 담백하다. 시인 정지용의 생가에서 얼마 안떨어진 곳에 있다.

충북 옥천을 지나면서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 한 곳이 있다. ‘구읍할매묵집’이다. 도토리묵은 물론 메밀묵도 다룬다. 지금은 작고해 ‘할매(김양순)’는 없지만, 1946년부터 읍사무소가 있던 이곳에 터를 잡고 묵을 쒀왔다.

물론 지금은 옥천역 근처로 읍소재지가 옮겨가 옥호는 구읍할매묵집이 됐지만, 76년 쒀온 묵은 소박하니 맛있다. 묵이라는 음식이 유난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슴슴하니 맛볼 수 있는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잔은 잘 어울리는 음식궁합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많이 우려서 그리 쓰지 않지만, 도토리의 텁텁한 맛이 싫으면 메밀묵을 먹을 수 있는 계절에 찾으면 된다. 메밀은 겨울이 제철이라 더운 계절에는 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토리묵도 가을과 겨울이 그해 수집한 도토리로 만드니 이때가 제철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듯싶다. 시인 정지용의 고향을 지나게 되면 일부러라도 옥천의 묵집을 찾아가 보자. 정갈한 묵밥이 속도 편하게 해준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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