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대한민국의 프로 기사 이세돌 9단과 이벤트성 대국서 만나게 된다.

이세돌 9단은 프로 중에서도 가장 창의적인 수를 두는 기사다. 당시만 해도 셀 수 없는 경우의 수가 펼쳐지는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세돌 본인도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막상 대국이 펼쳐지자 알파고의 실력은 바둑 전문가들이 경악할 정도로 출중했다. 5국까지 펼쳐진 경기에서 이세돌 9단은 1승 4패를 기록했다. 비단 바둑에서뿐 아니라 가까운 미래엔 과학기술이 인류를 압도할 수 있다는 긴장감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보험업계에도 긴장감을 주는 존재가 등장했다. 네이버, 카카오, 토스로 대표되는 빅테크가 보험업에 진출하고 나섰다. 압도적인 플랫폼 장악력과 소비자 접점을 무기로 한 빅테크의 영역 침범은 7년 전 알파고가 바둑계에 던진 충격을 연상케 한다.

빅테크는 직접 보험업 라이센스를 획득한 것에 더해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 시행까지 앞두고 있다. 이미 GA(법인보험대리점)도 설립했다. 보험업계와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할 포석을 마쳤다는 의미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 제4국에서 거둔 승리는 알파고의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로 남아있다. 특히 신의 한 수로 불리는 78수가 승부를 갈랐다. 흑돌 사이로 파고드는 묘수는 알파고의 계산 밖이었고 이는 알파고의 연이은 실수로 이어졌다. 보험사들에게도 상황을 타개할 묘수가 필요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삼삼 노리는 네카토


삼삼은 바둑판 모서리에서 가로‧세로 각각 세 번째 점이다. 상대의 영역을 노릴 때 두는 급소로, 삼삼 침범은 알파고가 유행시킨 전략으로 유명하다.

플랫폼을 통한 보험상품 비교‧추천 서비스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설계사와 보험사들의 우려에도 금융당국은 소비자 편익을 명분으로 강행을 선택했다. 자동차보험을 시작으로 앞으로 네이버와 카카오 등의 플랫폼에서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비교하고 추천받을 수 있게 된다.

업계는 자동차보험은 시작일 뿐, 약관이 표준화된 실손과 저축성보험에 이어 그 이상까지도 상품 중개의 영역이 넓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보험사, GA, 설계사 개인 등 모두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압도적인 플랫폼 파워를 장착한 빅테크가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를 운영하게 되면 기존엔 설계사를 통해 보험사 상품에 가입하던 과정이 획기적으로 단축돼서다.

소비자 접점 측면에서도 수천만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빅테크가 유리하다. 애플리케이션에서 몇 번의 터치로 상품에 가입하게 되면, 발로 뛰어야 하는 설계사 및 GA의 영업활동에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보험사는 이에 더해 계약 체결에 대한 수수료까지 지급해야 한다. 업계는 수수료율이 5~6%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기존 방카슈랑스(은행 내 보험판매) 모집수수료율 1~3%대보다 단순 계산해도 두배 이상 높다.

이미 빅테크는 직접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GA까지 보유한 상태다. 카카오의 KP보험서비스, 토스는 토스인슈어런스를 각각 보험 계열사로 두고 있다. 심지어 카카오는 지난해 디지털 손해보험사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을 출범하며 직접 보험상품을 개발할 자격도 얻었다. 네이버는 NF보험서비스를 소유하고 있지만 아직 GA 라이센스는 획득하지 않았다.

기존 시장 참여자들이 빅테크에 삼삼을 맞은 형국이다.


피강자보 어려운 규제환경


바둑에선 적이 강할 때 자신을 보완하라 말한다. 세력을 두텁게 한 뒤에 도전하는 것이 옳다는 의미다.

다만 보험사들에겐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어 보인다. 빅테크는 날이 다르게 채널‧상품‧플랫폼‧본업인 보험 등에서 사방의 돌로 보험사의 압박하고 있지만, 빅테크와 다르게 적용되는 규제 탓에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상대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다.

빅테크는 당초 비금융회사로 규제 샌드박스 지정을 통해 보험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예정이다. 규제 샌드박스란 신사업‧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등을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의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주는 제도다.

기존 규제를 모두 지키면서 영업활동을 해야 하는 보험사들에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또 금융업법서 예외가 적용될 경우 시장의 경쟁과 안정성,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새로운 유형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엔 금융당국이 보험사에 종합지급결제업(종지업)을 허용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밝히면서 공정경쟁을 위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종지업은 예금‧대출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계좌기반의 서비스를 다룰 수 있게 되는 라이센스다. 예컨대 삼성생명 계좌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종지업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20년부터 제기됐다. 현실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빅테크와 달리 보험사는 비금융서비스에 진출하기 위해 법 개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곧 발표될 보험 비교‧추천서비스의 가이드라인에 합리적인 시장을 만들 수 있는 방안과 구체적인 소비자보호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진혁 기자 pjh@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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