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국내에 유입, 덕유산 휴양림에 가문비숲 조성
가장 나이 많은 가문비나무, 스웨덴 ‘올드 짓코’ 9550살

독일가문비 나무의 가지와 구과는 아래를 향한다. 눈이 많은 지역에서 자라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탓이다.
독일가문비 나무의 가지와 구과는 아래를 향한다. 눈이 많은 지역에서 자라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탓이다.

우리나라의 공원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독일가문비라는 나무가 있다. 193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경수로 주로 식재됐고, 전라북도 무주에 있는 덕유산 자연휴양림에는 국내 최대이자 유일한 독일가문비 숲을 만날 수 있다. 

이곳 나무의 평균 수령은 대략 90세 안팎이다. 외래수종이 잘 자르는 땅을 찾기 위해 1931년 이곳에 시험 조림한 결과, 우리는 독일가문비를 숲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이 밖의 지역에서 만나는 독일가문비는 조경 내지는 관상수로 심은 나무들이다. 특히 공원에 많이 있는데, 서양식 공원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심는 나무라고 보면 된다. 

가지에서 갈라지는 작은 가지는 모두 아래로 처진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나무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그림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가문비는 공원이나 수목원에서 이국적인 풍광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 나무는 종자로 번식이 잘되는 특징을 갖고 있어 전국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키는 크고 뿌리는 깊게 들어가지 않아 바람이 적은 곳을 가려 심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나무의 이름을 잘못 붙였다. 영어 이름은 노르웨이가문비다. 일본 사람들이 이 나무를 독일에서 가지고 들어오면서 독일가문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원산지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북유럽이나 알프스의 고지라고 한다. 즉 이 나무는 습하고 몹시 추운 곳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나 주목처럼 고산지대에서 잘 자란다. 

그런데 독일에서 자라는 나무, 네 그루 중 하나가 이 나무가 될 만큼 독일에 많이 식재돼 있다. 이유는 숲의 주인과 산림지도원들이 이 나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똑바로 크고 싹에 침이 있어 노루나 사슴이 이 나무의 잎을 먹을 수 없어 잘 자라기 때문이다. 게다가 목질이 좋아 건축용으로도 좋고 종이의 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경제성도 한몫했다.

생물은 생존을 위해 알맞은 몸가짐을 스스로 만든다. 독일가문비의 처진 가지와 잎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비롯됐다. 독일가문비가 잘 자라는 지방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뭇가지와 긴 열매 등이 땅을 향하지 않고 하늘을 본다면 바람과 눈에 꺾이고 말 것이다. 곁가지가 짧은 이유도 마찬가지로 최적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터득한 결과다. 그래서 곁가지가 길고 굵은 독일가문비는 모두 도태됐다고 보면 된다. 

덕유산 국립공원에는 1931년에 식재된 독일가문비 나무 숲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숲에서 만날 수 있는 독일가문비나무다.(사진: 산림청)
덕유산 국립공원에는 1931년에 식재된 독일가문비 나무 숲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숲에서 만날 수 있는 독일가문비나무다.(사진: 산림청)

우리나라에도 가문비나무는 있다. 그런데 이 나무도 구상나무나 주목처럼 고산지대를 좋아한다. 북한의 개마고원이나 남한의 지리산 덕유산, 오대산 등의 정상부에서 자라고 있다. 

숲을 이루지 못하고 한두 그루가 겨우 살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나무는 고산식물이어서 평지에서는 잘 자라지 못해 독일에서 가져온 독일가문비를 정원수로 심고 있는 것이다. 

독일가문비는 흔히 50m까지 자란다고 한다. 나무의 원줄기는 400년 정도 살지만, 가지는 땅에 닿으면 뿌리를 내려 새로 줄기를 내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희묻이(취목)라고 한다. 

스웨덴의 달라르나주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를 만날 수 있다. 탄소연대측정법으로 뿌리 일부의 수령을 측정한 결과 9550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올드 짓코’라는 별명을 가진 이 나무의 현재 줄기는 몇백 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나무를 보기 위해 국립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은 왜소한 나무를 보고 실망하곤 한단다.

4월 봄빛이 완연해지면 녹색을 찾아 길을 나서보자. 큰 키의 독일가문비 숲을 만나기에 이 계절만큼 좋은 계절은 없다. 
높이 26m 정도의 가문비나무 200여 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에서 층층나무와 잣나무 등과 함께 성장하는 원시림 느낌의 숲을 만끽하는 것도 그 계절이 주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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