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자신만의 누룩 수없이 실험해 찾은 술맛
외국에 내놓을 수 있는 세계적 명주 빚는 게 꿈

▲ ‘한영석의 발효연구소’에서는 녹두와 쌀, 밀가루 등을 이용해서 7종 정도의 누룩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은 누룩실 4칸 중 하나에서 빚어지고 있는 미곡(쌀누룩).
▲ ‘한영석의 발효연구소’에서는 녹두와 쌀, 밀가루 등을 이용해서 7종 정도의 누룩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은 누룩실 4칸 중 하나에서 빚어지고 있는 미곡(쌀누룩).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다. 실패하면 바로 원인을 찾기 위해 방법이나 재료를 달리해서 다시 3~4차례 같은 작업을 진행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누룩이나 술이 나오면 그때야 다음 과정으로 건너간다. 2011년 술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그는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며 자신의 누룩과 술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남들은 12년 정도 됐으면 다 되었다고 말할 텐데 그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누룩에 대해서도 매우 박하게 점수를 준다. 남들은 그의 누룩을 구하려고 야단법석인데도 말이다. 그는 자신의 누룩이 60% 수준에 이르렀다고 답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술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만큼 그는 자기 술에 자신감을 담아내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해부터 미식업계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돼 있다.

하지만 그는 술을 마실 수 없다. 12년 전에 아버지와 이별하는 과정에서 얻은 병 때문이다. 척수염을 앓은 뒤 그는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연간 4억 원 정도의 수익을 내던 의류대리점도 그만둬야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한다. 면역력을 높이고 감각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때 산야초가 보였다고 한다. 집 근처에 있는 아주대의 프로그램으로 산야초를 만났고, 식초를 알게 됐다. 근데 좋은 식초는 좋은 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지난 12년간 술에 천착했다. 한국가양주연구소(류인수 소장)를 2년 반가량 다녔다. 웬만한 과정은 다 거쳤다. 그리고 좋은 술의 근본인 누룩을 빚기 시작했다.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에 술을 배우던 2012년 초, 집 앞에 공방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11년을 보내고 지난해 4월 처음 자신의 술을 발표한다. ‘청명주’였다. 

시장은 그의 청명주에 뜨겁게 반응했다. 담백한 산미와 깔끔한 맛을 가진 그의 청명주는 좋은 약주에 목말라했던 미식계의 관심을 끄는데 충분한 술이었다. 심지어 와인 애호가들까지 그의 술에 다가오고 있다. 누룩향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껏 접하지 못한 술맛을 느끼기 위함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주말 설국이 되어가던 남도를 찾았다. 양조장의 건너편은 내장산이 병풍처럼 풍경을 그리고 있고 사이에 있는 호수처럼 넓은 저수지는 풍광을 보태고 있었다. 보는 곳마다 경치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 지난해 청명주를 출시하면서 미식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한영석 대표가 양조장 발효실에서 자신의 양조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지난해 청명주를 출시하면서 미식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한영석 대표가 양조장 발효실에서 자신의 양조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양조장 이름은 ‘한영석의 발효연구소’다. 그런데 양조장 이름 같지 않다 다들 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 한영석(54) 대표는 ‘발효’와 ‘연구소’에 방점을 찍었다. 술과 그 술의 근본인 누룩을 함께 연구하고 있으니 발효와 연구라는 단어를 양조장보다 더 선호한 탓일 것이다. 

양조장의 구성도 그렇고, 다른 양조인들에게 자신의 술을 설명할 때도 그렇다. 그는 감춤 없이 솔직하게 모든 과정을 보여준다. 양조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의문점과 실패 포인트들도 낯가림 없이 말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양조인이 술 만드는 과정을 마치 자신의 비기인 것처럼 여기면서 말을 아끼지만, 그는 잘못 빚어진 누룩을 보여줌에도 거리낌이 없다. 이미 그 해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2년 동안의 시행착오가 그를 그렇게 두터운 인간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지난해 봄 그는 세상에 술을 알렸다. 앞으로 그가 빚는 술은 모두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이미 발표한 청명주도 누룩을 바꿔가며 더 좋은 맛을 찾고 있듯이 올 4월쯤 세상에 얼굴을 내밀 호산춘과 하향주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어디 이뿐일까. 동정춘과 백수환동주는 더 그럴 것이다. 취재 때 맛본 이 술로도 부족함이 없는데, 그는 아직 자기가 원하는 술이 아니라며 또 다른 버전의 술을 빚어 시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영석 대표의 꿈은 세 가지다. 첫째는 농림부가 주최하는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실의 만찬주가 되어 외국의 정상들이 마시는 술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인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우리의 명주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 꿈의 지점에는 지금도 열병을 앓듯 빚고 있는 백수환동곡과 그 누룩으로 빚는 백수환동주가 놓여 있다. 그를 술의 세계로 제대로 이끌어준 술이기에 그의 열정은 더 커져만 가고 있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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