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수필가 차상찬의 상상 속에 ‘주국’ 건립
주국 헌법 위반한 사람, 금주국 1년간 유배 규정도

일제강점기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대중잡지 《별건곤》 19호(1929년 2월호)에는 수필가 차상찬 씨가 상상으로 지어낸 ‘술나라’ 헌법이 있다. 사진은 잡지에 실렸던 기사 일부다.
일제강점기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대중잡지 《별건곤》 19호(1929년 2월호)에는 수필가 차상찬 씨가 상상으로 지어낸 ‘술나라’ 헌법이 있다. 사진은 잡지에 실렸던 기사 일부다.

우리나라에 “술나라(酒國)”가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헌법도 가지고 있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시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고, 그리하여 술도가들도 번성하여, 세계 평화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게 하려고 구상한 국가다.

이 국가의 영토는 한반도에 그치지 않는다. 전세계가 영토다. 그런데 술나라가 선포될 당시 미국은 금주령 하에 있었다.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상황이 그렇다 보니 미국과 같은 금주국은 특별식민지로 분류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곳의 헌법을 위반하는 사람은 이 식민지(금주국)로 일년간 유배를 보낸다고 돼 있다.

그렇다고 술나라가 실재한 나라는 아니다. 1929년 한반도가 일제에 강점당했던 시절, 식민지의 재기발랄한 시인이자 수필가였던 차상찬 씨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세운 나라다. 정치적인 내용의 글을 쓰지 못했던 시절, 대중잡지를 지향하며 1926년 창간한 《별건곤》이 경성의 지식인들의 손에 쥐어졌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민태원의 ‘청춘예찬’도 이 잡지에 실렸었다.

서울의 냉면집과 추탕(추어탕)집에 기자가 직접 배달원으로 취업을 해서 현장에서 체험한 내용을 생생하게 지면에 실기도 했으며 경성의 명물과 전국의 유명한 음식들도 소개해줬다. 즉 이 잡지가 발행된 1926년부터 1934년까지 이 땅을 살아낸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잡지라고 보면 된다.

이 잡지에서 활발하게 글을 썼던 차상찬 씨는 이 잡지에 ‘주천자(酒賤子)’라는 필명으로 ‘주국헌법(酒國憲法)’을 썼다. 물론 《별건곤》 창간 이전에는 《개벽》의 기자이자 편집인이기도 했다.

차상찬 씨는 어느 나라든 술에 대한 예법이 있다면서, 당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범주에서의 주도를 글에 담았다. 물론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의 ‘향음주례’만큼 딱딱하지 않다. 외려 그의 글은 해학을 근간으로 썼기 때문에 웃음으로 읽을 수 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이 국에도 작위가 있는 그 분류가 재미있다. 작위는 ‘공·후·백·자·남’(空·厚·百·自·濫)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귀족의 체계를 정리할 때 사용하는 단어지만 한자가 다르다. 우선 공작(空酌)은 술잔을 잘 비우며 마시는 사람이다. 그래서 ‘빌 공자’에 ‘술잔 작’자를 썼다.

그리고 후작은 큰 잔으로 두둑히 마시는 사람, 백작은 백잔을 능히 마시는 사람, 자작은 자기 손으로 자작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남작은 함부로 술을 부어 마시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 시절 귀족의 호칭을 술에 빚대어 웃음거리 하나를 주려고 일종의 언어유희를 한 것이다.

이 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자들이 팔불출도 정의돼 있다. 술 잘 안 먹고 안주만 먹는 자, 남의 술에 제 생색내는 자, 술잔 잡고 잔소리만 하는 자, 술 먹다가 딴 좌석에 가는 자, 술 먹고 따를 줄 모르는 자, 상가집 술 먹고 노래하는 자, 잔치집 술 먹고 우는 자, 남의 술만 먹고 제 술 안내는 자, 남의 술자리에 제 친구 데리고 가는 자. 연회주석에서 축사 오래하는 자 등 모두 10종의 팔불출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요즘도 뒷담화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밖에 술 마시기 좋은 시기도 따로 쓰고 있다. 천리 길을 마다하고 친구가 찾아온 경우, 바람 불고 가랑비 오는 저물녘, 여관에 혼자서 무료하게 있을 때, 눈 내린 달밤, 꽃이 활짝 피거나 잎이 질 때, 우울하거나 슬플 때 등 요즘으로 쳐도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들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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