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미와 감미 같이 어우러지는 싱그러운 연엽주
전통주연구소 출신, 서울 혜화동에 양조장 오픈

서울 혜화동에 자리한 ㅎ양조장의 조태경 대표(사진 오른쪽)는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10년 넘게 술을 배우고 지난해 양조장을 창업했다. 술을 빚는 일과 함께 우리 술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함께 하고 있는데 사진은 ‘월간요술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우리술 페어링 행사의 모습이다.
서울 혜화동에 자리한 ㅎ양조장의 조태경 대표(사진 오른쪽)는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10년 넘게 술을 배우고 지난해 양조장을 창업했다. 술을 빚는 일과 함께 우리 술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함께 하고 있는데 사진은 ‘월간요술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우리술 페어링 행사의 모습이다.

향기가 좋았다고 한다. 와인에 끌린 것도 그렇고 전통주, 심지어 커피도 같은 이유에서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향기를 생명으로 여기는 기호품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서 제대로 알고 즐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와인 수입사를 다니면서 소믈리에 교육을 받았고, 술과 음식의 페어링을 연구하기 위해 ‘전통식생활문화’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원 과정을 밟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는 전통주에 발을 딛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전통주와의 인연은 만 10년을 넘어섰다. 게다가 그렇게 모인 그의 족적은 결국 그만의 길을 만들어냈다. 그 길은 지난 2022년 서울 한복판인 혜화동에 만든 ‘ㅎ양조장’이다. 술을 만들기보다는 술을 알리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양조장을 내고 양조인의 삶을 걷게 된 것이다. 

ㅎ양조장의 조태경 대표가 전통주를 알게 된 것은 대학원 과정에 다니면서다. 4학기에 개설되는 ‘전통주의 이해’라는 과목에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자신이 다닐 때 과목이 개설되지 않아 담당 교수였던 박록담이라는 인물을 찾아나서게 된다. 

‘한국전통주연구소’라는 곳의 소장을 맡고 있는 것을 확인한 조 대표는 그길로 바로 등록한다. 2012년의 일이다. 그리고 1년여의 과정을 모두 마친 그는 아예 연구소의 직원으로 들어가 우리 술을 널리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우리 술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술에만 집중하지, 술을 만든 양조장과 양조인은 별 관심 없어 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6년에는 농림부에서 주최하는 우리술대축제 기간에 열리는 전통주소물리에경진대회에 나가 금상을 받기도 했다.

조 대표가 술과 관련한 다양한 도전을 하게 된 까닭은 좋은 술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처음 전통주를 배우면서 그에게 충격처럼 다가왔던 ‘자희향’이 단초가 되었다. 

6년 동안 와인수입사를 다니면서 다양한 와인을 섭렵했지만, 자희향은 이 술들과 어깨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싱그럽고 흰 꽃향기가 가득한 화이트와인 같은 풍미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ㅎ양조장에서 빚는 술은 맑은술과 탁주, 두 종류다. 술의 종류는 순곡주를 빚는 과정에 연잎을 넣는 연엽주이다. 저온에서 빚기 때문에 발효와 숙성에 모두 4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ㅎ양조장에서 빚는 술은 맑은술과 탁주, 두 종류다. 술의 종류는 순곡주를 빚는 과정에 연잎을 넣는 연엽주이다. 저온에서 빚기 때문에 발효와 숙성에 모두 4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그렇게 배워서 그가 빚는 술은 어떤 술맛일까. 우선 그가 만드는 술은 현재 맑은술(알코올 도수 15%)과 탁주(12%) 두 가지다. 술의 이름은 ‘초록섬’이다. 싱그러운 술맛을 상징하면서 섬의 이미지를 담고 싶었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순곡주를 담으면서 부재료 하나를 넣었다. 부재료는 초록섬의 레이블에 담긴 연잎이다. 연구소에서 술을 빚을 때 가장 많이 써서 익숙한 부재료였고, 연잎이 주는 풍미가 좋아서 첫술로 연엽주를 선택했다고 한다.

초록섬의 술맛은 신맛과 단맛의 균형에 맞춰진 듯하다. 많은 양조인들이 단맛에 방점을 찍지만, 조태경 대표는 신맛도 중요시한다. 취재하는 날, 맑은술은 모두 판매돼 막걸리만을 시음했다. 그는 여름을 그리면서 빚었다는 술이다. 그래서 초록섬의 술맛은 경쾌하다.

흔히 술에서 느끼는 산미는 첫 잔이 가장 강렬하다. 두 번째 이후부터는 단맛에 눌리기 십상이다. 그의 술이 그렇다. 지금까지 두 가지 버전의 초록섬을 빚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버전의 초록섬이 계절을 달리하며 빚어질 계획이라고 한다. 그의 말처럼 여운이 길게 남는 술이다 

조 대표는 연엽주 다음으로 송순주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흔한 부재료지만, 술향을 그윽하게 만드는 부재료기 때문이다. 이 술은 지금 테스트 버전이 익어가고 있다. 빠르면 올여름에 선보이고 싶다고 한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술은 여름과 많은 관계를 맺을 듯싶다.

ㅎ양조장의 ‘ㅎ’은 혜화동의 ㅎ이기도 하지만 흙의 ㅎ이기도 하다. 조 대표는 흙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땅은 사람들의 지지대로 흔들리지 않고 술을 빚겠다는 마음도 한글의 마지막 자모에 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땅에서 나는 것만으로 술을 양조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조태경 대표는 양조장을 하면서도 우리 술과 음식의 페어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음식전문가인 황정아 씨와 함께 ‘요술상’이라는 행사를 매달 진행하고 있다. 전통주를 포함한 다양한 우리 술과 음식을 연결하면서 우리 술의 지평을 넓히고 싶은 마음에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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