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고가 프리미엄 제품 봇물
노동주 탈피하고 조선시대 청주처럼 위상 높아져

▲ 우리 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젊은 MZ세대들의 수요가 늘면서 전통 가양주 방식으로 술을 빚는 막걸리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성수동에 자리한 ‘우리술당당’의 술 선반의 모습이다.
▲ 우리 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젊은 MZ세대들의 수요가 늘면서 전통 가양주 방식으로 술을 빚는 막걸리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성수동에 자리한 ‘우리술당당’의 술 선반의 모습이다.

2023년 03월 18일 13: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더 이상 막걸리는 값싼 술의 대명사가 아니다. 마트에선 여전히 1500원 정도의 돈을 내고 막걸리를 사 마실 수 있지만, 유리병에 들어 한 병에 몇만 원씩 하는 막걸리도 수없이 출시돼 전통주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그 덕에 대도시 막걸리가 막걸리 전체를 대변하는 시대는 종언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같은 시장 변화는 1995년 주세법 개정을 통해 90여 년 만에 가양주가 되살아나면서 비롯됐다. 이를 토대로 고조리서에 나오는 술들이 하나씩 복원되면서 우리 술 시장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서는 고급스러운 주질을 위해 덧술의 횟수를 늘린 술까지 시판되면서 발효와 숙성에 100일쯤 걸리는 술들도 여럿 등장했다. 부재료를 넣어 향을 보탠 막걸리나 탄산감을 유독 강조한 막걸리까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술들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 가양주 허용이 기폭제가 돼 준 것이다. 

하지만 가양주 방식의 막걸리가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가격에 대한 저항이 강해 쉽게 안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법 오랜 기간 횡보를 하던 프리미엄 시장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5년 전부터 젊은 양조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전통주 시장에 지각 변동이 시작된 것이다. 

알코올 도수의 황금률도 깨뜨렸고, 무 아스파탐을 선언하면서 감미료 없는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들도 크게 늘고 있다. 특히 황금률처럼 떠받들던 알코올 도수 6도를 파괴한 것은 막걸리 제품의 다양화에 봇물을 터줬다. 알코올 도수 6도는 물론 9도, 12도, 15도 등의 술들이 시장에 등장했다. 특히 다 익은 술에 추가로 물을 넣지 않은 원주 그대로의 술을 상품으로 출시한 양조장들도 제법 나타났다. 심지어 곡물 발효주의 극한이라고 하는 19도의 술도 나오고 있다. 예전 같으면 독한 술이어서 찾지 않았을 술들이지만, 지금은 발효주에 한해서는 높은 알코올 도수에 대한 거부감이 사려지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20세기의 막걸리는 노동주의 성격이 강했다. 1980년대까지 막걸리는 철저하게 농부들의 노동주(농주)였다. 그 이후는 도시 노동자들의 팍팍한 삶을 풀어주는 술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 막걸리는 새로운 위상을 갖기를 원했다. 노동주의 역할을 잃은 막걸리는 오히려 반주로 마셨던 조선시대의 청주와 같은 위상을 갖기 시작했다.

▲ 우리 술은 국산 농산물 소비와 직결돼 있어 농림축산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산업이다. 특히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어서면서 고급 화된 우리 술 출시도 크게 늘고 있다.
▲ 우리 술은 국산 농산물 소비와 직결돼 있어 농림축산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산업이다. 특히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어서면서 고급 화된 우리 술 출시도 크게 늘고 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막걸리들이 조금씩 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가 젊은 양조인들을 시장으로 불러 모으게 했다.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은 술들은 정상회담의 건배주 등 다양한 행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됐다. 막걸리의 가격도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까지 다양해졌다. 

모든 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크래프트’ 양조문화가 제대로 평가받으면서 일어난 문화적 현상이다. 이 트렌드의 중심에는 20~30대 젊은 소비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막걸리들은 또 어떻게 불러야 하는 것일까. 20세기의 막걸리와도 다르고, 21세기의 대도시 막걸리와도 다르다. 더는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의 대한민국이 아니듯,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대한민국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20세기에 만들던 막걸리와 차원이 다른 술들이다. 물론 우리는 이 모두를 막걸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름은 같아도 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면 그만큼 술의 품격도 달라진다. 

특히 생물학적 다양성만큼 미식의 다양성에도 눈을 뜨고 있다. 아직은 ‘크래프트’형 양조장의 규모나 생산량이 미미하지만, 이러한 도전들이 만들어낼 세상은 지금과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외국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국격이 달라졌듯이 우리가 우리 술 막걸리를 대하는 태도 또한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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