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피는 시절, 고창 선운사 3천여 그루 대표적 볼거리
강진 백련사, 광양 백룡사 등 동백나무 숲으로 사찰 보호

전북 고창 선운사는 동백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30m넓이도 길게 띠처럼 식재된 동백나무는 산불로부터 사찰을 보호하는 방화림의 역할을 한다. 선운사의 동백은 벚꽃을 같이 만날 수 있는 4월이 최고라고 한다.
전북 고창 선운사는 동백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30m넓이도 길게 띠처럼 식재된 동백나무는 산불로부터 사찰을 보호하는 방화림의 역할을 한다. 선운사의 동백은 벚꽃을 같이 만날 수 있는 4월이 최고라고 한다.

목조건물의 가장 큰 적은 불이다. 나무의 특성이 불에 잘 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조건물을 지으면 방화 대책이 반드시 따라붙어야 했다. 궁궐의 전각에는 ‘드므’라는 작은 물단지를 두고 있었으며, 사찰에선 단오 절기에 맞춰 소금단지를 공양했다.

드므는 화마가 궁궐에 다가와 불을 놓으려 할 때 드므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겁해 달아나게 한다는 다소 해학적인 뜻을 담고 있는 상징물이다.

양기가 일년 중에 가장 강하다고 하는 단오날 올리는 소금공양도 상징을 통해 화마를 제어한다는 믿음이 담긴 풍습이다.

소금은 바다에서 채취하는 만큼 물의 기운으로 이해했고, 이 소금단지를 사찰의 전각 아래 묻거나 불기운을 갖고 있는 산의 정상에 묻기도 했다. 구례 화엄사는 각황전 앞의 화산에, 합천 해인사는 매화산의 정상인 남산제일봉에 소금단지를 묻었다. 이에 반해 서울 조계사는 화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소금단지에 담아 경내에 있는 해태상 밑에 묻었다.

그러나 상징물로 불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은 당대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찰의 경우 연못을 마련하거나 가람 배치에 물길을 흐르게 했다.

이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남쪽의 절들은 방화수(防火樹)를 심기도 했다.

방품림은 익숙하지만, 방화수는 사실 낯설 것이다. 나무의 성질이 불에 약한데, 어떻게 나무로 불에 맞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 중에도 불에 유독 강한 나무가 있다. 가왜나무와 동백나무다. 이 나무들은 불을 만나면 가지에서 거품이 인다.

그래서 쉽게 불에 붙지 않는다. 남도의 사찰들은 이 동백나무 숲을 울타리처럼 길게 심었다. 강진의 백련사, 광양의 백룡사, 고창의 선운사 등은 수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성벽을 이루듯 심겨 있다.

이중 으뜸을 따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각각의 어울림이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중 고창 선운사의 동백나무를 말하려 한다. 수령은 500년쯤. 3000여 그루가 선운사와 뒷사 사이에 식재돼 있다.

누가 처음 심었는지 알 수는 없다. 선운사의 창건연대는 신라 진흥왕(526~576) 시절이니 창건 때부터 동백나무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몇 차례의 중건을 했으니 아마도 그중 하나가 동백나무숲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동백나무는 낙화도 아름답다. 댕강 잘리듯 떨어진 동백은 스스로 알아서 물러나는 선비의 기상을 뜻하기도 하지만, 아까운 젊은이들의 희생에도 비유한다. 떨어져 있어도 동백은 꽃의 품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동백나무는 낙화도 아름답다. 댕강 잘리듯 떨어진 동백은 스스로 알아서 물러나는 선비의 기상을 뜻하기도 하지만, 아까운 젊은이들의 희생에도 비유한다. 떨어져 있어도 동백은 꽃의 품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선운사의 동백숲은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큰 볼거리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돼 있으며, 나무의 평균 높이는 약 6m, 둘레는 30cm 정도 된다고 한다. 대웅전과 영산전 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비스듬한 산자락에 30m 넓이의 띠 모양을 한 것을 보면 일부러 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백(冬栢)은 겨울에 꽃을 피워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겨울 동백보다 춘백(春栢)이 더 아름답다. 선운사의 동백도 그렇다. 반쯤은 피고 반쯤은 진 동백나무 숲은 한 컷의 장면으로 긴 인생을 말한다. 댕강 잘리듯 떨어져 나간 동백의 모습은 봄비처럼 떨어지는 봄꽃의 낙화보다 더 철학적이다.

누군가는 이 그림을 보고 물러날 때를 아는 절개 굳은 선비의 기상을 그리기도 하고, 또 누구는 젊은 같은 꽃사태로 표현하기도 한다. 무엇이 됐든 동백의 낙화는 많은 생각거리를 시인들의 가슴에 심어놓는다.

그런데 아시는가. 동백이 반쯤 떨어지는 4월이면 선운사의 벚꽃도 만개하는 때이다. 동백의 붉은색과 벚꽃의 연한 분홍색을 같이 즐길 수 있는 것은 이때만 가능한 선운사의 절경 중 하나다. 벌써 내년 봄이 그리워진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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