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엽수림 피톤치드 심신 안정과 항산화 작용 기여
소나무좀·곰팡이 같이 공격시 소나무도 속수무책

경기도 가평에 자리한 아침고요수목원의 소나무다. 소나무는 향기물질인 ‘테르펜’을 통해 사람들에게 심신 안정과 항산화 물질을 전달해준다.
경기도 가평에 자리한 아침고요수목원의 소나무다. 소나무는 향기물질인 ‘테르펜’을 통해 사람들에게 심신 안정과 항산화 물질을 전달해준다.

포도의 향기는 테르펜이라는 물질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와인에서 나오는 허브향, 꽃향, 과일향 등 대부분의 향은 테르펜이 주는 향이라고 한다.

그런데 소나무나 귤의 껍질, 허브 에센셜 오일 등에서 나오는 방향물질인 피넨과 리모넨, 리날로올 등도 모두 테르펜이라고 한다. 소나무가 주는 향은 청량감과 자극 효과이며 귤껍질의 리모넨은 밝고 명랑한 시트러스향, 그리고 마지막으로 허브 에센셜 오일에서 나오는 리날로올은 진정 효과를 주는 라벤더 향이다.

그런데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귤과 소나무, 에센셜 오일도 서로 다르지만, 포도의 향과도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품종이 다른 와인을 마시면서 느끼는 와인의 향도 무척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향기 물질은 분자의 구성에 따라 확실하게 차별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듯하다.

포도의 경우는 품종에 따라 모두 다른 향을 낸다. 품종에 따라 테르펜의 종류와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테르펜 함량이 가장 많은 품종은 머스캣이라는 품종인데, 흔히 모스카토라는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품종이다.

이 품종에는 리날로올, 제라니올, 네롤 등 아주 다양한 테르펜이 들어 있다. 또한 포도의 경우는 이 향기 물질 외에 파프리카 같은 초록색 채소에서 맡을 수 있는 풀 내음도 담겨 있다.

이런 물질들이 섞여서 포도의 향기를 구성하고, 그리고 발효하면서 물질이 다시 구성되면 와인에선 또다른 항미를 뿜어낸다.

그런데 이 테르펜은 향기 물질이면서 식물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대마초나 소나무의 사촌 격인 삼나무, 그리고 소나무는 벌레를 쫓아내는 수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침엽수들은 뜨거운 여름날이면 테르펜을 더 많이 뿜어낸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무를 해치는 벌레들이 많아지는 시기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향기 물질의 분자가 수증기에 더 잘 달라붙기 때문에 햇빛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단다. 그래서 숲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침엽수림이 우거진 곳을 걷다 보면 흔히 ‘피톤치드’을 이용한 아로마테라피의 효과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피톤치드는 앞서 이야기한 테르펜이 주요 물질을 구성한다. 식물 스스로 주위 환경과 해충에 대해 방어하기 위해 뿌리는 화학무기인 셈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고 항산화 효능, 즉 질병과 싸우는 백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깊은 숲에서 피톤치드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곳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면역시스템을 강화할 수도 있다.

피톤치드 물질을 좀 더 살펴보자. 소나무가 지닌 피넨 물질은 물론 파슬리의 향기 성분인 베타피넨도 침엽수림에서 많이 검출되고 앞서 말한 리모넨, 즉 귤이나 오렌지, 레몬이 가진 향기 성분도 소나무 등의 침엽수림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로마테라피를 말하는 사람들은 산림치유를 위해서 특정 나무나 식물을 고집하지 말고 그냥 숲속에서 편안하게 즐기라고 말한다.

전남 담양군에 있는 원림인 소쇄원 뒤편의 송림이다. 소나무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향기물질인 ‘테르펜’을 내뿜는다. 인간에게는 유익하지만 소나무의 해충에겐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전남 담양군에 있는 원림인 소쇄원 뒤편의 송림이다. 소나무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향기물질인 ‘테르펜’을 내뿜는다. 인간에게는 유익하지만 소나무의 해충에겐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이밖에도 소나무는 실제로 건강을 회복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송유(松油), 즉 소나무 가지에서 나오는 기름은 두통과 감기를 치료하고 피멍 등의 통증을 풀어준다고 한다. 또한 소나무 껍질과 솔잎에는 다량의 비타민C가 들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나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뿜어내는 테르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고 한다. 최근 기후변화 등으로 늘고 있는 소나무좀의 공격을 받을 때 그렇다고 하는데, 소나무좀과 소나무좀이 매개하는 곰팡이가 동시에 공격해 오면 테르펜도 별다른 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식물의 향기 물질(테르펜)이 지닌 여러 작용이 식물과 인간에게 다양한 이익과 손해를 가져다주고 있다.

물론 우리 인간은 얻는 이익만을 생각한다. 즉 피톤치드와 뜨거운 여름날 주어지는 숲속의 시원한 공기 말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에 죽어가야 하는 소나무들은 누가 생각해 줘야 할 것인가. 우리 곁에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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