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과 아니라 핵과, 복숭아 살구 등과 친척뻘
건강·행복·생명의 부활·풍요 상징하는 나무

▲ 조선의 선비들이 봄을 느끼기 위해 매화를 화분으로 만들어 키우듯 빈센트 반 고흐는 아몬드나무의 가지를 꺾어 유리잔에 꽂아 그림을 그렸다. 아몬드꽃은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서양나무다. (사진 = 위키미디어)
▲ 조선의 선비들이 봄을 느끼기 위해 매화를 화분으로 만들어 키우듯 빈센트 반 고흐는 아몬드나무의 가지를 꺾어 유리잔에 꽂아 그림을 그렸다. 아몬드꽃은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서양나무다. (사진 = 위키미디어)

복숭아와 자두, 그리고 버찌와 친척뻘인 나무 중에 아몬드가 있다. 열매를 기준으로 보면 전혀 근연 관계를 찾을 수 없지만, 이들은 모두 벚나무 속에 속한 나무들이다. 흔히 먹는 밤이나 도토리 같은 견과류로 생각하지만, 아몬드 열매는 핵과로 분류한다.

견과류는 딱딱한 껍질 속에 씨앗 속살이 들어 있는 열매를 말하는 것이고 핵과는 살구와 버찌, 복숭아, 자두 그리고 아몬드처럼 단단한 씨를 다육질이 감싸고 있는 열매다. 그래서 아몬드의 한자 표기는 편도(扁桃)나무다.

그런데 선뜻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살구와 버찌 복숭아 자두는 씨앗을 감싸고 있는 과육을 먹는데, 아몬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의 구조는 같다. 아몬드는 딱딱하고 물기 없는 씨앗을 살이 별로 없고 단단한 과육이 감싸고 있을 뿐이다. 아몬드의 과육은 식용으로 쓸 수 없지만, 씨앗은 핵과류 특유의 맹독(아미그달린)을 갖고 있지 않다. 정확히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하는 과정에서 아미그달린의 함량을 줄여서 인간이 섭취할 수 있는 식량이 되어 준 것이다. 

아몬드의 의외성은 핵과인 열매보다 겨울 찬바람을 이겨내고 피는 꽃에 있을 것이다. 서양에선 아몬드가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이하는 영춘화와 같은 존재다. 우리로 치면 매화나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매화 향기 속에서 봄을 느끼듯 서양에선 아몬드꽃에서 봄을 찾고 희망과 생명력을 느낀다. 

▲ 빈센트 반 고흐는 아몬드나무를 좋아했다. 따뜻한 남프랑스의 봄을 대표하는 아몬드 꽃에서 그는 희망과 행복을 느낀 듯하다. 자신의 조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사진 = 위키미디어)
▲ 빈센트 반 고흐는 아몬드나무를 좋아했다. 따뜻한 남프랑스의 봄을 대표하는 아몬드 꽃에서 그는 희망과 행복을 느낀 듯하다. 자신의 조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사진 = 위키미디어)

빈센트 반 고흐가 말년에 그린 그림 중에 아몬드 그림(‘꽃피는 아몬드 나무’ 1890)이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흐가 아몬드 나무를 그림으로 남긴 까닭도 같은 뜻을 담고 있다. 

고흐는 이 그림을 조카를 위해 그렸다. 그의 편지를 엮은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 따르면 고흐는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라고 적고 있다. 

고흐는 프로방스의 아를을 정말 사랑했다. 따뜻한 기후도 그렇지만 풍과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중에 아몬드도 포함된다. 우리는 봄을 맞는 나무로 매화를 들고 복숭아꽃과 살구꽃을 이야기하지만, 유럽은 아몬드에서 시작된다. 이탈리아나 남프랑스에서는 2월 정도에, 영국은 4월 정도에 아몬드꽃을 만난다고 한다. 

봄의 전령, 아몬드는 그래서 서양의 문학작품과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고흐 외에 에드워드 번 존스와 존 러셀 등의 화가도 아몬드나무를 그림으로 남겼고, D. H. 로렌스와 알베르 카뮈 등의 소설가도 자신의 글 속에 아몬드를 담아냈다.

그런데 아몬드 나무는 더 오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미 B.C. 2000년부터 재배해 투탕카멘의 무덤 속에 왕의 사후 세계를 위한 물품 중에 포함돼 있었다. 이집트뿐이 아니다. 아몬드는 《성경》에도 자주 언급된다. 우선 〈창세기〉에는 야곱이 “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토산물”을 가지고 가서 곡식을 얻어 오라며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낼 때 “아몬드와 피스타치오를 담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예레미야서〉에 따르면 신은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임명하면서 아몬드 나뭇가지를 보여준다. 히브리어로 무엇인가를 지켜본다는 뜻의 단어가 ‘쇼케드’인데 아몬드나무가 이와 유사한 ‘샤케드’인 점에서 발음의 유사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민수기〉에는 하룻밤 만에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과 꽃이 피고 아몬드가 열린다.

그러다 보니 아몬드는 건강과 행복, 행운, 생명의 부활과 풍요를 상징한다. 특히 단맛을 더한 설탕에 절인 아몬드는 더 그렇다. 결혼식에서 설탕 입힌 아몬드를 나눠주는 까닭도 이런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아몬드를 가장 많이 키우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는 전세계 공급량의 82%를 차지할 정도다. 봄철 아몬드가 꽃을 피울 때는 전국의 양봉업자들이 캘리포니아를 향한다. 열매를 맺게 하려면 벌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100만 개 이상의 벌집을 싣고 와 수정시켜서 버는 돈이 꿀을 팔아 버는 돈보다 많다고 한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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