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7m·둘레 5m 넘는 수령 570년 된 노거수
캐나다대사관 신축 때 나무 배려해서 건물 설계

서울 정동길 캐나다대사관 앞에 있는 회화나무는 수령이 570년 가량 됐다. 대한제국의 흥망을 함께하며 덕수궁을 살펴본 나무이기도하다.
서울 정동길 캐나다대사관 앞에 있는 회화나무는 수령이 570년 가량 됐다. 대한제국의 흥망을 함께하며 덕수궁을 살펴본 나무이기도하다.

외세의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외세의 힘을 빌린 것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는 없지만, 고종이 경복궁에서 나와 러시아 공사관에 들어가 일본 세력을 견제하며 주권을 지키려고 한 ‘아관파천’은 힘없는 민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파천’은 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리를 피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일본이 고종의 결정을 폄훼하려는 의도를 담았다며 ‘망명’이라고 하는 것이 바르다는 의견도 많다.

서울 정동은 120~130년 전 우리나라 외교의 최전선이었다. 각국의 공사관이 밀집된 곳이기 때문이다. 고종이 1896년에 선택했던 러시아 공사관도 이곳에 있었다. 가장 먼저 터를 잡은 미국에 이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공사관을 내고 외교전에 들어섰다.

1년 동안의 러시아 공사관 생활을 정리한 고종은 덕수궁으로 들어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자주독립을 선포하고 고종은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1905년의 을사늑약, 1910년의 병합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돌이키지 못했다. 이 순간을 지켜본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문화재청은 이 짧은 시기, 조선의 자주독립을 만방에 떨치기 위해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이동했던 길을 추적해 ‘고종의 길’이라고 연전에 명명한 바 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예전 러시아 공사관)에 이르는 120m의 길이다. 전체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고종이 경복궁을 벗어나 어떤 길로 러시아 대사관에 이르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당시 미국 공사관에서 제작한 지도에 ‘왕의 길’이라고 표시된 것으로 이 길을 고종의 이동경로로 추정하는 것이다.

이 길에서 좀 떨어진 곳에 570년 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지하철 시청역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걷다가 정동극장을 지나 경향신문사로 방향을 잡으면 인도 한 가운데 서 있는 나무다.

서울시의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다. 1976년 지정 당시 520년 됐다고 하니 흐른 시간만큼 더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키는 17m, 둘레는 5m를 넘어선다. 꽤 큰 나무다. 이 나무는 아마도 조선 초기 문종이나 세조 때부터 자라기 시작해 조선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시작과 마지막도 빠짐없이 지켜봤을 것이다.

덕수궁 안에도 몇 그루의 회화나무가 있지만, 수령이 이 나무에 비해 훨씬 적다. 300년을 넘어선 정도이니 말이다.

서울 정동은 구한말 외교 1번지였다. 고종의 아관파천도 이곳에 있는 러시아공사관이 주무대였다. 사진은 정동 회화나무 앞에 이같은 사실을 적은 표지석이다.
서울 정동은 구한말 외교 1번지였다. 고종의 아관파천도 이곳에 있는 러시아공사관이 주무대였다. 사진은 정동 회화나무 앞에 이같은 사실을 적은 표지석이다.

지금은 나무 옆에 캐나다대사관 건물이 들어섰지만, 대사관이 들어서기 전인 1995년 이전에는 호텔 자리였다. 6.25 전쟁이 끝나고 들어선 하남호텔이다. 이 호텔은 195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 외국인들이 주로 투숙하는 호텔이었으며, 서울의 대표적인 사교장이기도 했다.

인근에 있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을 본떠 지었으니 그 시절의 하남호텔은 장안의 명물이었을 듯하다. 20세기 후반 정·재계의 주요한 인물들도 이 나무는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텔은 시설이 낙후돼 투숙객이 줄면서 결국에는 1995년 철거되었고, 캐나다에서 구입해 대사관 건물을 신축할 때 회화나무의 생태적 조건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디자인을 최대한 회화나무를 배려해서 설계됐다. 나무의 뿌리가 다치는 일을 막기 위해 터를 굴착하는 일도 나무의 동면 주기에 맞춰 겨울에 진행했고, 나무의 둘레를 감안해 대사관 건물을 안으로 움푹 들어가는 모습으로 지어졌다.

나무와의 공존을 선택한 아름다운 결정이다. 그 덕분에 정동길이 더 풍요로워졌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늦은 봄이면 초록의 이파리를 내고 한창 더울 때 하얀 꽃을 피우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일임이 틀림없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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