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4일 11:51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근대 보험의 기원은 1688년 영국 런던의 로이즈 커피하우스입니다. 선원들에게 해상무역 거래에 대한 주요 정보를 ‘로이즈 리스트’라는 소식지로 전달했죠. 여러 위험에 노출된 선원들의 리스크를 공동인수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은 전세계 보험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정보는 보험에서 손익과 직결되는 요소입니다. 유익한 보험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흥국생명과 DB생명이 신종자본증권 미상환을 결정했습니다. 빚을 냈는데 올해는 갚기 어려우니 나중에 갚겠다는 뜻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를 대처하는 금융당국이 자가당착에 빠진 모습입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초장기(30년)인 채권입니다. 통상 채권시장에서 30년은 갚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영구적’이라고 봐서 영구채로도 불립니다. 그래서 부채라기보다는 자본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과거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이기도 했죠. 

앞서 흥국생명은 지난 2017년 외화 신종자본증권 5억여달러를 발행했습니다. 발행금리는 4.475%였고 5년 콜옵션(조기상환) 조건이 붙었습니다. 5년 내 상환하지 않으면 발행금리에 2.472%포인트의 이자를 더 내야한다는 뜻입니다. 5년이 지난 현재, 흥국생명은 상환을 좀 미루겠다고 한 겁니다.

이와 반대로 투자자들은 신종자본증권을 영구적인 성격으로 보지 않습니다. 발행회사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기존보다 1.5배 가까이 이자를 더 내야하는데 통상 ‘안 갚고 배기겠어’라는 생각으로 구매를 결정합니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채무불이행 결정이 국내 채권시장의 대외적 신뢰도를 낮출 우려가 있다는 게 이 점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신종발행증권의 콜옵션 만기를 연장한 건 지난 2009년 우리은행 한 번 뿐이었을 정도입니다. 대부분 조기상환이 이뤄졌죠.

금융당국의 고민도 신종자본증권에 붙어 있는 콜옵션이었습니다. 

만기가 영구적이라서 자본으로 인정할 수 있는 채권이라 했는데 5년 만에 갚아버릴 수 있는 조건이 붙고, 회사들도 대부분 상환한다면 이걸 자본으로 봐줘야하는지 난감했죠.

그래서 보험업법에서도 신종자본증권의 자본인정 조건으로 ‘지속성’과 ‘후순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은 후순위채보다 나중에 갚아도 되는 채권이다 보니 결국 지속성을 지킬 수 있는 요소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에 콜옵션을 행사하기 위해선 발행자인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이 금융당국이 건전하다고 볼 수 있는 최소치(150%)를 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조기 상환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성이 강한 채권을 새로 발행하는 등 다른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신종자본증권과 자본성이 동일하거나 더 강한 증권은 사실상 증자 외에는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콜옵션 행사 자체가 금융감독원장의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 신종자본증권을 5년 안에 갚을 거라면 금감원의 승인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실컷 돈 빌려서 자본으로 인정받아놓고 빨리 갚는다면 최소 5년 동안은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보험사도 그렇지 않아 보이는 ‘착시’가 생깁니다.

이런 상황에선 보험사의 대외신인도가 중요한 게 아닐 테죠. 금감원 입장에선 후순위 채권에 투자한 기관들보다 중요한 게 보험사에 돈을 맡긴 계약자들이니까요.

그런데 이번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채무불이행을 두고 금융위는 지난 2일 보도참고 자료를 통해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의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채무불이행은 문제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의견은 기획재정부, 금감원과도 공유되고 있다고 합니다.

콜옵션을 미 이행한 회사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힌 대목은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금융당국의 인식을 되짚어보게 합니다. 

부채가 자본으로 인정되는 성격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건전하지 않은 보험사가 조기상환하기 어렵도록 해두고선, 정작 빨리 안 갚겠다고 나서니 그 보험사엔 문제가 없다고 말한 셈입니다. 

올 상반기 기준 흥국생명의 RBC는 국내 생보사 중 가장 낮은 157.8%로 금감원의 권고치(150%)를 간신히 넘겼습니다. 3분기는 권고치마저 밑돌 전망이죠. 같은 기간 보험사의 현금유동성을 보여주는 유동성비율도 103%로 경고 수준에 근접했습니다.

오히려 금융당국에서 보험사의 사정이 어려우니 일단 콜옵션을 연기한다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채권투자자들은 불안했겠지만, 적어도 흥국생명 보험계약자들은 ‘우리 돈은 지키려고 애쓰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변제에서는 신종자본증권보다 더 우선이니까요. 

당장 흥국생명이나 DB생명이 보험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거나 심대한 경영악화가 발생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금융당국이 신종자본증권을 자본으로 인정하기 위해 여러 조건을 달았던 건 채권투자자를 위한 결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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