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왕 때 유청신, 원에서 가져와 광덕사에 심어
불포화지방산 많아 노폐물 씻어내고 불면증에도 효과

‘부럼’은 ‘보름’이 변형된 단어라고 한다. 대보름날 찾아 먹는 호두와 땅콩, 밤과 잣 등의 견과류를 우리는 부럼이라고 부른다. 보름이 부럼이 된 까닭은 꽉 찬 둥근 달이 열매를 상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명력을 의미했던 보름달, 그것도 연중 가장 큰 달이 뜨는 대보름날, 우리 민족은 풍년을 기원하면서 오곡밥을 지었고 부스럼 등의 병을 피하고자 부럼을 먹었다. 

그런데 이 풍습이 오래되지는 않은 듯하다. 조선 초기의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후기에 편찬된 문집과 세시기에만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게다가 부럼으로 먹는 호두와 땅콩은 이 땅에서 자생하는 식물이 아니라 모두 중국을 통해 나중에 들어온 것들이니 더 그렇다. 호두는 이름부터 오랑캐 호(胡)가 들어가 있고 땅콩은 낙화생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후기에 사신으로 중국을 방문한 관료들을 통해 이 땅에 들어온 듯하다. 

호두(胡桃)의 한자를 풀면 ‘오랑캐 복숭아’라는 뜻이다. 호두의 열매가 복숭아 열매를 닮아 생긴 이름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을 통해 이 땅에 들어온 호두의 역사가 문익점의 목화만큼 분명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호두 첫 시배지에 대한 기록은 물론 실물까지 아직 남아 있다. 

▲ 천안 광덕사에 있는 호두나무는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온 유청신이 심은 것으로 국내 유입과정이 기록된 몇 안되는 식물이다. 사진은 보화루 앞에서 733년을 살아온 호두나무다.
▲ 천안 광덕사에 있는 호두나무는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온 유청신이 심은 것으로 국내 유입과정이 기록된 몇 안되는 식물이다. 사진은 보화루 앞에서 733년을 살아온 호두나무다.

2023년 02월 11일 13: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천안 광덕사를 찾으면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된 수령 733년 된 호두나무를 만날 수 있다.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유청신이 원나라의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호두나무의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광덕사의 보화루 앞에 심었던 것이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에 만나게 되는 보화루의 계단참에 서 있는 이 나무의 키는 약 20m이며 뿌리 근처의 나무둘레는 4.4m라고 한다. 당연히 법당을 찾는 사람들은 우람한 이 나무를 멀리 있는 발치에서부터 보게 된다. 

이 나무의 다른 이름은 당추자(唐楸子)라고 한다. 고려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유생이 지은 경기체가인 〈한림별곡〉 제8장에 당추자가 나오는데, 당나라의 추자라는 뜻이다. 추자는 가래나무와 개오동나무를 뜻하는데 호두나무가 가래나뭇과에 속해서 생긴 별칭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광덕사에 호두나무를 심은 유청신은 문익점과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유청신은 어려서 중국에 들어가 몽골말을 배웠고, 그 인연으로 승승장구한 사람인데, 원나라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은 물론 고려를 복속시켜 하나의 성(省)으로 만들려고 했던 간신배였다고 한다.

심지어 심왕을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려는 모반까지 계획했던 인물로 일신의 권세를 위해 나라마저 팔려 했던 전형적인 매국노였다고 보면 될 듯하다. 그리고 사신으로 자주 원나라를 가게 돼 그곳에서 호두 맛을 보게 됐고 그 맛이 좋아 묘목을 가지고 와 오늘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광덕사 호두나무를 시작으로 해 천안에서는 호두나무를 집중적으로 키웠으며, 1934년에는 천안 시내에 있는 한 제과점에서 호두를 넣은 호두 모양의 과자를 만들게 되면서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리는 호두과자를 여행길 간식으로 만나는 시대를 살게 됐다. 

▲ 호두나무는 9월쯤 열매를 맺는데 털이 없이 매끈한 모양새를 가진다. 우리가 보는 열매는 과피 안에 있는 열매다.
▲ 호두나무는 9월쯤 열매를 맺는데 털이 없이 매끈한 모양새를 가진다. 우리가 보는 열매는 과피 안에 있는 열매다.

지금은 천안을 비롯해 경기도 광주와 충북 영동, 전북 무주, 경북 예천, 경남 함양 등에서 주로 식재해 호두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꽃은 4~5월에 개화하며 9월에 열매를 맺는다.

호두의 지방은 불포화지방산이어서 많이 섭취해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몸에 쌓여 있는 노폐물을 씻어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신경쇠약으로 인한 불면증 치료에 좋으며 신장의 기능을 강화하고 기억 증강에도 효능이 있다고 한다. 

한편 호두는 중국을 원산지로 알고 있지만, 중국 쪽의 기록에 따르면 2000년 전 한무제가 중앙아시아에 파견한 ‘장건’이라는 사람이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의 원산지는 페르시아, 즉 지금의 이란지역이라고 한다. 이 나무는 맛과 함께 건강에도 좋은 과육을 만들어내 동물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식물일 듯싶다. 고대 로마에서는 자신들의 최고 신인 주피터에 빗대, 호두를 ‘주피터의 열매’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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