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수 삼성증권 은퇴연구소장

언제 부터인가 ‘세대’에 대한 주목이 더욱 뚜렷해졌다. 미디어에서는 MZ세대가 온통 관심대상이다. 그간 듣고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과 가치관이 어떤 변곡점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편으론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사회 목전에 다다른 상황에서 은퇴준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자연스레 증가하고 있다. MZ세대와 은퇴를 앞둔 세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서로 다른 점이 많이 부각되지만 적어도 개인의 자산관리, 재무적 은퇴준비 측면에서 은퇴를 전후한 세대가 MZ세대를 따라 배울 점이 눈에 띈다. 논어에서 공자가 정진(精進)하는 후배들이 가히 두렵고 존경할 만하다고 했다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할 만하다.

FIRE족의 현명함, Goal Based Financial Planning

한때 젊은 세대의 경제관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나 플렉스(FLEX)를 떠올렸다. ‘한번 뿐인 인생 즐기자!’라거나 부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소비행태를 일컫는 용어인데, 사실 젊은 세대에게 권할 만한 가치는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새롭게 부상하는 MZ세대의 관심영역에 파이어(FIRE)가 있다.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과 빠른 은퇴(Retire Early)를 추구하는 가치지향과 그 행동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흐름에 동의하고 행동하는 젊은 세대들을 일컬어 ‘파이어(FIRE)족’이라고 한다. 사실 이 용어는 1992년에 미국의 빅키 로빈(Vicki Robin)과 조 도밍게즈(Joe Dominguez)가 쓴 ‘부의 주인은 누구인가(Your Money or Your Life)’라는 책에서 정리돼 주창되고 그 이후 확산됐다.

이 파이어 운동은 30여년 동안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의 동의를 얻어가며 세를 넓혔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움직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다양한 저작물도 나와 있다.

파이어(FIRE)족이 공유하는 가치는 극단적인 소비 축소와 투자를 통해 목표하는 재무적 목표에 빠른 시간에 도달해 경제적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노동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파이어족은 ‘25배 목표와 4% 룰’을 구체적 자산 축적과 은퇴 이후 자산에서 평생소득을 만드는 원칙으로 삼고 있다. ‘25배 목표’는 각자가 설정한 생활수준, 즉 연간 소비금액의 25배를 자산 축적의 목표로 삼고, 그 목표 수준에 이르면 ‘4% 룰’에 따라 매년 4%를 인출해 생활하면 적절한 투자수익률이 유지될 때 지속적으로 목표한 현금흐름이 지속된다는 논리다. 

25배 목표나 4% 룰이 신뢰할 만한 논리이냐는 사실 핵심적인 논점이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소득이 있는 시기에 분명한 자산축적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적절히 높이는 방법을 강구하고, 최종적으로 그 자산으로 일정한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큰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재무적인 관점에서 은퇴설계는 첫째, 목표설정, 둘째, 투자방안, 셋째, 현금흐름화, 이 세가지 요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목표설정 : 절대 목표와 행복한 부(Happy Rich)

재무적 은퇴설계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접근방법은 은퇴 후 절대적인 수준의 필요비용을 상정하고, 개인별로 추정되는 은퇴준비 자산과 비교해 부족분을 채워 나가는 방식이다. 이런 접근방식에 의하면 당장 해야 할 행동은 정기적 소득에서 저축, 투자자금의 비중을 높이고 필요한 수익 달성을 위해 투자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된다. 

앞서 소개한 파이어족의 공유가치 중에 경제적 관점 외에 한편에서 단순한 삶(Simple Living)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이 짝을 이루고 있는 데, 이 두 가지가 어우러져 ‘행복한 부(Happy Rich)’라는 개념이 있다. 저마다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최소 수준’의 생활 모습이 전제가 되고 이게 소비로 환산되어 구체적인 ‘25배 목표’의 출발점이 된다. 

이 점이 절대수준을 전제로 하고 은퇴설계를 시작하는 기존의 자산축적 목표설정과 다른 접근방법이다. 사실 만족할 만한 절대적 자산 수준이란 정의하기가 어렵다. 한 푼이라도 더 많으면 좋은 게 물질이라 욕심을 통제하기 어렵고, 그 욕심은 무리한 투자의 원인이 된다. 은퇴자산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 수립에서 ‘최소 수준’의 라이프스타일을 전제로 출발점을 잡는다는 건 좀 더 합리적인 자산관리를 위한 좋은 전제가 된다.

몇 해전 우리나라에 다녀가기도 했던 1997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머튼(Robert C. Merton)은 연금과 은퇴자산관리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분은 무조건 큰 자산규모를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소득과 투자여력을 감안한 ‘적절한 삶의 방식 선택(Chosen standard of living)’이 성공적인 재무적 은퇴설계에서 중요한 전제라고 제안하고 있다. 

투자방안 : 물가를 이겨내는 소득원천의 다양화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5060에 첫번째 주 일자리에서 물러나고 난 후 여생은 40여년에 이른다. 물론 제2의 일자리를 통해 소득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서, 관계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겠지만, 주 소득발생 기간 중 은퇴자산을 축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저축에서 투자’로의 인식전환은 불가피 하다.

