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정원을 채우고 있는 봄나무 중 하나
창덕궁 인정전 용마루에는 5개의 오얏 문양

창덕궁 낙선재 앞에는 자두(오얏)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하나는 하얀색의 꽃을 피우는 자두나무이고 또 하나는 적색의 꽃을 피우는 적자두나무다. 창덕궁은 자두나무를 만나기 좋은 곳이다. 사진은 비가 오기 전에 만개한 자두나무를 찍은 것이다. 
창덕궁 낙선재 앞에는 자두(오얏)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하나는 하얀색의 꽃을 피우는 자두나무이고 또 하나는 적색의 꽃을 피우는 적자두나무다. 창덕궁은 자두나무를 만나기 좋은 곳이다. 사진은 비가 오기 전에 만개한 자두나무를 찍은 것이다. 

봄이 바쁜듯하다. 초여름처럼 며칠 덥더니 꽃들이 두서없이 다 피웠다. 원래 계절에는 온도 변화에 따른 순서가 있었는데 올봄은 이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번거로워서일까. 그 덕분에 서울의 벚꽃은 1주일 이상 빨랐고, 4월 중순이 넘어서야 얼굴을 내미는 명자꽃이나 조팝, 심지어 라일락까지 모두 만개했다. 

원래 제철을 맞은 살구꽃과 자두꽃을 함께 만나고 있으니 조금은 이상한 봄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세라면 5월에 보는 귀룽나무나 아카시꽃도 4월에 보게 될 것 같다. 

오늘은 자두꽃 이야기를 하려 한다. 예전에는 마을 어귀나 주변에서 자두꽃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자두꽃을 보려면 서울의 경우 고궁을 찾아야 한다. 살구꽃도 그렇고 복사꽃도 그렇다. 복사꽃은 그나마 산에서 만날 수 있지만, 모두 환금성 과일이다 보니 지방의 과수원에서나 볼 가능성이 더 크다. 자두의 경우는 경북 김천이 주산지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지역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자두꽃은 우리말로 오얏꽃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오얏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얏 리(李)’자다. 그래서 오얏은 조선의 꽃이다. 그 처음은 신라말의 도선국사다. 지금은 전하지 않는 그의 책 《도선비기》에는 500년 뒤 오얏, 즉 이씨 성을 가진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에 풍수도참설이 유행하면서 ‘이 씨가 한양에 도읍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떠돌아 고려 조정에선 서울 번동에 무성하게 자란 오얏나무를 모두 베어냈다고 한다. 또 《고려사》에는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4년 전인 우왕 14년(1388)에 “목자(木子)자 나라를 차지한다”는 노래가 전국에 유행했다고 적고 있다. 

자두나무의 원래 우리 이름은 오얏나무다. 조선을 상징히는 나무기도 하다. 오얏나무의 꽃은 그래서 창덕궁의 인정전 용마루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사진의 상단에서 다섯개의 오얏을 확인할 수 있다.
자두나무의 원래 우리 이름은 오얏나무다. 조선을 상징히는 나무기도 하다. 오얏나무의 꽃은 그래서 창덕궁의 인정전 용마루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사진의 상단에서 다섯개의 오얏을 확인할 수 있다.

오얏꽃이 조선의 꽃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왕궁의 정전 중에서 유일하게 인정전 용마루에는 5개의 오얏꽃 문양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오얏나무를 특별히 대접하지는 않았으나 인정전 용마루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왕실을 대표하는 문장으로 오얏꽃을 정했다. 또한 우편 업무를 보기 위해 세운 우정국에서는 1905년 통신권을 일본에 빼앗기기 전까지 보통우표 54종을 발행했는데 주로 태극 문양과 오얏 문장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자두라는 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자두나무의 ‘자두’는 자도(紫桃)에서 온 말이다. 붉은 복숭아를 뜻하는 자도는 자두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호두의 이름이 호도(胡桃)에서 바뀐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자두와 호두는 모두 핵과류의 열매다. 심지어 복숭아도 그렇다. 이 핵과류의 과일은 껍질 안에 과육이 있고 가장 중간에 단단한 껍데기(핵) 안에 씨앗이 있다. 

자두의 학명은 영국의 식물학자 린들리가 붙였다. 여기에 붙여진 학명은 프루누스인데 이는 자두를 의미한다. 그런데 매실나무와 살구나무는 물론 복사나무까지도 모두 프루누스 학명을 붙이고 있다. 모두 핵과류라는 인연 때문이다. 

핵과류라는 인연뿐이 아니다. 오얏꽃은 복사꽃과 ‘도리(桃李)’라는 말로 짝을 이뤘다. 중국이나 우리 옛 시가에서 도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도리는 다른 사람이 추천한 사람이나 쓸 만한 자기 제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만큼 아낀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꼭 성리학의 체계에서만 도리를 챙긴 것은 아닌 듯하다. 불교에서도 도리는 같이 붙어 다니는 이름이었다.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절을 창건하는데 겨울에 핀 복숭아꽃과 오얏꽃을 보고 ‘도리사’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런데 자두나무는 대추나무나 석류나무와 같이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나 보름날에 나뭇가지 사이의 틈에 돌을 끼워뒀다고 한다. 그래야 그해에 과일이 풍성하게 열린다고 한다. 이를 시집보내기라고 부르는데, 고대사회에서 나무를 여자로 생각한 탓이다. 열매를 맺는 모습에서 그리 생각한 것이다. 

한편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자두는 모두 1920년대에 들어온 서양 개량종이다. 이때부터 오얏이라는 이름보다는 ‘자리’ ‘자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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