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겨울날에 돋보이는 ‘호랑가시나무’
따뜻한 제주도, 전남·북 해안가 주로 자생

▲ 충남 태안에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에는 530여 종의 호랑가시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진은 완도호랑가시나무로 국내에서 자라고 있는 호랑가시나무다.
▲ 충남 태안에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에는 530여 종의 호랑가시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진은 완도호랑가시나무로 국내에서 자라고 있는 호랑가시나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이 계절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물이 하나 있다. 호랑가시나무다.

초록색 잎과 붉은색 열매가 무채색 같은 겨울에 더 돋보여 동그란 화환을 만들어 현관에 걸어두는 것은 오랜 서양의 관습이다.

우리도 크리스마스를 받아들인 뒤 동그란 리스를 만들어 장식물로 걸어두는 집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호랑가시나무로 화환을 만든 것일까. 여기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한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야 했던 예수의 머리에 가시면류관이 씌어 있다.

그림 속 예수의 이마에선 가시에 찔려 피가 흐르는데, 그 가시면류관이 호랑가시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 장식물에 잎과 열매를 쓸 정도로 기독교의 상징물이 됐다. 이와 함께 이 나무는 서양의 경우 성당과 교회의 마당에 심어졌고,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선교사들의 사택 마당에도 예외 없이 이 나무가 식재됐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연말이면 이웃돕기 성금 모집에 나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상징물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단체의 이름은 잘 몰라도 붉은색 열매 3개가 한 송이처럼 만들어진 ‘사랑의 열매’는 다들 보고, 양복 깃에 꽂아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다.

▲ 호랑가시나무의 붉은색 열매는 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상징물인 ’사랑의 열매‘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다.
▲ 호랑가시나무의 붉은색 열매는 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상징물인 ’사랑의 열매‘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의 대표 상징물로 자리하다 보니 영어 이름도 성스럽다는 의미의 ‘홀리(holly)’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나무는 주목나무와 함께 영원한 생명과 희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떠오를 수 있는 단어들이 또 있다. 커피전문점 이름인 ‘할리스커피’와 ‘할리우드’는 어떨까. 맞다. 이 단어들도 호랑가시나무에서 가져온 것으로 모두 이 나무의 숲을 뜻한다.

우리 이름 ‘호랑가시’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물론 ‘호랑이’와 ‘가시’의 합성어다. 두 단어가 모인 것은 이 나무의 잎이 호랑이 발톱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인지 전북 변산 지방에서는 ‘호랑등긁기’라고 부른다. 호랑이가 등이 가려울 때 쓰면 좋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전남 완도에서도 ‘호랑이발톱나무’라고 이 나무를 부른다. 한자로는 ‘노호자(老虎刺)로 쓴다. 즉 한자로도 날카로운 호랑이 가시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호랑가시나무를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은 ‘천리포수목원’이다.

미국 태생의 고 민병갈(미국명 Carl Miller) 원장이 사비를 들여 1962년 태안에 땅을 마련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해 2009년에 일반에 개방한 국내 최초의 민간수목원이다. 이곳에 가면 호랑가시나무 530종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호랑가시나무가 있는 까닭은 민 원장이 이 나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수목원의 간판 수종으로 키우려 했으며, 또 한국호랑가시학회를 만들어 회장까지 지냈다.

심지어 1978년에는 전라남도 완도로 나선 식물탐사여행에서 국내 자생종 호랑가시나무를 찾아내 학계에 ‘완도호랑가시나무’로 등재하기까지 했다. 이 나무는 호랑가시나무와 감탕나무의 자연교잡종으로 유추하는 나무라고 한다.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호랑가시나무는 낙엽 지는 나무 중에서 드물게 사철 푸르다. 그래서 관상수로 인기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겨울에 이 나무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뽐낼 수 있다. 푸른 나무잇과 붉은색 열매가 더 싱그럽게 보이는 때가 이 시절이다. 특히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호랑가시나무는 보는 이에게 그 자체가 행복으로 다가온다.

호랑가시나무는 5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9월부터 붉게 익어간다. 잎이 두텁고 윤이 나는데, 이는 나무가 수분을 잘 지키기 위함이다. 이 나무의 뿌리는 관절염, 그리고 나무껍질은 류마티스 치료 등에 쓰인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나무의 가지를 꺾어 정어리 머리를 꿰어 처마 끝에 매달아 액운을 쫓는 주술적 용도로도 쓰였다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