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성종 때 연못 파고, 심은 나무 지금도 은행 맺어
귀 달린 뱀 산다는 전설 있어, 마을사람들 정성껏 가꿔

읍내리 은행나무는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로서, 또는 백성을 사랑하는 고을 성주를 기리고 후손들의 교훈이 되도록 하는 상징성을 가진 나무로서 문화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1000년 가까이 살아온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사진=문화재청)
읍내리 은행나무는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로서, 또는 백성을 사랑하는 고을 성주를 기리고 후손들의 교훈이 되도록 하는 상징성을 가진 나무로서 문화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1000년 가까이 살아온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사진=문화재청)

올 9월은 유난히 햇볕이 뜨거워 아침저녁에나 겨우 가을을 느낄 수 있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무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다. 오는 가을을 제대로 담는 것이다. 노란색 은행을 나뭇가지 가득 촘촘하게 매달고 있고, 나무 그늘에도 은행이 수북이 흐트러져 있다.

천연기념물이어서 나무로의 접근을 막기 위해 차단목이 설치돼 있었지만, 나무의 크기가 워낙 웅장해 나무를 한눈에 담고자 한다면 조금은 떨어져 바라봐야 할 정도다. 천년을 넘겨 살아온 나무다. 그런데도 자기 씨앗을 이렇게나 매달고 있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물론 은행나무는 2억년 전 쥐라기 시대부터 살아온 ‘화석’ 같은 나무다. 그리고 병충해와 오염에 강해 끈질긴 생명력은 따져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은행나무는 2020년 말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가 23건으로 소나무류(26건) 다음으로 많다. 세 번째는 느티나무로 19건이 지정돼 있다.

서설이 길었다. 충북 괴산의 읍내리 은행나무는 청안초등학교 안에 있다. 고려 성종 때 이 마을의 성주가 청당(淸塘)이라는 연못을 만들고 그 둘레 나무를 심었는데 그중 한 그루가 이 은행나무라고 한다. 나무의 크기는 대략 이렇다. 높이 17m에 가슴높이 둘레가 8m 정도. 무척 큰 나무다. 그리고 현재도 연못은 있지만, 노거수는 이 나무 하나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만 추정해도 이 나무는 대충 천년을 살아온 셈이다.

가지가 부러질 것에 대비해 철지주를 대고 있고 나무의 몸통에도 군데군데 상처를 치료한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시간을 버텨왔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나무는 건강한 편이었다.

(사진=문화재청)
읍내리 은행나무(사진=문화재청)

이 나무를 보기 위해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니 초등학교 운동장을 누빌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렇게 큰 나무를 어려서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큰 나무가 주는 그늘은 물론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열리는 은행을 내주면서 나무는 말없이 강한 생명력과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줬을 것이다.

굳이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이 나무는 아이들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줬을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무가 지닌 가치는 무궁하다.

그런데 나무에 가지가 잘린 흔적들이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나무에는 영험한 귀 달린 뱀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나무에 해코지하려는 사람들에게 벌을 준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청당을 판 고을의 성주가 선정을 베풀어 이후 마을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듯 은행나무를 잘 가꾸었다고 하는데, 이 전설까지 내려오고 있으니 정성을 다해 보존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식으로 전설이 깃들어 있는 나무들이 제법 많다. 경북 상주 상현리 반송에는 승천하지 못한 용,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일종의 금제인 것이다. 뱀이나 이무기가 사는 은행나무와 소나무에 누가 쉽게 다가갈 수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마을의 큰 나무에는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마을 단위의 이야기를 담아놓곤 한다.

당산나무로 떠받드는 것 자체가 일종의 종교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신앙의 대상으로 삼게 되면 나무에 대한 훼손은 아예 생각할 수 없게 되니 말이다. 여기에 훼손을 했을 경우 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면 더욱 강력한 금제가 형성된다. 일종의 ‘동티’다.

동티는 금기된 행위를 하였을 때 귀신을 노하게 해 받는 처벌을 의미한다. 예컨대 흙을 잘못 다루면 지신(地神)을 노하게 해 재앙을 받게 되고, 읍내리의 은행나무를 훼손하면 영험한 뱀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한다는 식의 처벌이다. 나무에 깃든 동티 중에 대표적인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전남 무안 석용리 곰솔에는 다음의 내용이 전설로 내려온다.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쟁기용으로 쓰기 위해 나뭇가지를 베었다가 국부에 종기가 나서 삼 년간 고생하다 죽었다는 것이다. 잔혹극처럼 살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와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에도 유사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