여기서 투자란 저축보다 높은 기대수익률을 가지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인데, 저축에만 익숙했던 경우에 투자라고 하면 높은 기대수익 보다, 위험에만 눈이 가서 부정적 인식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서 투자는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인상) 속에서 자산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적절하게 소득원천을 다양화하는 경제적 활동이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의 흐름 속에 우리나라도 꾸준하게 금리가 오르고, 시중은행의 1년 정기예금 금리도 작년 이맘 때에 비해 크게 올랐다.

1년 전인 2021년 8월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1.5% 내외였던 것에 비해, 올해 8월에는 3.5% 수준까지 크게 올랐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는 근본적인 환경은 인플레이션에 있다. 2022년 8월 기준 전년동월 대비 소비자물가등락률은 +5.7%를 기록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꽤 높아 보이는 이자를 받으며 정기예금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도 내 자산의 실질가치는 거꾸로 계속 하락한다는 의미다.

이런 자산가치의 지속적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는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해 보유자산의 가치를 지키고 또 가치를 높여 나가는 투자 활동은 불가피하다. 다만 은퇴자산관리에서 저평가된 자산을 사서 비싸게 팔아 수익을 얻는 차익 극대화 방식의 투자가 아니라 정기예금 이자를 우량주식의 배당과 우량 회사채 또는 신종자본증권의 이자, 또 리츠나 인프라 펀드 등 대체투자 상품을 통해 인플레이션과 자본시장의 변동성을 반영한 적절한 수익자산으로 ‘수익의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 은퇴자산관리에서 ‘저축에서 투자로의 인식전환’이란 바로 이런 수익의 다양화를 의미한다.

현금흐름 : 자산규모가 아니라 안정적 평생월급

은퇴자산은 소득 창출시기를 지나 은퇴 후 생활비를 마련한다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쌓아 놓은 절대 규모보다 마치 월급을 받듯이 정기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은퇴자산 축적기에 연금형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은 필수적이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같은 1, 2층 연금제도가 갖추어져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은 하지만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연금저축계좌와 개인형퇴직연금(IRP,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은 은퇴자산관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수단이며, 또 소득창출기간 동안 은퇴에 대비해 자산을 모으고 불려간다면 반드시 활용해야 할 필수적인 수단이다. 근로소득을 모으는 동안 세액공제를 통해 큰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은퇴 후 연금으로 수령하면 역시 다양한 세율 할인을 통해 최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현재 연금저축계좌와 IRP를 이용하면 기본적으로 연간 최대 700만원을 납입하면 연간 총급여 수준에 따라 13.2%(92.4만원)에서 16.5%(115.5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22년 세법개정안에서는 900만원까지 세액공제 대상 금액을 확대해 148.5만원까지 근로소득세 환급이 가능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55세 이후에 몇 가지 조건에 맞춰 연금으로 이 계좌에서 인출하게 되면 연금소득세로 3.3%~5.5%로 저율 과세하고, 퇴직급여를 이 계좌에 납입해 인출하면 퇴직소득세도 최대 40% 할인해 준다. 은퇴 후를 대비한 금융자산을 준비한다면 반드시 누려야 할 혜택이다.

정부가 다양한 세제혜택을 연금저축과 IRP에 부여하고 또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은 그만큼 은퇴 후 적절한 현금흐름, 즉 연금화된 자산의 준비가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는 의미다. 

연금저축과 IRP는 은퇴 후 연금화를 전제로 다양한 혜택이 부여되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납입된 자산을 예적금, 혼합형펀드, TDF, ETF, 리츠 등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가입자 개인이 분산투자하고 자산배분해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 금융상품은 예산을 투입해 우대 금리를 부여하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반해, 은퇴자산의 바람직한 축적을 유도하는 연금상품은 세제혜택에 더해 다양한 금융상품의 분산투자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은 앞서 살펴본 물가를 이겨내는 소득원천의 다양화라는 은퇴자산관리의 투자 불가피성과 괘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또 은퇴자산관리는 성격상 시장의 변동성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투자방법의 첫번째 요건이라고 할 만한 장기, 적립식 투자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만큼, 여기에 적절한 분산투자를 더한다면 오랜 역사적 데이터가 증명하듯 성공적으로 물가를 이겨내는 성공한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은퇴자산 투자의 목적은 절대자산규모의 증대에만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월급 만들기라는 관점에서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산가치의 변동에만 주목해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얻는 차익 극대화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배당주식, 우량채권, 임대료 수익기반의 리츠나 인프라 펀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투자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현명한 젊은 세대라 할 만한 파이어족의 논리로부터 은퇴자산관리의 목표설정, 투자방안, 현금흐름이라는 세가지 핵심요소를 살펴봤다. 개인별로 처한 상황과 시기별로 변화하는 조건들은 차이가 있겠지만 이제 40여년에 달하는 은퇴 후 삶의 기본이 되는 경제적 대비를 위해 현황을 점검하고 자산배분 투자와 평생월급인 연금 설계에 대해 짚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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