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글쭈글한 포도 만드는 아파시멘토 방식의 ‘호스타 레드’ 생산
경북 영천 조흔와이너리 서광복 대표, 와인·리큐르 18종 만들어

지난 2008년 귀향한 서광복 조흔와이너리 대표가 양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명품 와인을 만들고 싶은 그의 꿈은 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가고 있다.
지난 2008년 귀향한 서광복 조흔와이너리 대표가 양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명품 와인을 만들고 싶은 그의 꿈은 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가고 있다.

10월 하순 잘 익은 포도송이를 가지째 잘라 그 나무의 가지에 걸어둔다. 20여 일 바람이 잘 통하는 포도나무에서 농익으면 포도알은 쭈글쭈글한 모습이 된다. 무게가 25~40% 정도 줄게 되니 포도의 당도는 바로 땄을 때보다 높아져 28브릭스 이상이 된다.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을 갖춘 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마치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아파시멘토(Appassimento)’와 같은 방식이다. 이곳에서도 익은 포도를 잘라 나무받침대나 포도나무에 걸어 과숙시킨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 13.5%의 근사한 포도주는 이렇게 손 많이 가는 농사법으로 수확하게 된다.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흔와이너리의 서광복(57) 대표가 자신의 시그니처 와인인 ‘호스타레드’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수확하는 과정이다. 손도 많이 가는 농법에 심지어 내추럴 와인으로 담아내는 이 와인의 가격은 파격적이다. 3만원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 자신이 농사지어 수확하는 포도 15톤 중 약 1톤 정도를 이 방법으로 수확해 와인으로 나오는 것은 고작 500병 내외라고 한다.

처음에는 원가를 생각해서 10만원에 시장에 냈지만, 한국와인에 관심이 없던 시절,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한다. 웬만하면 포기했을 이 와인을 그는 ‘한국에도 이런 와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생산하고 있다. 그것도 원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가격으로 말이다. 언젠가는 조흔와이너리의 와인을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광복 대표는 귀향하자마자 영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와인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과 포항, 대구 등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사업을 하다 크게 실패를 경험한다. 결국 고향 땅으로 내려와 아버지의 포도밭을 이어가게 되는데 단순히 식용포도 재배로는 성장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와인을 빚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2008년의 일이다. 교육을 받으면서 시범양조를 했던 서 대표는 이듬해 와이너리를 만들고 2010년 사업자등록증을 받는다.

그런데 시작이 창대했다고 말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포도원에 22종의 양조용포도를 재배했다. 5년 동안 국산 명품와인을 기대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 포도들은 우리 기후와 토양과 화합하지 못했다. 카베르네쇼비뇽, 메를로 등 이름을 대면 알 수 있는 품종들이다. 추위를 견디지 못했고, 심지어 토착화된 포도에 접목한 나무는 살아남았지만, 당도가 따라오지 못했다.

결국 모두 베어내고 이 땅에서 잘 자라는 나무들로 다시 심었다. 그래서 지금 그의 5000평 규모의 포도원에는 샤인머스캣과 청수, 캠벨얼리, MBA 그리고 머루가 자라고 있다.

조흔와이너리에서는 총 18종의 와인과 증류주를 생산하고 있다. 영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술을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는 오랜 방황 끝에 찾아냈다.
조흔와이너리에서는 총 18종의 와인과 증류주를 생산하고 있다. 영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술을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는 오랜 방황 끝에 찾아냈다.

다양한 품종을 농사지었지만 결국 땅에서 잘 자라는 품종이 최고의 와인을 만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한해 15톤 내외의 포도주를 양조하는데 가장 많이 만드는 것이 샤인머스캣이다. 그리고 MBA와 캠벨얼리 순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잘 나가는 와인도 이들 와인이다. 레드와인은 와이너리의 자존심이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 아파시멘토 방식으로 수확한 MBA로 빚고 대중적인 레드와인(조흔레드)은 MBA와 머루를 블렌딩해서 양조한다.

하지만 서 대표가 레드와인에만 진심을 담은 것은 아니다. 외려 외국산 와인과 경쟁할 수 있는 와인은 화이트와인이라고 생각한다. 청수와 샤인머스캣으로 담은 화이트에 애정을 싣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내추럴 와인을 10년 이상 고집하면서 시장의 외면을 받아왔는데도 그는 여전히 기대를 놓지 못하고 있다.

포도 농사의 규모가 있으니 잘 팔리지 않은 와인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증류였는데, 상당량의 브랜디가 모아져 지난 2018년에는 ‘칸’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디를 발표했다. 또 서 대표는 이 증류주를 영천시의 특화된 작물인 약용식물과 연결 지어 다양한 리큐르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당현종이 즐겨 마셨다는 ‘독계산주’라는 이름의 술을 개발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술을 만들고 있지만 조흔와이너리를 찾게 된다면 꼭 기억해두자. 양조인의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긴 시간의 노동력이 들어감에도 포기하지 않고 만들고 있는 ‘호스타레드’라는 시그니처 와인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3만원이라는 가격으로 판다는 것까지. 그런데 범용으로 만들고 있는 ‘조흔레드’도 데일리와인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걸 밝혀둔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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