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양평역에 술도가 준비
벼 품종별로 다른 술맛, 막걸리로 보여줄 예정

▲토종벼 살리기 13년만에 양조장을 준비중인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양평의 토종벼전시관에는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많은 토종벼들이 전시돼 있다.
▲토종벼 살리기 13년만에 양조장을 준비중인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양평의 토종벼전시관에는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많은 토종벼들이 전시돼 있다.

쌀 맛이 막걸리의 맛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우리 술을 취재하면서 항시 생각했던 질문이다. 하지만 누룩의 사용 여부, 제조법과 발효조건 등에 따른 술맛의 차이는 느낄 수 있었지만, 쌀에서 오는 술맛의 차이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토종벼로 만든 막걸리를 마시면서 처음 쌀에서 오는 술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같은 제조법으로, 다만 쌀의 품종만 달리해서 빚은 술들이었다. 드라이의 정도와 신맛의 차이, 그리고 입안의 질감까지 모두 다르게 술맛에서 표현됐다. 시음한 술들의 쌀 품종은 흑갱, 보리벼, 북흑조, 검은깨쌀벼, 아롱벼, 붉은차나락 등 6종. 모두 생소한 품종 이름이다.
 
이 쌀들은 모두 고양시와 양평군 두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이근이 씨의 토종벼들이다. 토종벼를 살리기 위해 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가 찾은 올해의 선택은 양조장이다. 그는 지금 경기도 양평역 인근에 양조장을 만들고 있다. 이 양조장이 만들어지면 토종벼로만 양조를 하는 국내 유일의 양조장이 될 것이다. 그것도 국내에 남아 있는 450종의 토종벼를 모두 막걸리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근이 대표는 처음 토종벼를 심기 시작한 지난 2011년 이후 13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토종벼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밥과 떡, 그리고 막걸리까지 빚어가면서 토종벼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양조장이다. 앞서 말한 시음주들은 모두 이근이 대표가 빚은 술들이다. 

제조법은 모든 술이 동일하다. 이화곡과 향온곡, 조곡을 혼합해서 누룩을 사용했다. 쌀과 물의 비율은 1대1이다. 누룩은 10% 정도만 사용했다. 단양주로 빚었으며 발효 기간은 열흘. 물론 시음할 때까지 숙성된 기간이 3개월 정도다. 이날 시음한 단양주는 모두 같은 조건에서 만들어졌다.

▲이근이 대표의 저온 창고에 저장돼 있는 막걸리들이다. 토정벼 10종을 같은 제조법으로 양조해 숙성 중이다. 벼품종에 따라 술맛이 다르다는 것은 이 술을 마셔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근이 대표의 저온 창고에 저장돼 있는 막걸리들이다. 토정벼 10종을 같은 제조법으로 양조해 숙성 중이다. 벼품종에 따라 술맛이 다르다는 것은 이 술을 마셔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시음평은 다음과 같다. 먼저 흑갱이다. 흑갱은 주로 함경도에서 농사짓던 찰벼라고 한다. 그런데 술맛이 드라이하다. 보통의 찹쌀은 단맛이 많이 난다. 특히 물과 쌀량을 같은 양으로 했을 때는 더욱 단맛의 술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흑갱은 드라이하다. 게다가 입안의 질감이 묵직하다. 산미도 같이 따라온다. 

다음은 보리벼다. 한자로는 맥도(麥稻)라고 쓴다. 이 쌀은 주로 남쪽에서 심던 벼다. 이삭이 보리처럼 거칠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미가 기분 좋게 다가온다. 보리와 전혀 관계없는 쌀 품종인데 보리의 고소함까지 느껴진다. 

북흑조는 양평에 있는 우보농장의 토종벼전시관 중앙에 표본으로 자리하고 있는 품종이다. 이근이 대표가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좋아하게 된 쌀 품종이라고 한다. 요즘 벼들은 모두 키가 작지만, 이 품종은 키가 크다. 그래서 벼의 줄기도 두껍다. 벼의 낱알은 보통 다른 벼들의 경우 100~200개 정도가 달리는데 북흑조는 80개 정도란다. 대신 쌀알이 묵직하게 크다고 한다. 

북흑조는 평안도 지역에서 주로 농사지었던 멥쌀이다. 이 막걸리는 단맛과 산미가 균형 있게 다가온다. 더불어 크림처럼 부드럽다. 음용감이 편한 술이다.  

이밖에 아롱벼와 검은깨쌀벼로 담은 방문주와 붉은차나락으로 빚은 이양주 등을 시음했다. 모두 요즘 술 빚을 때 쓰는 쌀 품종들과 다르다. 삼광 추청 동진쌀 등은 쌀에서 술맛의 차이를 알아채기가 무척 어렵다.

일반적인 벼들은 모두 비슷한 계열의 쌀들을 육종해서 만들었다. 밥맛 좋은 쌀을 기준으로 만든 쌀들이다. 그러니 멥쌀과 찹쌀처럼 성분이 다르면 모를까 같은 멥쌀끼리는 유사한 맛을 낸다.
 
바로 이 지점을 이근이 대표는 놓치지 않았다. “1916년 전국에 12만 개 정도의 주막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12만 개의 막걸리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전국에 1451개의 토종벼가 있었는데, 이것이 지역 술의 뿌리입니다. 우리 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지점은 여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근이 농부가 양조장을 준비하는 진짜 이유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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