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앞 분주한 조포나루, 도심 사찰 기능
여주, 육로운송·수운 교차하는 물류 중심지역

경기도 여주 신륵사는 남한강 변에 위치한 강변 사찰이다. 경내에는 600~700년 된 나무들도 많다. 사진은 은행나무와 참나무다.
경기도 여주 신륵사는 남한강 변에 위치한 강변 사찰이다. 경내에는 600~700년 된 나무들도 많다. 사진은 은행나무와 참나무다.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여주라는 도시가 있다. 여주와 이천 쌀은 지금도 밥맛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조선시대까지 여주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우선 쌀 생산량이 그랬고, 경상도와 강원도에서 올라오는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먼저 조선시대 대표적인 쌀 생산지역은 경기지역에선 여주와 이천이었으며, 전라도에선 전주와 김제, 만경 그리고 황해도에선 연안과 봉산이 쌀 수확량이 많은 곳이었다. 지금은 서울 경기에 인구가 집중돼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삼남지역(충청, 전라, 경상)에 인구의 절반 정도가 살고 있었다. 즉 쌀의 생산량은 전라도의 전주와 김제, 만경 지역이 가장 많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여주와 이천의 쌀은 한양에서 주로 소비되는 쌀이어서 미질을 으뜸으로 치던 곳이다.

물류와 관련해서 여주는 육로 교통망과 수운이 교차하는 길목에 해당한다.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육로는 안동, 영덕을 거쳐 충주로 그리고 여주를 거쳐 광주를 지난 한양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남한강을 따라 흐르는 뱃길은 강원도 정선에서 시작돼 충주를 지나 여주의 조포나루와 이포나루를 거쳐 송파나루와 마포나루에 닿는다. 그런데 여주에 있던 조포나루와 이포나루는 조선시대 한강의 4대 나루였다. 나머지 둘은 마포나루와 광나루다. 조포와 이포가 그만큼 물류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주를 길게 설명했다. 이유는 남한강 변 조포나루 앞에 있는 신륵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대승불교를 받아들인 동아시아 3국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강변 사찰이다. 절은 인적이 드문 산속 깊숙이 들어가 있거나 사람이 북적이는 도회지에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산중 사찰은 선승의 수양처로 적합하기 때문이고 도회지의 사찰은 대중 포교를 위한 최고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륵사는 강변에 자리해 있다.

이유는 여주에 대한 설명에 들어 있다. 남한강 수로 중에 여주시 점동면 삼합리부터 이포대교 부근인 금사면 전북리까지 총 40여㎞에 이르는 1백리 물길을 흔히 여강(驪江)이라고 한다, 이처럼 별도의 이름을 붙인 것은 여주에 이르러 강폭이 넓어지고 물결도 세차져 다른 수역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여강은 여주의 옛 이름인 황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기한 두 마리의 말이 물가에서 나왔는데 누런 황마와 검은 흑마였다고 한다. 그래서 두 말의 글자를 따서 황려가 됐고, 그중에 려(驪)가 지금의 여주와 여강으로 남은 것이다.

남한강 수로를 따라 움직이는 뱃사람들에게 안녕을 기원할 수 있도록 강에서도 보이는 위치에 전탑이 위치해 있다.
남한강 수로를 따라 움직이는 뱃사람들에게 안녕을 기원할 수 있도록 강에서도 보이는 위치에 전탑이 위치해 있다.

다시 신륵사 이야기로 돌아가자. 강폭이 넓어지고 물동량이 많았다는 것은 수운을 통해 여강을 오가는 뱃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와 함께 경상도에서 충청도를 거쳐오는 육로 이동자들도 이곳을 거쳐 가게 된다. 신륵사는 이들의 안전한 운행과 여행을 기원하는 사찰이었다.

조포나루는 바로 신륵사 일주문을 앞에 있다. 장마로 물이 불으면 정성 아우라지에서 띄운 뗏목이 3일 정도면 조포에 닿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 뗏목만이 이 강을 지나갔겠는가. 한양으로 올라가는 세곡도 이 길을 거쳐서 갔고, 한양에서 충청도와 강원도로 가는 소금배도 이곳을 지나갔다. 그러니 수운 중심지로서 신륵사의 존재 이유는 너무도 분명했다. 뱃사람들의 안전한 뱃길을 기원해주는 기도 도량이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절에는 뱃사람들의 수호신이라고 하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도 있다. 그리고 나루에 배를 세우고 기도를 할 수 없는 뱃사람들에겐 지나는 길에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멀리서도 보이는 전탑을 우뚝 세웠다. 이 전탑 뒤로는 단풍이 물들은 600년 된 은행나무와 참나무 한그루가 형제처럼 서있다. 멀리서 나무를 보고도 쉽게 신륵사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아름드리 나무들이다.

그런데 신륵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신륵사 밖에서 봐야 할 듯하다. 뱃사람의 시선을 느끼고 싶다면 횡포 나루터에서 운행 중인 황포돛배를 타고 바라보거나 강 건너에서 신륵사를 바라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래야 신륵사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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