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정기관이 은행들을 들쑤시고 있다.

잘못된 경영·영업 관행을 찾아내 바로잡겠다는 취지인데 업계 관계자들은 “법치(法治)를 명분 삼아 관치(官治)를 넘어 권치(權治)가 벌어지고 있다”며 볼멘소리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세청의 검사 표적이 됐다. 사정기관 세 곳이 비슷한 시기 같은 곳을 동시에 검사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공정위는 예금·대출 금리 담합 의혹에서 비롯된 직권조사, 국세청과 금감원은 정기검사였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돈 잔치’ 비판 직후 이뤄진 터라 압박 강도가 유난히 거셌다. 현업 부서에선 자료 준비로 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며 고충을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우리은행에도 최근 검찰과 금감원이 들이닥쳤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는 지난달 30일 우리은행 본점과 성남금융센터, 삼성기업영업본부 등에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지난 2014년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대장동 사업 컨소시엄을 돕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우리은행과 연결해준 대가로 50억원을 받기로 한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서다.

검찰에 뒤이어 금감원도 바로 출동했다. 지난 3일부터 우리은행 본점 현장 점검을 통해 대장동 의혹 관련 사실 여부를 파악 중이다.

소위 ‘대장동 게이트’에서 박 전 특검이 부지 개발을 위한 자금조달 과정에서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직으로 외압을 행사했다는 핵심 관계자들의 진술과 정황이 드러난 건 지난해 말이다.

그런데 우리은행에 대한 수색 및 검사는 3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이뤄졌다. 관료 출신 친정부 인사인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취임한 직후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절묘한 타이밍이다.

근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3~4일 간격으로 은행 영업장에 발 도장을 연신 찍는 중이다. 은행들은 이 원장의 방문 날짜에 맞춰 약속이나 한 듯 가계대출 금리 인하, 취약계층 지원 등 상생금융 정책을 내놓는다.

글로벌 통화 긴축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부담이 크지만, 정부의 강력한 고통 분담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다.

이를 두고 ‘관치’라는 지적에 정부는 ‘법치’에 따른 관리강화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다.

이 원장이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한 “헌법과 은행법, 관련 규정에 은행의 공공적 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라는 발언을 시작으로 정부는 공공재, 약탈적 행위 등 원색적 단어를 난무하며 은행을 서민의 등골을 휘게 하는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관치를 넘어, 현 정권 권력자들이 그 위에서 절대 권한을 행사하는 권치가 시작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애써 아닌 척 해봐야 관치고 권치다. 시장 및 언론과 ‘그렇다, 아니다’ 소모전 말고 금융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기한다는 확실한 명분 확립으로 신망을 얻는 게 필요한 때다.

지난 2003년 카드 사태 때 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국장이 내뱉었던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2@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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