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모작 지역선 꼭 챙겼고, 액운 막는 ‘창포주’ 즐겨
‘쑥술’도 제철 맞아 술과 떡으로 즐기던 전통 음식

쑥은 양기를 의미하는 식재료다. 봄철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자란 쑥은 술의 재료로도 이용됐다. 현재 상업양조를 하고 있는 쑥술은 대전의 주방장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쑥크레’가 있다.
쑥은 양기를 의미하는 식재료다. 봄철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자란 쑥은 술의 재료로도 이용됐다. 현재 상업양조를 하고 있는 쑥술은 대전의 주방장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쑥크레’가 있다.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이라 부른다. 올 달력으로는 10월 4일이다. 절기는 여름을 벗어던지고 가을 한가운데 들어선 시점이다. 그리고 그날의 이름이 ‘중양’인 것은 9라는 숫자가 두 번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하다고 말하는 시기다.

바람은 차갑지만 햇볕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니 그리 말할 것이다. 그런데 봄에도 비슷한 시기가 있다. 음력 5월, 즉 6월의 햇살도 그렇게 뜨겁다. 바람에는 여름 한낮의 후덥지근한 습기가 담겨 있지 않아 그늘에 있으면 그래도 시원한 날씨, 하지만 햇살만은 10월 못지않은 계절인 것이다.

지금은 퇴색한 명절이지만 음력 5월에는 중요한 절기 하나가 있다. 단오절이다. 조선 시대에는 설, 추석, 그리고 대보름과 함께 4대 명절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챙기지 않는 일부 지역의 향토 제례 의식이 됐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대한민국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하게 이행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사라진 문화는 아니다. 강릉의 단오제는 지난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지역이 떠들썩할 정도의 축제로 진행된다. 게다가 2005년에는 문화적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그런 만큼 우리의 삶과 직접적 관계가 없다고, 인연을 끊을 수 있는 세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쩌다 단오는 명절의 의미를 잃고 퇴색된 것일까. 단오는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꼭 챙기던 명절이었다. 하지만 농사와 관련해 만들어진 세시가 농업 기술의 진보로 지역적으로 제한되어 전승되게 된다. 이유는 이앙법과 이모작 등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적용되면서 농민들의 연중 노동시간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보리와 밀 등 밭작물을 1년에 한 번 짓는 곳은 수확을 끝내고 풍년의 기쁨을 놀이로 풀어낼 수 있었지만, 벼농사를 짓는 지방에선 한창 바쁜 모내기를 준비하는 시기가 바로 단오 즈음이다.

게다가 이모작을 하는 지역의 경우는 보리와 밀 등을 수확하고 바로 조와 콩, 팥 등을 파종해야 한다. 한마디로 고양이 손까지 빌려야 하는 시절에 ‘춘향전’에 나오듯 그네를 타고 씨름판을 열고, 투석전을 벌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단오절은 명절의 의미가 크게 줄어들고, 북쪽 지방의 명절로 자리하게 되고 남부지역은 추석을 중심으로, 그리고 강릉 등의 동남부 지역은 추석과 단오를 같이 즐기는 지역으로 정착하게 됐다.

이처럼 단오는 농사일에 바쁜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서 명절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강릉의 단오제는 달랐다. 인류무형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된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막혔던 강릉 단오제는 올해 3년 만에 열렸다.

그 행사의 시작은 ‘대관령 산신제’와 ‘국사성황제’이다. 물론 공식적인 행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 말은 공식행사에 앞서 진행하는 행사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단오제 ‘신주빚기’다.

단오제의 시작인 산신제와 국사성황제에도 술은 필요하다. 그래서 강릉에선 단오 한 달 전에 신주빚기에 나선다. 이렇게 단오제에 맞춰 빚는 술은 창포를 넣어 빚는다고 해서 ‘창포주’라고 한다.

창포는 우리나라 호수나 연못 등의 습지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그리고 단오 때가 되면 창포의 잎을 따다가 약쑥과 천공 수양버들을 솥에 넣어 창포탕을 내어 머리를 감았다.

그렇다면 단오제의 신주인 창포주는 어떻게 빚는 것일까. 창포탕은 창포의 잎을 사용했다면 창포주는 뿌리를 사용한다. 창포 뿌리를 즙을 내서 찹쌀 고두밥을 넣고 빚는 술이다. 창포주의 의미는 질병, 곡 귀신을 퇴치하려 한 데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신주로 사용된 것이기도 하다. 창포주는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궁은 물론 민간에서도 빚어 마신 음력 5월(양력 6월)의 대표적인 세시주이다.

그런데 단오와 관련된 술이 창포주 하나만은 아니다. 단오의 절기적 특징은 ‘양기’다. 1년 중 양의 기운이 강한 날이어서 그렇다. 양기가 왕성하다는 것은 좋은 의미도 있지만, 잡귀와 잡신도 들끓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악귀와 액운을 막기 위해 창포로 머리를 감고, 술을 빚어 마셨듯이 단오날 정오에 쑥을 뜯어 술과 떡을 해 마셨다고 한다.

액운을 막는다는 의미가 쑥에도 있기 때문이다. 이 쑥으로 빚은 술이 쑥술이다. 한자로는 애주(艾酒) 혹은 애엽주(艾葉酒)라고 한다. 쑥술은 최근 상업양조에 나서는 양조장들이 등장할 만큼 관심을 끌고 있는 술이기도 하다. 쑥의 독특한 향취와 쑥의 약성을 장점으로 살려 상업화에 도전한 것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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